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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성부의 공원(公園)


-1930년대 경성부의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통해 바라보는 공원의 역할-




산책하조: 김나영, 이상준, 배준상, 송재한, 이원규





연구 목적



공원은 도시의 사회적, 문화적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특히,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는 경성부가 식민지 지배 하에서 근대 도시로 재편되던 시기로, 공원들은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경성시대 공원에 대한 자료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관련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인물, 장소, 사건 3가지 요소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공원을 중심 좌표로 설정하고 기사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 인물, 장소를 연결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공원별로 발생한 사건들과 공원과의 관계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고, 각 공원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점을 도출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대상


연구 대상

  • 본 연구의 대상은 행정구역 개편 전인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 사이에 경성부에 존재했던 공원(公園)이다. 완공 시점(1930년 1월 1일 이전/이후)와 현재의 운영 여부는 무관하게 1930년대에 실제로 운영되었던 모든 공원을 포함한다.
  • 공원 정보: 이름, 위치, 사진, 개장 일자, 준공 목적, 현재 운영 여부 등
  • 사건 정보: 해당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 내용, 날짜, 시간, 인물 등
    • 기사 자료: 신문사 이름, 기사 발행일, 제목, 본문 내용 등

자료원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신문사, 기사 제목, 발매일, 내용, 원문 사진 제공
    • 기사자료, 사진, 해당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 자료 수집
  • 조선사진 그림엽서 데이터베이스
    • 공원의 실제 모습 사진 자료 수집 가능

공원 목록

  • 남산공원
  • 사직공원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용산철도공원
  • 장충단공원
  • 창경원
  • 파고다(탑골)공원
  • 한양공원
  • 홍릉숲(수목원)
  • 효창공원(효창원)
  • 훈련원공원(광장)

서울특별시공원지도.jpg
경성부공원계획지도(상단 사진) 및 논문 참고하여 공원 목록 작성
경성운동장: 운동 관련된 사건들로 한정되어 목적 의식에 부합하지 않아 소거함

연구 방법


공원별 사건 유형의 시계열적 추적
특정 공원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건 유형을 시계열적으로 정리해, 도시 내 갈등의 집중지점을 식별한다.

언론 보도의 양상과 통치 이데올로기 분석
사건을 다룬 기사 데이터를 함께 수집함으로써,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 신문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또는 특정 시기 언론이 어떤 사건을 부각했는지 등을 비교하고, 당시 언론 통제와 보도 경향을 분석하는 기반 자료로 활용한다.

사건의 시간대, 계절, 인물의 사회적 속성 등을 함께 구조화함으로써,
공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파악하고, 당시 사회상 및 지리적 특성 등과 연결하여 그러한 특징이 나타난 이유가 있는 지 해석했다.

온톨로지(Ontology)



온톨로지 그래프(OntoGraph)



클래스(Class)

클래스명 한글명 설명
Park 공원 1930년 1월 1일~1936년 3월 31일 사이에 경성부에 존재한 공원
Person 인물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행위자/대상자인 인물(개인), 또는 집단 내에서 신원을 특정 가능한 인물
Group 집단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행위자/대상자인 집단
Event 사건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
Article 기사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 기사


릴레이션(Relation)

영문명 한글명 정의역 치역 설명
isWrittenAt A는 B에 작성되다 Event Article 기사에 등장한 사건
isIncludedIn A는 B에 포함되다 Park Article 기사에 등장한 공원
HappensIn A는 B에서 일어나다 Event Park 사건이 발생한 공원
isMentionedIn A는 B에서 언급되다 Person 또는 Group Article 기사에 등장한 인물 또는 집단
isPerpetratorOf A는 B의 가해자이다 Person 또는 Group Event 사건을 주도한 인물 또는 집단 (범죄 사건)
isVictimOf A는 B의 피해자이다 Person 또는 Group Event 사건을 당한 인물 또는 집단 (범죄 사건)
isMainbodyOf A는 B의 행위 주체자이다 Person 또는 Group Event 사건의 행위 주체자인 인물 (일반 사건)
isMemberOf A는 B의 구성원이다 Person Group 집단에 속해있는 인물


속성(Attribute)

공원 속성
속성명 한글명 설명
gid 식별자 개별 노드의 식별자 [PA000]
(P로만 했을 경우 Person과 혼동될 수 있으므로 Park의 처음 두 글자 PA로 설정, 데이터 개수가 4자리는 넘어가지 않을 예정이라 000으로 작성함.)
class 클래스 개별 노드가 속하는 클래스 (Park)
name 대표명 개별 노드의 대표명 [공원 이름]
refurl 참고 웹 자원 개별 노드의 정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웹 자원
open 개장일자 공원 개장 날짜 (데이터시트에 출처(판단 근거) 기재)
run 운영 여부 공원의 현재 운영 여부 [active/closed]
who 설립 주체 공원을 설립한 주체
why 설립 목적 공원의 설립 목적 [민간/공공]
address 주소 공원의 행정 주소
latitude 위도 공원의 위도
[기준: 정문 입구 (입구가 없을 경우 특징적인 구조물의 위치로 좌표 설정 후 해당 사항 명시)]
(이 값은 지도에 공원 위치를 표시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예정)
longitude 경도 공원의 경도
[기준: 정문 입구 (입구가 없을 경우 특징적인 구조물의 위치로 좌표 설정 후 해당 사항 명시)]
(이 값은 지도에 공원 위치를 표시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예정)


인물 속성
속성명 한글명 설명
gid 식별자 개별 노드의 식별자 [PE000]
(P로만 했을 경우 Park과 혼동될 수 있으므로 Person의 처음 두 글자 PE로 설정, 데이터 개수가 4자리는 넘어가지 않을 예정이라 000으로 작성함.)
class 클래스 개별 노드가 속하는 클래스 (Person)
name 대표명 개별 노드의 대표명
[인물 이름] (미상일 경우, [유형_날짜+사건] (예: 시체_19330815일본소년자살))
refurl 참고 웹 자원 개별 노드의 정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웹 자원
job 직업 기사에 명시된 인물의 직업
(미기재된 경우, 추가 조사가 가능한 인물은 조사하여 내용 작성)
age 나이 기사에 명시된 인물의 나이 (기사에 n(<12)개월로 표기된 경우 1세로 기재)
(미기재된 경우, 추가 조사가 가능한 인물은 조사하여 내용 작성)
agegroup 연령층 인물이 포함된 연령층
[미성년자(20세 미만)/성인(20세 이상) - 1920년대 언론에서 보통 20세 이상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한 성인으로 취급함.[1])
sex 성별 인물의 성별 [남/여]
(고보(고등보통학교), 중학교 학생이라고 명시되었을 경우 '남'으로 기재. 그 당시 중학교, 고등보통학교는 남자만 다닐 수 있었으며,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이름에 여자중학교, 고등여학교라고 명시되어 있음. [2], [3])


집단 속성
속성명 한글명 설명
gid 식별자 개별 노드의 식별자 [G000]
(Group의 첫 글자 G로 설정, 데이터 개수가 4자리는 넘어가지 않을 예정이라 000으로 작성함.)
class 클래스 개별 노드가 속하는 클래스 (Group)
name 대표명 개별 노드의 대표명 [집단 이름]
(사기단이나 절도단과 같은 보통 명사의 경우, [사건 발생 날짜_이름])
refurl 참고 웹 자원 개별 노드의 정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웹 자원
job 직업 기사에 명시된 집단의 직업 (미기재된 경우에는 추가 조사를 함)
type 유형 집단 인원수에 따라 다수/소수 집단으로 구분 (아카이빙 목적으로만 정리)
[다수(3명 이상)/소수(3명 미만)]


