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KU2025:Mi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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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숨기기]스토리라인: «뿌리깊은 나무» 주요 필진 네트워크와 글의 경향성
Storyline Narrative
에피소드 1: 서울대 네트워크의 구축
Episode 1 Korean Narrative:
1968년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설립한 한창기(1936-1997)는 1976년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다. 당시 출판계 및 지식인 사회에서 마당발[1]로 유명했던 그가 구축한 필진 네트워크의 중심은 단연 서울대학교였다. 1961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한창기는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직원이자 «뿌리깊은 나무»의 2대 편집장을 맡게 될 김형윤(1946-)을 비롯해 «문학과지성»의 창간인이자 당대의 유력한 비평가였던 김현(1942-1990), 작가 이청준(1939-2008), 사회학자 한완상(1936-), 영화감독 하길종(1941-1979), 화가 윤명로(1936-) 등 60, 61학번의 서울대 동문들을 위시로 한 필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들 대부분은 «뿌리깊은 나무»의 고정 필진에 가깝게 활동하며 잡지의 중심에서 담론 형성을 주도해나가게 된다.
에피소드 2: 서울대 출신 필진들의 글과 그 경향
Episode 2 Korean Narrative:
서울대 출신 필진들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당대의 사회 현실과 긴밀히 호흡하는 글을 제출했다. 특히 김현의 환상과 현실(1977년 6월호)와 하길종의 더 트였으면 좋았을 숨통(1978년 2월호) 등 서울대 출신 필자들이 전개해나간 비평란의 지속적인 연재는 이 경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창간인 한창기 역시 검은 사람과 흰 사람(1976년 9월호) 등으로 비평에 참여했다. 한편 김형윤 등에 의해 주도된 숨어사는 외톨박이 코너는 르포 시리즈로서 꾸준히 연재되었으며, 근대화와 민족 문화 개발이라는 국가 시책에서 소외된 이들을 재현[2]해내고 있었다. 직접적인 현실 참여 및 비판 의식이 드러나는 비평과는 달리 은유와 전시로 작동하는 재현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청준의 서편제 등 서울대 출신 작가들의 소설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일조하고 있었다.
에피소드 3: '비평가' 하길종의 영화와 문지와의 거리
Episode 3 Korean Narrative:
영화감독 하길종은 «뿌리깊은 나무»의 영화 비평 고정 필자로 활동하며 아직도 답답한 숨통(1977년 9월호), 매끈할 뿐인 작품(1977년 8월호) 등의 비평을 작성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비평 활동은 1979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이어지는데, 그는 주로 영화 검열에 대한 반발과 영화 산업의 병폐에 대한 불만을 비판적 논조를 통해 지적했다. 하길종은 그의 대표작인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도 보여준 바 있는 검열에 대한 우회적 저항[3]을 비평에서도 실현한 셈이다. 하길종은 ‹바보들의 행진› 외에도 ‹속 별들의 고향›(1978)과 <병태와 영자>(1979) 등의 영화들을 연출하며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부상한다. 상기한 작품들은 모두 당시 최고의 대중소설 작가 최인호(1945-2013)의 소설들을 각색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최인호와 하길종은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고 있었다. 이는 «뿌리깊은 나무» 필진의 또 하나의 축이었던 «문학과지성»과 하길종의 연결을 가능케한다. 1970년대 중후반 «문학과지성»은 최인호를 조명하고 있었고, 그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록한다. «문학과지성»의 편집인이었던 김현과 중심 작가였던 이청준, 그리고 하길종이라는 세 항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에피소드 4: 비서울대 출신 필진들의 글과 한창기
Episode 4 Korean Narrative: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비서울대 출신 필자들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언론인이자 민속학자였던 를 꼽을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던 전통과 민속 문화의 발굴[4]은 필진의 분파를 막론하고 잡지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의식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주요 연재 코너였던 원색화보 코너 중 서울대 출신 화가 윤명로가 주도한 이달의 작품은 이항성의 그림(1978년 6월호), 천경자의 그림(1978년 10월호), 유영국의 그림(1979년 6월호) 등 현대와 고전의 분야를 넘나들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한창기 역시 골동품 가게(1979년 9월호), 한국 속의 미국인(1976년 7월호) 등을 제출하며 원색화보 코너에 글을 실었다. 예용해는 민중의 유산 시리즈를 원색화보 코너에 꾸준히 연재했다. 이 시리즈는 비녀(1979년 4월호), 돗자리(1979년 7월호), 향로(1978년 12월호)등과 같이 민속의 소품과 물건들을 실물과 함께 소개했다. 정리하자면 서울대 출신 필자들은 당대 사회 현실과 밀착된 글을 제출하고 있는 반면, 비서울대 출신 필자의 글은 잡지의 근본 방침에 보다 충실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