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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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프로야구단
정식명칭 한화이글스 프로야구단
영문명칭 Hanwha Eagles Baseball Club
창단일 1986년 3월 8일
운영법인 한화그룹
연고지 대전광역시
상징색 주황색(FC4E00)
감독 74 김경문
영구결번 21 송진우, 23 정민철, 35 장종훈, 52 김태균
제1홈구장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제2홈구장 청주 야구장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 한화그룹이 운영하는 대한민국 야구 프로 리그 KBO의 팀.

연고지는 대전광역시로,

현재 제 1홈구장으로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제 2홈구장으로 청주 야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역사

주요 연혁

[1]

1986년: 프로야구 출범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창단식을 개최, KBO 리그에 7번째 구단으로 창단

1993년: 새로운 시작

구단명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

1999년: 팀 최초의 우승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롯데전 4승 1패)

한국시리즈 MVP 한화이글스 15번 선수 구대성(1승 3세이브)

2006년: 세대교체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류현진 2006년 신인왕, 시즌 MVP 동시 석권

2018년: 약진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정규리그 3위 달성)

2025년: 새로운 시대

류현진, 12년만의 국내 복귀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로 홈구장 이전

심볼과 엠블럼 변경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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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화 이글스는 1986년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KBO 리그에 7번째 구단으로 참가하였다.

개막전이자 첫 경기는 한밭종합운동장에서 MBC 청룡과 대결하였다.

구단이 창단된 1986 시즌부터 ~ 1987 시즌까지는 승률이 3할도 되지 않는 처참한 수준의 약팀이었으나

이후 투수에서는 이상군, 한희민, 송진우 등. 타자는 장종훈, 이강돈, 이정훈 등 에이스들을 필두로 강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특히 1992 시즌에서는 38경기만에 30승을 기록했으며, 단일 시즌 81승을 기록했다.

이 91승은 2000년 현대가 91승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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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1993 시즌부터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 등 에이스 타자들이 슬럼프와 부상으로 무너지면서 부진을 겪기 시작한다.


이러한 부진속에서 1994년 시즌, 구단명을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바꾸게 된다.

구단의 이름을 바꾸면서 새출발을 하게 된 까닭이었을까, 연이은 1994 시즌부터 구단은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된다.

특히 정민철과 구대성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우선 정민철이 중심에 있었다. 1992년 입단한 그는 빠른 직구와 정교한 제구를 바탕으로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며, 이글스 마운드의 기둥 역할을 수행하였다.

같은 시기,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구대성은 한화 마운드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강력한 체인지업과 불같은 승부욕을 무기로 마운드를 지배한 그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1승 3세이브를 기록하며 MVP에 선정되었다.

1999년, 정민철과 마무리 구대성의 탄탄한 투수진은 한화 이글스를 팀 창단 이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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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0년대 초중반, 팀의 타선을 이끈 인물은 김태균이었다. 2001년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그는 데뷔 첫 해부터 중심타선에 배치되어 신인왕을 수상하였고, 이후 꾸준히 리그 정상급 타자로 성장하였다.

2008년에는 홈런왕과 장타율왕을 동시에 석권, 리그 최고의 거포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일본 NPB에서의 활약을 마친 후 한화로 복귀해 팀의 리더 역할을 맡았다.

통산 타율 0.320, 311홈런, 1,358타점이라는 기록은 한화 역사상 가장 꾸준하고 폭발적인 공격력을 상징하며, 등번호 52번은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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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고 2006년, 팀에 새로운 희망이 떠올랐다. 고졸 신인 류현진은 데뷔 시즌에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를 동시에 수상하며 한화의 미래를 이끌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같은 해 팀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류현진은 이후에도 매 시즌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류현진은 개인적으로 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팀 전력의 불균형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2년을 끝으로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팀은 중심 투수를 잃고 본격적인 리빌딩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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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후 한화는 김응용, 김성근, 한용덕 감독 체제를 거치며 다양한 방향의 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김성근 감독(2015~2017)은 특유의 ‘혹사 논란’이 따를 만큼의 강도 높은 지도 스타일로 주목받았으며, 전술적 야구를 통해 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하지만 성적 회복은 제한적이었고, 내부 반발과 성과 부진으로 결국 중도 사퇴하게 된다.