사건 속성
속성명 한글명 설명
gid 식별자 개별 노드의 식별자 [E000]
(Event의 첫 글자 E로 설정, 데이터 개수가 4자리는 넘어가지 않을 예정이라 000으로 작성함.)
class 클래스 개별 노드가 속하는 클래스 (Event)
name 대표명 개별 노드의 대표명 [사건 발생일+사건명]
refurl 참고 웹 자원 개별 노드의 정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웹 자원
day 사건 발생 날짜 중 일 (명확하지 않을 경우 00으로 표시)
(사건이 여러 날짜에 걸쳐 진행된 경우, 시작 날짜로 작성)
month 사건 발생 날짜 중 월 (명확하지 않을 경우 00으로 표시)
(사건이 여러 날짜에 걸쳐 진행된 경우, 시작 날짜로 작성)
year 사건 발생 날짜 중 년 (명확하지 않을 경우 00으로 표시)
(사건이 여러 날짜에 걸쳐 진행된 경우, 시작 날짜로 작성)
timezone 시간대 사건 발생 시간대
[아침(05~09시)/낮(10~16시)/저녁(17~20시)/밤(21~23시)/새벽(00~04시)]
time 시간 사건 발생 시간 (24시간 형식)
season 계절 사건 발생 계절
[봄(3~5월)/여름(6~8월)/가을(9~11월)/겨울(12~2월)]
content 내용 사건 세부 내용
type 유형1 세부적인 사건 유형
[강간/강습회/개방/개장/개화/검거/계획/고별식/공개/공사/공양/교통사고/구걸/군대행사/기념식/기부/날씨/문화/미아/미화/방문/납치/비밀회의/사고/사기/사진회/살인/상영회/생활/성추행/성희롱/소동/스포츠/시체발견/시체유가/시험/실종/안장식/야앵/여가/연기/연주회/영결식/영화제/음악회/자살/자살시도/장례식/절도/점검/종교행사/체조/초혼제/출초식/치안/친목회/학회/행사/협의회활동/화재]
(범죄 사건의 경우에는 판결이 난 기준으로 작성, 일반 사건의 경우에는 기사에 명시된 행위를 기준으로 항목을 나누어 작성)
(예시1: "식수데이를 맞이하여 묘목을 심어 효창원공원의 풍치를 더함" -> 기념식으로 분류)
(예시2: "마필 검사를 심시하였다" -> 점검으로 분류)
type2 유형2 상위 범주의 사건 유형
[미화/범죄/사고/스포츠/신축/안전/여가/자살/자연/치안/행사]
(범죄 사건의 경우에는 판결이 난 기준으로 작성, 일반 사건의 경우에는 기사에 명시된 행위의 목적을 기준으로 유형1의 상위 분류를 작성)
(예시1: "식수데이를 맞이하여 묘목을 심어 효창원공원의 풍치를 더함" -> 기념식 -> 미화로 분류)
(예시2: "마필 검사를 심시하였다" -> 점검 -> 안전으로 분류)


기사 속성
속성명 한글명 설명
gid 식별자 개별 노드의 식별자 [A000]
(Article의 첫 글자 A로 설정, 데이터 개수가 4자리는 넘어가지 않을 예정이라 000으로 작성함.)
class 클래스 개별 노드가 속하는 클래스 (Article)
name 대표명 개별 노드의 대표명
[기사 발행일_신문사_제목] (대표명의 기사 제목은 한글로, 간결하게 작성)
refurl 참고 웹 자원 개별 노드의 정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웹 자원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로 기재)
title 기사 제목 기사의 원래 제목
press 신문사 기사를 발행한 신문사
date 발행일 기사 발행일
content 내용 기사 원문 내용 (오탈자 검수 완료된 내용, 2차 검증용 자료)


데이터 샘플링



연구 데이터


【데이터 시트 페이지로 이동】


노드 데이터(총 590건)

  • Article 197건
  • Event 176건
  • Park 11건
  • Person 141건
  • Group 65건

(ver 25.06.11 22:00 기준)

링크 데이터(총 1045건)

  • happensIn 183건
  • isIncludedIn 202건
  • isMainbodyOf 102건
  • isMemberOf 35건
  • isMentionedIn 218건
  • isVictimOf 37건
  • isWrittenAt 203건
  • isPerpetratorOf 65건

(ver 25.06.16 12:42 기준)

연구 결과


[ 최종 Ontology 그래프 ]

 MATCH (n) RETURN n

산책하조전체온톨로지.png

[ 경성부 공원의 위치 분포 ]

 MATCH (e:Event)-[:happensIn]->(p:Park) Return p


지도.png

개별 공원 분석


1. 남산공원

[ 남산공원의 사진 ]
남산공원 사진.png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남산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유형(type2)과 사건 발생 횟수

 match (a:Event)-[r]-(b:Park{name:'남산공원'}) return a.type2,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남산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유형(type)과 사건 발생 횟수

 match (a:Event)-[r]-(b:Park{name:'남산공원'}) return a.type,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남산공원사건type12.png

남산공원에서 사기 사건이 많이 발생한 이유
경성시대 남산공원에서 사기 사건이 유독 많이 발생한 데에는 지리적 특성과 사회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지리적 측면에서 남산공원은 경성 시내 중심부와 가까운 접근성 높은 장소이면서도, 산지 특유의 굴곡지고 나무가 우거진 환경으로 인해 사람을 따로 만나거나 범행 후 도주하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이는 범행 후 흔적을 감추기 쉽고, 누군가를 조용히 유인하여 속이기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었다. 또한 남산공원은 당대에도 경승지(景勝地)로 잘 알려진 인기 장소였으며, 연인, 관광객, 외지인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었다. 외지인이나 방문객은 지역 지리에 익숙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경계심이 낮기 때문에 사기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공원은 공공장소라는 특성상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경찰력의 감시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일상적 범죄가 발생할 여지가 컸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경성 후기 도시화 과정에서 급격히 증가한 도시 빈민층과 실업자 문제를 들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불균형한 경제 구조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은 비교적 물리적 충돌이 적고 손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기와 같은 범죄에 노출되기 쉬웠다. 남산공원처럼 통제가 느슨한 공공장소는 이러한 사람들의 활동 무대로 활용되기 적절했다. 여기에 더해, 당시 거리에는 기적 상술이나 가짜 부적, 가짜 의료인 사칭 등과 같은 속임수 상행위가 유행했으며, 남산과 같은 장소는 그러한 ‘장사’의 현장이 되기 쉬웠다. 실제로, 남산공원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에도 야바위 사건, 가짜 금 비녀 사건이 있다.

[ 남산공원의 역할 ]
1930년대 전반, 남산공원은 경성의 주요 도심 공원 중 하나로서 여가, 범죄, 계몽, 단속이 공존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당시 남산공원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 유형에는 사기, 강간과 같은 범죄뿐 아니라, 연주회 개최, 협의회 활동 등 공공적 행사, 그리고 불량학생 단속처럼 식민권력의 통제가 가시화된 사례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다층적 사건 구성은 남산공원이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도시 내 다양한 집단이 목적과 방식이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는 사회적 충돌지대이자 실험적 공공장소였음을 시사한다. 지리적으로 남산공원은 경성 도심부와 인접하면서도, 산지 특유의 폐쇄성과 은밀함을 지닌 공간이었다. 이는 사기나 강간과 같은 범죄 발생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으며, 동시에 일제가 공원 내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학생 검거나 불량행위 단속 등을 강화하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공원은 도시 빈민, 학생, 하층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였고, 이는 통제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반면,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연주회나 협의회 활동은 공원의 공식적·계몽적 성격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공원 내 무대나 광장을 활용한 문화 행사는 식민지 정부의 ‘문명화’ 담론을 실현하는 장으로 활용되었고, 협의회 활동은 조선인 내부의 자치적 조직 운영이나 계몽적 모임이 일정 부분 허용된 예외적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산공원은 1930~1936년 사이 경성시민들의 일상적 여가, 범죄적 현실, 국가적 통제, 계몽적 시도가 중첩되는 다기능적 장소였던 것이다.

