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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KU2025:Min-Story | Story]]  》 Ep 04. 비서울대 출신 필진들의 글과 한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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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 Korean Nar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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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비서울대 출신 필자들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언론인이자 민속학자였던 {{형광펜|[https://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20192예용해 예용해(1929-1995)}}를 꼽을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던 전통과 민속 문화의 발굴<ref>[https://www-riss-kr-ssl.ca.skku.edu/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c14ec408140fd35effe0bdc3ef48d419&keyword=소준철 소준철, 「1970년대의 전통적 생활세계와 생애사적 기록: <뿌리깊은 나무>를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14.]</ref>은 필진의 분파를 막론하고 잡지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의식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주요 연재 코너였던 {{형광펜|원색화보}} 코너 중 서울대 출신 화가 {{형광펜|윤명로}}가 주도한 {{형광펜|이달의 작품}}은 {{형광펜|이항성의 그림}}(1978년 6월호), {{형광펜|천경자의 그림}}(1978년 10월호), {{형광펜|유영국의 그림}}(1979년 6월호) 등 현대와 고전의 분야를 넘나들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형광펜|한창기}} 역시 {{형광펜|골동품 가게}}(1979년 9월호), {{형광펜|한국 속의 미국인}}(1976년 7월호) 등을 제출하며 원색화보 코너에 글을 실었다. 예용해는 {{형광펜|민중의 유산}} 시리즈를 원색화보 코너에 꾸준히 연재했다. 이 시리즈는 {{형광펜|비녀}}(1979년 4월호), {{형광펜|돗자리}}(1979년 7월호), {{형광펜|향로}}(1978년 12월호)등과 같이 민속의 소품과 물건들을 실물과 함께 소개했다. 정리하자면 서울대 출신 필자들은 당대 사회 현실과 밀착된 글을 제출하고 있는 반면, 비서울대 출신 필자의 글은 잡지의 근본 방침에 보다 충실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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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2일 (일) 09:37 기준 최신판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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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Story 》 Ep 04. 비서울대 출신 필진들의 글과 한창기



Episode 4 Korean Narrative: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비서울대 출신 필자들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언론인이자 민속학자였던 를 꼽을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던 전통과 민속 문화의 발굴[1]은 필진의 분파를 막론하고 잡지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의식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주요 연재 코너였던 원색화보 코너 중 서울대 출신 화가 윤명로가 주도한 이달의 작품이항성의 그림(1978년 6월호), 천경자의 그림(1978년 10월호), 유영국의 그림(1979년 6월호) 등 현대와 고전의 분야를 넘나들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한창기 역시 골동품 가게(1979년 9월호), 한국 속의 미국인(1976년 7월호) 등을 제출하며 원색화보 코너에 글을 실었다. 예용해는 민중의 유산 시리즈를 원색화보 코너에 꾸준히 연재했다. 이 시리즈는 비녀(1979년 4월호), 돗자리(1979년 7월호), 향로(1978년 12월호)등과 같이 민속의 소품과 물건들을 실물과 함께 소개했다. 정리하자면 서울대 출신 필자들은 당대 사회 현실과 밀착된 글을 제출하고 있는 반면, 비서울대 출신 필자의 글은 잡지의 근본 방침에 보다 충실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