2. 사직공원

[ 사직공원의 사진 ]
사직공원 사진.png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사직공원에서 발생한 사건 유형

 match (a:Event)-[r]-(b:Park{name:'사직공원'})
 return a.type2,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order by 사건발생횟수 desc

사직type.png

사직공원에서 발생한 행사 사건의 유형

 match (a:Event{type2:'행사'})-[r]-(b:Park{name:'사직공원'})
 return a.type,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order by 사건발생횟수 desc

사직행사type.png

사직공원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의 사건명 리스트

 match (a:Event{type2:'자살'})-[]-(b:Park{name:'사직공원'}) return a.name as 사건명

사직공원에서 발생한 범죄 사건의 사건명 리스트

 match (a:Event{type2:'범죄'})-[]-(b:Park{name:'사직공원'}) return a.name as 사건명

사직자살범죄.png

사직공원에서 자살과 범죄 사건이 많이 발생한 이유
1930년대 사직공원은 서울 서대문 일대에 위치한 중심부 공공공간으로, 경성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장소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원 내부는 나무가 울창하고 경사진 언덕과 사각지대가 많아,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쉬운 공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자살이나 유기, 은밀한 범죄와 같은 은폐된 행위가 이곳에서 자주 일어났다. 당시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해 노인, 장애인, 빈곤층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일이 흔했으며, 이들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이 공원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중풍을 앓던 노인의 자살, 노인의 생활고로 인한 투신, 영아 유기 등의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도되었고,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한 ‘마지막 장소’로서의 기능을 반영한다. 신문 기사에서도 이곳에서 시체가 발견되거나 실종된 이가 발견되는 일이 빈번해, 사직공원은 당대 도시의 어두운 현실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직공원에서 보건체육행사가 많이 발생한 이유
1930년대 사직공원에서 보건체조와 체육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린 이유는 단순한 시민 여가의 일환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의 통치 전략과 공원의 지리적 특성이 맞물린 결과였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강건한 제국 신민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신체 단련과 위생 관리를 중시하며, 보건체조와 집단 체육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특히 보건체조는 정해진 음악과 동작에 맞춰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훈련 방식으로, 개인의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기보다는 국가가 통제하는 규율 교육의 수단이었다. 이는 신체를 근대화된 식민 시민으로 만들고, 동시에 권력을 시각화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사직공원은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경성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시민 접근성이 높았고, 광장형 구조와 넓은 운동장이 단체 체조나 대중 행사를 열기에 적합했다. 또한 주변에 학교나 관공서가 밀집해 있어 청년, 학생, 일반 시민을 동원하기 쉬웠고, 이들은 일제의 위생 계몽과 체육 캠페인에 자주 동원되었다. 실제로 신문 기사들을 보면 서울보건체조단의 공개 연습, 명조 체조 시범, 위생 영화 상영 등이 반복적으로 사직공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지역 행사라기보다 식민 통치 권력이 주도한 일종의 ‘공공 훈육 무대’였다. 결국 사직공원은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체육과 위생이라는 명분 아래 신체와 행동을 통제하고, 도시 공간 속에서 ‘모범 시민’을 연출하는 무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자주 열렸던 체육 행사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국가가 조직한 통제와 계몽의 수단이자, 식민 권력이 표면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근대성의 상징이었다.

[ 사직공원의 역할 ]
사직공원은 단순히 비극의 배경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주도하는 계몽적, 공공적 기능을 함께 수행한 이중적인 공간이었다. 서울체조단과 보건체조단이 이곳에서 공개 시범을 보이며 신체 단련과 위생의식을 고취했고, 위생 영화나 교화 영화를 상영하며 시민 계도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군중이 모이기 좋은 넓은 공원 구조는 각종 문화 행사, 체육 훈련, 공중 위생 시범 등의 공공 행사에도 적합했다. 이처럼 사직공원은 시민의 건강과 질서를 유지하고, 근대적 국민의식을 함양하는 국책 행사의 장이자, 동시에 도시 빈곤과 사회적 소외가 농축된 현실의 무대였다.

3.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주체가 된 인물과 그의 직업

 match (a:Person)-[r1:isMainbodyOf]-(b: Event)-[r2: happensIn]-(c: Park{name: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return a.name as 인물, a.job as 직업

양화진인물.png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발생한 사건 유형(type2)과 발생 횟수

 match (a:Event)-[]-(b:Park{name:'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return a.type2 as 사건_유형, count(a) as 발생_횟수 order by 발생_횟수

양화진사건유형.png

[ 양화진선교사묘원의 역할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1890년 미국공사관의 요청에 조선 정부가 외국인들의 매장을 허가하면서 외국인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을 위한 묘지로 조성되었다. 주로 개신교 선교사들이 안장되었으며 한국 근대화에 기여한 인물들의 묘가 자리한다. 쿼리를 통해 1930년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일어난 이벤트들을 분석해 보았고 이를 통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역할을 알아보았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여가 시간을 보내거나 자연 경관을 즐기는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공원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주로 행사가 열렸고 이 공원에서 이벤트가 2개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점으로 보아 기사에 실릴만한 사건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어난 사건에 관여된 인물이 모두 선교사라는 점에서 종교적이고 의례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종교 공동체 내부의 추모 공간이라는 폐쇄적 공간이라기 보단 더 넓은 역할을 한다. 대규모의 추모행사가 열렸던 점(벙커 안장식 700명 참석, 뮈텔 영결식 6000명 참석)을 보아 단순한 묘지 이상의 사회적 공간으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기독교 전파와 교육, 의료 등 근대화에 공헌한 외국인 인물들을 기리는 대규모의 공공의 의례를 거행했다는 점에서 단지 묘지 이상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4. 용산철도공원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용산철도공원에서 일어난 사건 유형(type)의 비율

 MATCH (e:Event)-[:happensIn]->(p:Park{name:'용산철도공원'})
 RETURN  e.type AS 사건유형, COUNT(*) AS 발생횟수

용산철도공원사건유형.png

용산철도공원에서 초혼제가 열린 연도

 MATCH (e:Event{type:'초혼제'})-[]-(b:Park{name:'용산철도공원'})
 return e.name as 사건명, e.year as 행사_연도 order by 행사_연도

용산초혼제.png

철도 초혼제가 매년 열린 이유
철도 초혼제가 매년 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당시 철도 노동 환경의 극심한 위험성이 자리하고 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30년대 철도 종사자 순직자는 연평균 100명에서 130명에 달했다. 이는 최근 5년간 철도 공사 전반에서 발생한 직원 사망 사고가 약 10건 내외임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은 하급 기술직 및 위험 작업에 주로 투입되었고, 당시에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나 보호 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노선 확장과 군수 수송에 따른 과로, 야간 작업, 그리고 안전불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많은 철도 종사자들의 순직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철도 초혼제는 단순히 죽은 자를 기리는 의례에 머물지 않고, 국가 산업의 발전 뒤편에 존재하던 희생을 상징적으로 수습하는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 용산철도공원의 역할 ]
용산철도공원은 스포츠 경기나 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가 열리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 철도 순직자를 기리는 추모의 장소라는 중요한 성격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철도 초혼제가 개최되었는데, 이 초혼제는 단순한 제례가 아니라 철도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종사자들을 공식적으로 위령하는 국가적 행사의 성격을 띠었다. 특히 철도 초혼제라는 이름처럼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철도 관련 업무 중 발생한 순직자를 포괄적으로 추모하는 집단 의례였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용산철도공원은 단순한 시민 휴식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철도청사 및 철도 관사 단지 내에 조성되어 철도기관이 직접 관리·운영하던 공원으로, '철도공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철도라는 국가 기반 산업과 밀접하게 얽혀 있던 구조와 기억을 품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과적으로 용산철도공원은 문화행사장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근대 산업 시스템 아래에서 반복되었던 노동자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기념하고, 동시에 그 희생을 국가가 어떻게 수용하고 제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문화와 위령, 산업과 통치가 중첩된 복합적인 장소로서 과거의 무게와 의미를 현재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5. 장충단공원

[ 장충단공원의 사진 ]
장충단공원 사진.png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장충단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유형(type2)과 발생 횟수

 match (a:Event)-[r]-(b:Park{name:'장충단공원'}) return a.type2,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order by 사건발생횟수 desc

장충단type2.png

[ 장충단공원의 역할 ]
본래 장충단은 을미사변 때 살해된 명성황후의 시해를 계기로 희생된 충신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1900년대 이후 신사를 설치하고 이를 공원화하였다. 1930년대 장충단공원은 겉으로는 충신을 기리는 공간이자 국가적 의례가 열리는 장소로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은 은신처 또는 극단적 선택의 공간으로 활용된 이면이 존재했다. 5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중 4건이 자살 사건, 나머지 1건은 절도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 구성은 장충단공원이 일상적 여가 활동이나 공식적인 행사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립되고 조용한 공간적 특성을 지닌 장소였음을 시사한다. 공원이 도심 외곽에 위치하고, 나무가 우거진 언덕과 신사 건축물에 둘러싸인 구조였다는 점에서,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양공원과 유사하게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인식되었을 수 있으며, 장충단공원이 내포한 ‘충절’과 ‘기념’이라는 공적 의미와는 대조되는 비극적 개인 행위의 무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발생한 절도 사건 역시, 공원이 특정 시간대에는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치안의 사각지대였음을 암시한다. 이는 당시 공원이 일관된 목적과 통제가 적용되지 못했던 공간이었음을 드러내며 근대 도시의 그림자를 반영하는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6. 창경원

[ 창경원의 사진 ]
창경원 사진.png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창경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유형(type2)를 내림차순으로 정리

 match (a:Event)-[r:happensIn]-(b:Park {name: "창경원"})
 return a.type2 as 사건_유형, count(a) as 유형_빈도
 order by 유형_빈도 desc

창경원사건type.png

사건 유형 중 가장 많이 일어난 '범죄' 사건에 대한 세부 유형 분포

 MATCH (e:Event)-[:happensIn]->(p:Park)
 WHERE p.name CONTAINS '창경원' AND e.type2 = '범죄'
 RETURN e.type AS 사건유형, COUNT(*) AS 발생횟수
 ORDER BY 발생횟수 DESC

창경원범죄.png

창경원에서 발생한 '범죄' 사건 중 ‘절도', '검거’사건에 대한 계절 분포

 match (a:Event)-[]-(b:Park{name:'창경원'})
 where a.type='절도'
 or a.type='검거'
 return a.season as 계절, count(a) as 발생횟수 order by 발생횟수 desc

창경원절도검거.png

공원 별 사건 수 - 창경원이 가장 많음

 match (a:Park)-[]-(b:Event)
 return a.name as 공원,
 count(b) as 사건_수 order by 사건_수 desc

공원별사건수.png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공원이었기에 행사와 범죄가 비슷한 건수로 많고 동물원이나 전차 등 여러가지 시설이 있었기에 사건사고도 많았다. 검거와 절도가 발생횟수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고, 데이터 속 검거가 전부 소매치기단의 검거 즉, 절도 사건에 대한 검거임을 확인하였다. 창경원은 유원지의 역할도 수행하며 동물원이 같이 존재했고 꽃이 가득한 정원들도 존재해 꽃구경, 나들이등을 하러 온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주를 이뤘다. 따라서 나들이객을 노린 소매치기 범죄가 많았고,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이면서 꽃 구경을 함께할 수 있는 계절인 봄과 여름에 절도 사건이 몰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창경원의 역할 ]
창경원은 경성시대 공공공간 가운데에서도 사건 보도 빈도가 유독 높은 장소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사건 발생률의 문제를 넘어, 창경원이 지닌 공간적·사회적 특수성과 식민지 시대 언론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본래 궁궐이었던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1909년 동물원과 식물원이 포함된 유원지로 전환되며, 전통적 권위의 공간이 대중적 오락 공간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공간의 전환은 조선인 대중에게 심리적 충돌을 야기했으며, 창경원은 근대적 소비와 식민지 권력이 교차하는 대표적 장소로 자리매김하였다. 무엇보다 창경원은 입장료가 저렴하고 공간이 개방되어 있어 다양한 사회 계층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고, 어린이, 여성, 가족 단위 방문객이 밀집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다층적 계층의 혼재와 밀집은 사소한 충돌부터 범죄 사건까지 다양한 사회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였다. 또한 창경원은 식민지 권력이 조선인의 '문명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대표 공간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창경원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단순한 일상의 사건이라기보다는, 통제되지 않은 식민지 현실의 일면이거나 '조선인의 미개함'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로 언론에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창경원은 시각적 요소가 풍부하고 매체 친화적인 장소이기도 하였다. 동물, 자연, 어린이, 행사 등 기사화하기에 적절한 소재가 많았기 때문에, 언론 입장에서도 취재와 편집이 용이한 장소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7. 탑골공원

[ 탑골공원의 사진 ]
탑골공원 사진.png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탑골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유형(type2)

 match (a:Event)-[]-(b:Park{name:'탑골공원'})
 return a.type2 as 유형, count(a) as 발생횟수 order by 발생횟수 desc

탑골공원에서 발생한 '범죄' 사건의 유형(type)

 match (a:Event{type2:'범죄'})-[]-(b:Park{name:'탑골공원'})
 return a.type as 유형, count(a) as 발생횟수 order by 발생횟수 desc

탑골공원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명

 match (a:Event{type:'실종'})-[]-(b:Park{name:'탑골공원'})
 return a.name as 사건명

탑골공원쿼리들2.png

탑골공원에 여아 실종이 많은 이유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을 기준으로 보면, 탑골공원에서 여아가 연속적으로 실종되었다는 보도는 여러 차례 등장한다. 특히 공원을 중심으로 한 도심지에서 어린아이가 사라졌다는 기사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며 빈번하게 실렸다. 하지만 이들 사건 가운데 명확히 범인이 검거되거나, 실종자의 행방이 밝혀진 경우는 드물다. 즉, 당시의 대부분 실종 사건은 미제로 남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당시 조선총독부 치하의 수사 인프라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찰 조직은 치안 유지보다는 독립운동 감시와 정치적 통제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고 있었고, 일반 형사 사건, 특히 아동 실종이나 납치 사건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쉬웠다. 게다가 당시 수사 방식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지문 채취나 사진 기록, 목격자 탐문조차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실종 사건의 배경을 보면, 단순한 유괴라기보다는 빈곤층 아동의 가출이나 유기, 혹은 부모에 의한 방임이 원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이러한 실종을 ‘납치’나 ‘연속 실종’ 등의 제목으로 자극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탑골공원은 경성 도심의 중심부에 위치한 상징적 공공장소였기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충격이 컸고, 공포심이 확산되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의 공공장소, 특히 공원은 오늘날과 같은 집중적인 관리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범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다. 인력이 부족한 경성의 경찰 행정 구조상, 밤에는 치안 공백이 발생했고, 실종된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공원인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결국, 1930년대 경성에서 발생한 탑골공원 내 여아 실종 사건은, 당시의 열악한 사회적 보호체계, 수사력 부족, 빈곤과 방임이라는 사회적 현실이 맞물려 다수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이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아동 범죄에 대한 경성 시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탑골공원의 역할 ]
1930년대 경성에서 탑골공원은 단순한 쉼터 이상의 복합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조선 최초의 서양식 공원으로 조성된 이후, 근대적 시민사회의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산책을 하거나 신문을 읽고, 지인들과 만남을 갖는 등 일상적인 여가 활동을 즐겼으며, 봄과 가을철에는 음악회나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동시에 탑골공원은 정치적 상징성도 지니고 있었다. 3·1운동이 시작된 장소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의 역사적 기억이 깃든 공간이었으며, 이후에도 경찰의 감시 아래에서 간헐적으로 집회나 민중 연설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이곳을 단순한 공원이 아닌, 저항과 기억의 장소로 만들었다. 그러나 탑골공원은 도시의 그림자 또한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당시의 신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곳에서 자살 사건이나 시체 발견, 유기 사건 등이 자주 발생했다. 이는 공원이 사회적 약자들의 은신처나 마지막 피난처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실직자나 노숙자, 고아들이 머무는 장소로 활용되면서 도시 빈곤의 단면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언론에 자주 보도되며 공공질서 문제로 지적되었고, 신문사들은 이를 통해 도시의 병리와 치안의 허점을 비판하는 사회 담론을 형성했다. 결국 탑골공원은 근대 도시 경성의 이중적 얼굴을 모두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 여가와 문화, 저항과 기억, 그리고 사회적 병리가 교차하는 이 공원은 당시 도시민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공적 무대이자, 시대의 모순과 현실이 농축된 상징적인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8. 한양공원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한양공원 사건 유형(type2)

 match (a:Event)-[r]-(b:Park{name:'한양공원'}) return a.type,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한양공원 사건 유형(type)

 match (a:Event)-[r]-(b:Park{name:'한양공원'}) return a.type2, count(a) as 사건발생횟수

한양공원사건.png

한양공원의 사건 적은 이유
경성시대의 공원 중 한양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은 언론 보도 기준으로 3건에 불과해, 남산공원이나 탑골공원 등과 비교할 때 현저히 적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사건 빈도의 차이뿐 아니라, 한양공원의 지리적 위치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한양 공원은 경성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있었고, 다른 공원처럼 대규모 공간이나 관광 명소로서의 성격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사람들의 왕래를 제한하고, 그에 따라 사건 발생 가능성 자체를 낮췄을 수 있다. 즉,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어 한양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적은 것이다.

[ 한양공원의 역할 ]
1930년대 초반 한양공원에서는 보도 상 발생한 사건이 적었으나, 3개 중 2개의 사건이 자살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 유형은 한양공원이 지닌 공간적 특성과 당시 경성 사회의 긴장 및 불안감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한양공원은 도심 외곽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 접근성은 낮았으나, 산지와 인접한 자연 공간으로서 은둔과 고립의 장소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자살 시도자들에게 물리적 은신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한양공원은 상대적으로 방문객이 적고, 다른 공원에 비해 여가나 문화 행사보다는 개인적·비공식적 용도로 이용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로 인해 자살과 같은 극단적 개인 행위가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9. 홍릉수목원

[ Cyphert Query 및 분석 결과 ]
홍릉수목원에서 발생한 사건 중, 그 사건의 주체가 된 집단과 그들의 직업

 match (d:Group)-[r1:isMainbodyOf]-(b: Event)-[r2: happensIn]-(c: Park{name: "홍릉수목원"})
return d.name as 집단, d.job as 직업

홍릉수목원에서 발생한 사건 유형(type2)과 발생횟수

 match (a: Event)-[: happensIn]-(b: Park{name: "홍릉수목원"})
 return a.name as 사건명, a.type2 as 유형

홍릉수목원쿼리들.png

[ 홍릉수목원의 역할 ]
홍릉수목원은 192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수목원으로 원래 홍릉이 있던자리에 설립되었다. 본래는 홍릉은 1897년에 명성황후의 능이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능이 1919년에 경기도 금곡으로 이장되면서 그자리에 지금의 홍릉수목원가 생겼다. 쿼리를 통해 1930년대 홍릉수목원에서 일어난 이벤트들을 분석해 보았고 이를 통해 홍릉수목원의 역할을 알아보았다. 홍릉수목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단 1 개뿐이라 이를 곧바로 공원의 역할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홍릉수목원이 국가 주도로 산림 시험장과 수목원으로의 역할을 위해 개발되었는 점에서, 해당 기사는 이와 같은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 공원의 역할로 내용을 확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동공립보통학교 2학년 학생들이 소풍지로 방문했다는 사실은, 홍릉숲이 일반 시민의 접근이 가능한 공간이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수목원으로서 자연 체험 학습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목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여가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10. 효창원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효창원에서 발생한 '행사' 사건의 유형

 match (a:Event{type2:'행사'})-[r]-(b:Park{name:'효창원'}) 
 return a.type, count(a) as 발생횟수 order by 발생횟수 desc

효창원행사유형.png

효창원에서 군행사 자주 개최된 이유
효창원이 이러한 역할을 맡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곳은 조선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의 묘가 자리하던 왕실 묘역으로서, 이미 역사적이고 공공적인 상징성을 지닌 장소였다. 이 상징성은 효창원을 단순한 공원이 아닌 국가적 의례가 가능하다는 공간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둘째, 효창원은 용산과 인접해 있었는데, 당시 용산은 일본군의 병참기지와 헌병대, 숙영지 등이 밀집한 군사 요충지였다. 따라서 군대의 이동과 주둔, 행사를 위한 접근성이 매우 뛰어났다. 마지막으로, 일제는 이러한 상징성과 지리적 장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효창원을 식민통치의 상징적 공간으로 재배치하고 통치 권위의 시각적 구현물로 만들었다.

[ 효창원의 역할 ]
1930년대 경성에서 효창원은 군사 및 기념 행사가 자주 열리는 주요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열병식, 위령제, 식수 행사 등의 공식 의례를 이곳에서 반복적으로 주최하며, 효창원을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닌 의례적·기념적 장소로 재편하였다. 나아가 일제는 이 공간을 조선인에 대한 통치 질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활용하였다. 효창원은 조선 왕실의 유산을 식민 권력이 주도하는 공공공원으로 바꾸고, 이를 통해 ‘새로운 국가질서’를 각인시키려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1. 훈련원공원

[ Cypher Query 및 분석 결과 ]
훈련원공원 사건 유형

 MATCH (e:Event)-[:happensIn]->(p:Park{name:'훈련원공원'})
 RETURN  e.type AS 사건유형, COUNT(*) AS 발생횟수

훈련원사건유형.png

공원 별 행사 수 - 훈련원공원이 가장 많음

 match (a:Event)-[r]-(b:Park) 
 WHERE a.type2 = "행사"
 return b.name as 공원  ,COUNT(*) AS 행사수
 ORDER BY 행사수 DESC

공원별행사수.png

훈련원에서 대규모 행사가 많이 일어난 이유
중요한 점은 이곳이 조선시대 군사 훈련장이었던 훈련원의 부지였다는 점이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이 공간은 대규모 공터로 남아 있었고, 이는 다른 공원들과 달리 자연지형이나 조경 요소가 적은 빈 평지 형태의 개방성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물리적 특성은 병력 정렬, 퍼레이드,시연 등 넓은 공간을 요구하는 행사들을 수월하게 개최할 수 있게 했다. 또한 1925년 이 자리에 경성운동장이 조성되면서, 훈련원공원은 본격적으로 연병장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집단적 시연과 질서의 전시를 위한 최적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훈련원공원의 결정적 특성은 단순한 접근성이나 면적이 아닌, 조경되지 않은 대형 공터라는 공간 구조와, 그것이 식민 통치 기획 안에서 기능적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 훈련원공원의 역할 ]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훈련원공원은 소방 출초식, 군사 퍼레이드, 장례식 등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하는 공식 행사들이 집중적으로 개최되는 대표적 장소였다. 특히 이 공간은 단순한 여가나 휴식의 공원이 아니라, 집단을 동원하고 시연하는 데 적합한 구조를 지닌 정치적·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훈련원공원은 이러한 대규모 의례나 집회가 정기적으로 연출되는 무대로서, 식민지 권력이 질서와 위계를 시각화하는 데 활용된 공간이었다.

종합 분석


1930년대 경성 공원에 대한 귀납적 분석

경성시대의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 유형별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당시 공원이 단순한 여가 공간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 복합적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항목은 ‘행사’로, 전체 사건 중 약 60건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낸다. 이는 공원이 공식적인 행사, 집회, 기념일 등 공적 활동이 집중되는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행사 주최자가 경성부인 경우가 많음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행사는 식민 당국의 통치 이념을 시각화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는 유형은 ‘범죄’이다. 약 40건 정도로 나타난 범죄 사건의 빈도는, 공원이 사회적 긴장과 불안이 표출되는 장소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공원이 도시 내 계층 간 갈등, 빈곤, 실업 등 구조적 문제가 가시화되는 공간이었음을 의미하며, 도시화가 진전되던 경성의 현실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또한 ‘자살’, ‘사건’, ‘치안’ 등 개인의 위기나 사회적 불안을 나타내는 사건들도 중간 수준의 빈도로 발생했다. 이는 공원이 익명성과 개방성을 지닌 장소로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이나 사회적 갈등이 드러나는 공간이었음을 반영한다. 반면, ‘스포츠’나 ‘여가’와 같이 비교적 긍정적인 활동들도 일정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공원이 근대 도시 속에서 시민들의 여가와 체육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근대 공원의 본래 목적과도 부합하며, 중산층의 문화 형성과 도시적 생활 양식의 확산과도 관련이 있다. 결국 경성시대의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서, 행사와 여가가 공존하고, 사회 불안과 갈등이 투영되며, 근대 도시의 다양한 층위가 교차하는 중요한 공공장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공원은 식민 통치의 도구이자 도시 민중의 일상적 활동 무대였으며, 동시에 개인의 위기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응축된 장소이기도 했다.

신문사 별 많이 다룬 사건 유형

 MATCH (e:Event)-[:isWrittenAt]->(a:Article)
 WHERE not e.type='null' AND not a.press='null'
 RETURN a.press AS 신문사, e.type AS 사건유형, COUNT(*) AS 다룸횟수
 ORDER BY 다룸횟수 DESC

신문사사건유형.png

1.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초창기 민족신문적 성격을 띄면서도, 1925년 치안유지법의 시행과 함께 1930년대 이후로는 사건, 범죄 중심의 경찰 보도자료나 관보를 참고한 기사가 많았음. 이후 방응모 사장 체제 이후로는 친일 논조가 확대되며 일본제국을 찬양하는 기사가 많이 실렸으면 일제의 치안 유지 및 통제 프레임에 동조하고자 범죄 사건을 자주 다룬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20년대부터 조선체육회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1920년 후반에서부터 1930년대에 체육, 청소년 계몽 운동에 적극적이었고, 각종 체육 대회 등을 보도하며 민족 자긍심 고취를 꾀했다. 이는 동아일보의 고위층 중 문화인, 교육자, 천도교 계열 인사들이 많아 체육 교육에 적극적이었던 영향도 있다. 이후 동아일보는 강한 민족의식에 바탕해 스포츠 보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 1936년에 손기정 선수의 보도에서 일장기를 말소시키며 정간을 경험한다.

공원에서 자살 사건이 많은 이유

 MATCH (e:Event)
 WHERE e.type2 = "자살"
 RETURN e

자살이유.png

자살 사건이 많음. 공원에서?? << 이 부분 주목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에서는 공원에서 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이 종종 기사에 등장한다. 이는 단순히 장소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회적·심리적 구조 속에서 자살이 갖는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이 시기는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와 이웃 간의 유대는 약화되었고, 도시로 유입된 이주민들은 낯선 환경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경험했다. 이러한 배경은 실업, 가난, 병으로 인한 삶의 압박과 맞물리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강화시켰다. 특히 혼자 거주하던 독신자들이나 청년층, 기혼 여성의 자살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보도도 있다. 공공장소인 공원을 자살의 장소로 선택한 데는 상징적 이유도 있었다. 일부 사례에서는 자살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고 싶다는 ‘메시지적 행위’로 기능했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중반, 경성의 한 공원에서 발생한 여성 동반자살 사건의 생존자는 구조 후 “세상이 너무 차갑고 무심해서 차라리 공원 한복판에서 죽고 싶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는 단순히 조용히 죽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사회에 ‘보여주고 싶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언론과 의료계는 자살을 일종의 사회병리 현상으로 규정했다. 신문에서는 자살을 ‘광증’이나 ‘퇴폐적 감성’의 결과로 묘사하며, 개인의 정신 건강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가 함께 막아야 할 문제로 접근했다. 동시에,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은 과학적 설명보다 도덕적·윤리적 시선에서 평가되었고, 이는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더욱 강화했기에 이에 대한 반발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일부 자료에서는 특정 공원이나 장소를 중심으로 자살 시도가 반복되는 ‘모방 자살’ 현상이나, 집단 자살을 암시하는 보도들도 있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자살이 단지 개인의 내면 문제를 넘어서, 당대 사회가 낳은 구조적 스트레스와 무력감의 표현이자, 때로는 주목받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요컨대, 경성의 공원에서 자살이 빈번했던 이유는 단순한 공간적 편의가 아니라, 그 장소가 갖는 상징성과 사회적 고립, 그리고 자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시대적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공공장소에서의 자살이 하나의 ‘사회적 언어’로 기능했던 셈이다.

암장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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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를 왜 암장했을까? 매장비용이 비쌌나?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에서는 공원에서 소아(어린이)를 암매장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신문 기사에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범죄 행위를 넘어서, 당시의 사회 구조와 경제 상황, 공공제도의 부재, 그리고 문화적 인식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매장을 위한 비용 부담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당시 경성에는 공설묘지가 존재했지만, 매장 허가를 받기 위한 수수료, 묘역 임대료, 제단비용, 매장 인부의 인건비 등이 발생했기 때문에 특히 가난한 계층에게는 정식 매장이 매우 큰 부담이었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인 가족일수록 정식 절차를 거치기보다는 암암리에 아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불어 당시 조선총독부와 경성부는 빈민층이나 미혼모, 장애아동, 유기아동을 보호하는 체계적인 복지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보육원이나 양육 시설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지역 사회나 종교 단체의 비공식적인 도움에 의존하던 구조였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개입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아이의 죽음에 대해 외부에 알리거나 책임을 지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몰래 시신을 처리하려는 선택이 이뤄졌던 것이다. 공원은 그러한 선택을 실행하기에 비교적 적합한 장소로 여겨졌다. 당시 경성의 공원들은 도심 속의 녹지 공간으로 낮에는 사람들이 왕래했지만, 밤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경비 인력이나 순찰이 부족했다. 특히 규모가 큰 공원은 구석진 공간이 많아 몰래 무언가를 묻거나 숨기기 쉬운 환경이었다. 이는 공원이 단순히 여가 공간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문화적 요인도 작용했다. 당시에는 미혼모나 간통, 유전 질환, 장애 등의 이유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으며, 이런 아이들이 사망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나 낙인을 피하려는 의도가 암매장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즉, 법적 처벌보다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시대 분위기였다. 결과적으로, 1930년대 경성에서 공원 내 소아 암매장이 빈번했던 이유는 단순히 매장 비용이 비쌌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 뿌리내린 빈곤, 제도적 공백, 사회적 낙인 회피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충격적인 일이지만, 당시에는 비극적 현실을 은폐하고자 한 하나의 ‘비공식적 대응 방식’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교통사고 및 전차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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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이유.png

교통사고 및 전차 사고- 지리적 특성 정리, 당시에는 차도 많이 없었을텐데?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 특히 탑골공원 앞에서 교통사고가 빈번히 발생한 것은 단순히 차량 수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도로환경과 교통체계, 시민의식이 미비했던 점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결과였다. 우선 1930년대 경성에는 이미 자동차가 점차 확산되고 있었다. 조선인과 일본인 상인들이 자동차를 판매·운행하기 시작하면서 차량 수 자체는 당시 기준으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차량들이 전차, 인력거, 자전거, 심지어 소·마차와 같은 다양한 교통수단들과 도로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물리적으로 충돌 위험이 높은 교통 혼합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더불어 당시 경성의 도로망은 현대적 기준에 비춰보면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탑골공원 앞은 전차가 지나는 주요 도로와 가까웠고, 노면이 고르지 않으며, 도로 폭도 넓지 않아 차량과 보행자의 공간이 뚜렷이 분리되지 않았다. 비포장 도로나 배수시설 미비로 인한 미끄러움, 노면 상태 불량 등은 사고 위험을 더욱 높이는 요소였다. 시민의 교통의식도 아직 성숙하지 않은 단계였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개념이 널리 확산되지 않았고, 도로를 자유롭게 건너는 보행자,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어린이, 도로 가장자리를 걷는 노인 등 보행자 스스로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보행권과 차량의 우선권이 정립되지 않은 가운데, 보행자와 차량이 얽히는 일이 빈번했다. 무엇보다 탑골공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교통 혼잡을 유발하기 쉬운 요인이었다. 이곳은 시민들이 산책하고 모이는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자, 각종 집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다. 따라서 공원 앞 도로는 주말이나 기념일이면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렸고, 전차 정류장이 인근에 있어 차량과 전차, 보행자가 동시에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결국 당시 탑골공원 앞의 교통사고는 단순한 운전 부주의나 차량 과속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차량 수는 제한적이었지만, 도로의 물리적 조건과 미정립된 교통질서, 그리고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이는 경성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초기 도시 교통 혼란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공원에서 범죄 모의가 많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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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범죄모의.png

공원에서 범죄 모의 多: 당시에 모일 장소가 부족?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에서 공원은 단순한 휴식처나 산책 공간에 그치지 않고, 범죄를 모의하는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었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강도단이나 절도단, 심지어 사기범들이 공원에서 만나 범행을 계획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오늘날 기준에서 공원은 밝고 공개적인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당시 공원은 오히려 ‘반공개적’이고 ‘은밀한 대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여겨지던 경향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우선 당시 경성의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매우 부족했다는 점이 있다. 사적 공간은 대부분 협소하거나 감시의 대상이었고, 공공건물이나 상업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선 행정적 허가가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사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공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공원은 자연스럽게 ‘조용히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 선택되었다. 실제로 공원 벤치나 정자, 그늘진 숲속은 낮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저녁에는 인적이 드물어지는 구조여서 은밀한 만남에 적합했다. 또한 공원은 일정 수준의 공공성과 익명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어도, 지나가는 행인처럼 보이기 쉬웠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도 특별히 의심을 사지 않았다. 특히 탑골공원, 효창공원, 숭례문공원 등은 전차 정류장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았고, 학생·청년층의 유입도 많아 ‘누가 누구와 모이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 시기의 경찰력은 주로 정치적 단속, 독립운동 감시, 치안 유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모임이나 대화 차원의 모의 범죄는 수사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공원에서의 모임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되긴 했지만, 단속 기준이 애매하고 감시망도 느슨해 실질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결국, 경성의 공원에서 범죄를 모의하다 적발된 사례가 많았던 것은, 단순히 범죄자가 공원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이 공원이 은밀한 만남의 장으로 기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공원이 지닌 ‘공공적이면서도 감시가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는 이중적 성격이 범죄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의 비공식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식물 절도 처벌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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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중처벌.jpg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 특히 효창원에서는 식물을 절도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당시 공원에서 나무나 꽃을 몰래 캐가는 일이 단순한 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범죄였다. 1930년대 경성에서는 화훼류나 조경용 식물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희귀하거나 관리 상태가 좋은 식물들은 민가나 식물 상회에서 적지 않은 값에 거래되곤 했다. 효창원처럼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녹지 공간은 일반인 접근이 쉬웠고, 식물 상태도 양호했기 때문에 절도 대상이 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처음 식물 절도범이 적발되었을 때, 경찰은 범인을 훈방 조치하는 데 그쳤다. 이는 당시 사회 전반에 걸쳐 공공 녹지에서의 절도를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같은 미온적 조치는 의도치 않게 모방 범죄를 유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문에서는 식물을 절도하고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기사가 등장했고,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험 부담 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신호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관할 당국과 언론은 입장을 바꾸게 된다. 이후 “식물 절도는 더 이상 관용 없이 엄중히 다스릴 것”이라는 방침이 보도되었고, 실제로 이후 검거된 절도범들에 대해서는 벌금형 또는 징역형과 같은 실질적 처벌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조경 훼손이 아니라 공공자산에 대한 침해, 그리고 반복적 범행 가능성을 내포한 사회 문제로 인식이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식물 절도는 효창원뿐만 아니라 탑골공원, 경성역 인근 화단 등지에서도 발생했으며, 절도범들이 단독범이라기보다는 둘 이상이 짝을 지어 행동하는 ‘절도단’ 형태를 띠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식물 절도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범죄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경성에서 발생한 공원 내 식물 절도 사건은 식물이 실제로 경제적 가치가 있었고, 이에 따라 절도 동기가 분명했으며, 사회적 관용 분위기와 제도적 허점이 맞물려 모방 범죄를 불러온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공공 공간의 관리가 단순한 시설 운영을 넘어 도시 질서 유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행사 별 범죄율 증가 여부

씨름대회-절도범죄(행사 별 범죄율 증가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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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DER BY 해당월_범죄발생수 DESC

행사시기범죄.png

당시 주소지가 갖는 의미

주소지.jpg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 시기 신문 보도를 살펴보면, 범죄자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때 이름 옆에 반드시 거주지를 함께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단순한 신상공개 차원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행정 체계와 치안 질서, 그리고 대중 심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우선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철저한 주민 통제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며, 주소지는 개인의 신분과 이동, 조세, 징병, 치안 감시 등의 모든 법적 절차의 기준점이었다. 당시에는 주민등록번호나 고유 식별자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보는 이름과 주소였다. 때문에 언론 또한 범죄자 보도를 할 때 행정기관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름과 함께 거주지를 명시하며 공적 정보로서의 신뢰성을 높이고자 했다. 또한 주소 표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심리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로 작용했다. “종로4정목에 거주하는 김○○” 식의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이런 일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감각을 갖게 만들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문단속 강화, 야간 외출 자제 등 자발적인 범죄 예방 행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치안이 완비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언론을 통한 간접적 치안 효과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당시에는 공공 치안과 범죄 통제에 대한 국가적 감시가 강력한 시기였고, 언론 또한 그러한 흐름에 부응해 범죄자의 구체적인 정보 노출을 통해 ‘범죄는 숨길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는 범죄 억지 효과뿐 아니라, 범죄자 검거의 정당성과 행정기관의 대응 능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효과도 노렸다. 결국, 1930년대 경성에서 범죄자의 주소를 기사에 표기했던 것은 단순한 서술 방식이 아니라, 신분 확인의 기준, 지역 사회의 경각심 유도, 행정기록의 정합성 유지, 치안 확산 효과 등 다양한 목적을 포괄한 사회적 관행이었던 셈이다. 주소는 당시 사회에서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소속과 책임을 상징하는 중요한 식별 수단이었던 것이다.

벚꽃 등 나무 식생 조사(미화, 기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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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오개년.png

1930년 1월 1일부터 1936년 3월 31일까지의 경성에서 진행된 식수 오개년 계획은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라, 도시 공간을 근대적으로 재편하고 시민의 여가 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식민지 행정의 일환이었다. 장충단공원과 남산공원에 벚나무, 효창원과 파고다공원에 백단(백합나무), 삼청동 공원에는 홍엽수(단풍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은 이 계획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도심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한 시각적 전략이자, 도시민의 문화적 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다. 당시 공원들은 단순한 녹지 공간을 넘어, 근대적 여가 생활이 구현되는 무대였다. 특히 벚나무가 식재된 남산공원과 장충단공원에서는 봄철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맞춰 소규모 음악회나 시민 야외 모임이 열렸고, 젊은 남녀가 함께 산책하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신문에 간간히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벚꽃 데이트’라 부르는 문화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장충단공원은 전차 노선과 가까워 접근성이 뛰어났고, 주변에는 근대식 음식점과 다방이 형성되어 있어 연인들이 하루 나들이 코스로 이용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가을철 단풍나무가 심어진 삼청동 공원이나 백단이 조성된 효창원, 파고다공원 등도 유사한 기능을 했다. 이러한 공원들은 계절감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일제 당국이 근대적인 ‘문화 도시’ 경성의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조성한 상징적 무대였다. 공원에서의 식수 계획은 조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모이고, 사진을 찍으며 근대적 감각을 체험하도록 기획된 일종의 문화정책이었다. 이러한 공간들은 현재까지도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남산과 장충단공원은 여전히 서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로 남아 있으며, 삼청동 일대는 가을마다 단풍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물론 당시 심은 수목들이 모두 살아남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시기 조성된 식재 구조와 계절 중심의 경관 기획은 오늘날까지도 도시문화의 일부로 계승되고 있다. 결국, 1930년대 식수 오개년 계획은 도시 미관을 넘어서 시민의 감각과 일상을 바꾸는 공간 문화 기획이었고, 공원은 그러한 변화를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이 안에서 계절의 풍경은 단지 배경이 아닌, 시민들의 산책과 만남, 데이트, 음악회, 사진 촬영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연구 후기



2SJ25KU 🐰 좋은 조원들이랑 최고의 조장님 만나서 진짜 뜻깊은 조별과제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게 될까 싶었던 데이터가 하나 둘 모여서 근사한 데이터 시트가 되고 쿼리까지 짜보니 너무 뿌듯하고 좋았습니다. 정말 많이 고생한 조장님과 나머지 조원들 모두 감사합니다~



BJS25KU 🐯 조장님과 다른 조원분들이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셔서 그동한 했던 팀플들 중 가장 재밌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서로 다른 공원들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사건들이 데이터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새롭게 관계를 맺고 의미를 가지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의 다른 데이터들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습니다.



SJH25KU 🐣 조장님의 리더쉽과 팀원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빠른 시간 내에 연구를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각자 맡은 바를 잘 수행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1930년대 경성의 공원을 연구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각 공원이 맡은 역할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대규모의 행사도 많이 일어났던 것이 놀라웠습니다.
네오포제이를 활용하여 시각화를 해서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KNY25KU 🐸 관심 있던 주제를 더 깊게 탐구해볼 수 있어서 너무 뜻깊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위키와 온톨로지 등 전부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었는데
교수님과 조원분들 덕분에 좋은 결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_^7



LWG25KU 🐹 공원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고,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네오포제, 위키 등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도구들을 직접 활용해가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큰 배움이었고, 실제로도 많은 성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장님과 조원분들 덕분에 이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코멘트


기생하조

CHS25KU 🐰 군더더기 없이 짜인 온톨로지, 그리고 명확한 데이터 선정 근거, 근간이 되는 명확한 문제 의식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솔직히 데이터인문학 수업 내내 부러운 팀이었습니다. 명확한 문제의식과 분명한 선정기준을 사전에 잘 수립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게 왜 중요한지 해당 팀이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연구 결과의 경우도 산책 불륜 노숙 빼면 공원의 역할이 무엇이 있겠냐고 생각하던 제 오만함과 달리, 조에서 추론한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매우 흥미롭게, 또 공원별로 개성있게 도출되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소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흔하지 않게 풀어나가신 것 같아 팀의 고뇌와 노력이 엿보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NJW25KU 🐯 1930년대 경성의 각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공원의 사회적 기능을 분석한다는 연구 개요 자체가 처음부터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매 주차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가장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이고 깔끔하게 연구를 전개해 나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각 공원에서 어떤 사건이나 행사가 반복적으로 일어났는지를 파악하고, 그 이유를 맥락에 맞게 설명해내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한 여가 공간으로서가 아닌, 공원이 당대 사회 안에서 갖는 다양한 의미를 설득력 있게 증명한 연구였습니다.

훌륭한 연구 잘 봤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JSB25KU 🐣 해당 팀 연구에 대한 코멘트를 작성해 주세요



LJA25KU 👍🏻 공원의 성격에 대해 분석해보신다는 연구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공원의 성격이 세분화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최종 발표를 들으며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겠지만 공원이라는 일상적인 장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본 적이 없어 해당 조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분석을 듣고 사회적 맥락과 결합이 되어 있는 한,' 일상적인 장소일지라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고 수고하셨습니다!



CKH25KU 🐹 사고부터 행사까지, 사실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 바로 공원인데 그것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없는 것 같습니다. 범죄사건부터 행사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각 공원들을 중심으로 짜여진 온톨로지가 매우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회맥락을 중심으로 공원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파트사조

PSH25KU 🐰 산책하조와 저희 조 모두 사건을 중심으로 어떠한 공간을 재조명한다는 의미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책하조의 연구페이지를 보며 더 감탄했던 것 같습니다. 개별 공원의 성격을 각각 분석한 것도 너무 재미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특히 효창공원의 성격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교수님께서 데이터 구성을 잘 한다면, 간단한 쿼리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거기에 가장 잘 부합했던 조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KMC25KU 🐯 많은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의미한 쿼리를 분석한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사건을 공원의 지리적, 사회문화적 특성과 연결해 분석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단순 데이터 분석뿐만 아니라 각 공원에 대한 자료 조사도 많이 하시고 해석 단계에서도 맥락 적용과 추론 등 적극적으로 해석을 시도하신 게 대단하신 것 같아요! 수고하셨습니다!



KZO25KU 🐣 당시 공원의 특징을 데이터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던 연구였습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 설명해주어서 좋았습니다.



LMC25KU 👍🏻 공원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위해서 기울인 많은 자료조사 또한 인상깊었지만 그 자료를 토대로 만든 쿼리를 해석하는데 있어 산책하조의 강점이 들어났던 것 같습니다. 경성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통해 공원으로 당대 경성을 여행한 것 같은 느낌이 좋았습니다. 많은 노력이 들어간 게 느껴졌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JTR25KU 🐹 사실 저희 조와 연구 주제나 방식이 공원과 아파트라는 주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의 시작점이 유사하여 어떤 점이 비슷했고 어떤 점이 달랐는지 관찰하며 가장 흥미롭게 봤던 연구입니다. 출발이 비슷해 보이는 연구도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는 부분이었고, 특히 편찬된 데이터를 통해 각 공원별 특징 및 기타 유의미한 결론들을 정말 많이 도출해내신 것에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경성헤르조

KYC25KU 🐰 각 공원들의 특징점들을 디테일하게 조사하시고 이를 기사에 등장한 이벤트들과 연결시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신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덕분에 이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1930년대 경성의 공원들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알 수 있어 정말 유익했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PSE25KU 🐯 우선 공원이 사건 발생의 중심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연구 소재로 삼으신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 매 강의 시간마다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연구를 보면서 뭔가 엄청난 연구가 나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구 페이지를 보고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이터가 굉장히 잘 정제되어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각 공원의 의미를 꼼꼼히 정리해 주셔서 청중으로서 연구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 공원의 특징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모든 공원을 모아 종합적 분석을 제시한 것도 위 연구를 매우 유의미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임장의 이유를 분석해주신 것, 벚꽃 등 나무 식생 조사를 통해 1930년대의 공원과 현대의 공원을 연결해 주신 점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한 학기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



KTE25KU 🐣 처음 주제를 선정하며 조를 만들 당시 공원이라는 소재를 들었을 때 과연 그 모든 공원에 대해서 사건과 위치 등의 자료를 모두 수집하는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신게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공원의 위치에 따라서 사건의 발생 양상이 달라졌다던지,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뭐였는지 등 단순히 공간의 위치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현상 혹은 개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연구 시각이 인상깊었고 스토리텔링 식으로 발표를 해주셔서 정말 집중하며 발표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KHR25KU 👍🏻 체계적인 연구 설계 단계부터 조원분들이 한 학기동안 얼마나 성실히 연구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 정리뿐만 아니라 정리된 데이터를 이용한 쿼리구성에서도 고민의 흔적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사건과 공원 연구 결과를 연결짓는 내용을 설명해주셨는데, 연구 결과가 모든 설명에 튼튼한 근거가 되어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연구결과까지도 체계적으로 마무리하셨다는 점이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연구를 보며 당시 공원의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다들 한학기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LYJ25KU 🐹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분류하는것을 넘어 발생 이유까지도 제시한 점이 좋았습니다. 1930년대 당시 공원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연구인것 같습니다.


과제그만조

JMJ25KU 😛 먼저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상되는 공원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또 단순히 시각화 결과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공간적 특성과 사회적인 맥락에서 해석을 시도한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분석 파트에서 조원분들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KJY25KU 🍻 해당 팀 연구에 대한 코멘트를 작성해 주세요



LSJ25KU 😺 1930년대 공원이라고 하면 현재의 공원과 별다른 특징이 있을까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표 내용을 보고 공원에서 정말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고, 당시 공원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개별 공원에 얽힌 미시적인 사연까지 세세히 탐구해 볼 수 있어 공원에도 나름 깊은 역사와 사연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JYJ25KU 😄 공원이라는 단순 공간이 아닌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흥미로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CNH25KU 🦖 1930년대 경성 공원이 여가뿐 아니라 통제, 범죄, 계몽 등이 얽힌 복합적 공간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온톨로지를 통해 사건과 인물, 장소를 정교하게 연결한 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암장되었던 사례는 당시의 빈곤과 제도 부재를 보여줘 가장 마음 아팠습니다. 발표 준비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고 자료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