한용덕 감독 체제였던 2018년, 한화 이글스는 오랜 침체기를 딛고 정규리그 3위,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특히 이 시기는 ‘육성’과 ‘젊은 선수 기용’에 집중하며 리빌딩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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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지만 이후 몇 년간은 다시 하위권에 머물렀고, 2020년대 초반에는 구단이 체계적인 육성과 데이터 분석을 강조하며 장기적인 팀 재건에 집중하였다. 이 시기의 핵심은 문동주, 김서현 등 유망한 고졸 투수 자원들의 발굴과 성장에 있었다. 이들은 ‘탈꼴찌’와 미래 도약을 이끌 핵심 자원으로 간주되었으며, 프랜차이즈 재건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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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도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고, 2025년 12년 만에 한화로 복귀하며 새로운 홈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인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정민철, 구대성, 김태균, 류현진은 각기 다른 시대에 활약했지만, 팀의 중흥기를 이끌며 한화 이글스의 정체성을 형성한 중심축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활약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한화 팬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자부심이자 팀의 재도약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선수 일람

영구 결번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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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현재 한화 이글스의 영구 결번은 총 4명으로, 차기 영구 결번 대상자로는 99번 류현진이 매우 유력하다.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야구장 내부에 영구 결번 기념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정민철/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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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NO.23

퍼펙트 게임에 가장 가까웠던 사나이 [12]

정민철은 1992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2009년까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우완 정통파 투수이다. 빠른 직구와 날카로운 변화구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통산 161승을 기록하였고, 이는 KBO 리그 우완 투수 최다승 기록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1999년에는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며 팀의 에이스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은퇴 후에도 해설위원과 지도자로 활동하며 야구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등번호 23번은 한화 이글스 구단 최초로 영구 결번되었다.

송진우/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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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NO.21

모든 감독의 이구동성 “고마운 투수” [14]

송진우는 1989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2009년까지 활약한 좌완 투수로, KBO 리그 역대 최다승인 통산 210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이다. 21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활동하며 불혹의 나이까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팀의 마운드를 지켰고, 2000년에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등 굵직한 기록을 남겼다. 1992년에는 다승과 세이브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며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선수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아 선수 권익 향상에 앞장섰으며, 은퇴 후에는 코치와 감독,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야구계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등번호 21번은 한화 이글스의 두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김태균/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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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NO.52

타격의 ‘팔방미남’ 김태균[16]

김태균은 2001년 한화 이글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여 2020년까지 활약한 우타 거포 1루수로, 통산 타율 0.320, 311홈런, 1,358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하였다. 2001년 신인왕을 수상한 이후, 2005년, 2008년, 2016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 2008년에는 홈런왕과 장타율왕을 동시에 차지하였다. 2010년부터 2시즌 동안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한 후 2012년 한화에 복귀하여 2020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하여 2009년 WBC에서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였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의 등번호 52번은 한화 이글스의 네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장종훈/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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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NO.35

연습생에서 전설로, ‘신화’가 된 선구자 장종훈 [18]


장종훈은 1986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고졸 연습생으로 입단하여 2005년까지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KBO 리그 최초의 40홈런 타자이자 통산 340홈런을 기록한 전설적인 거포이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 홈런왕과 타점왕, 장타율 1위를 차지하며 리그를 지배하였고, 1991년과 1992년에는 정규 시즌 MVP를 연속 수상하였다. 1999년에는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으며, 그의 등번호 35번은 한화 이글스의 첫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은퇴 후에는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타격코치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세광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로 재직 중이다.

레전드

류현진/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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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코리안 몬스터” [20]

자세한 내용은 류현진/레전드 문서 참조

라이징스타

문동주/라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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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동주는 2022년 한화 이글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우완 정통파 투수로, 시속 160km에 달하는 강속구를 바탕으로 빠르게 팀의 차세대 에이스로 떠오른 유망주이다. 고교 시절부터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투수로, 프로 입단 첫 해부터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리며 성장 가능성을 입증하였다. 공격적인 피칭 스타일과 뛰어난 구위로 ‘포스트 류현진’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향후 국가대표팀의 핵심 투수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화 이글스가 재건기에 발굴한 대표적인 신예 투수로, 프랜차이즈 스타로의 성장이 주목되고 있다.

홈구장

한화생명이글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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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에 위치

한화 이글스가 1986년부터 2024년까지 제 1홈구장으로 사용한 경기장이다.

현재는 구장의 지속적인 노후화로 인해 한화 이글스가 홈구장을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로 이전하면서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KBO 리그 최초로 포스트시즌 및 한국시리즈가 열린 야구장이다.

청주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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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위치한 야구장

한화 이글스가 2024년까지 제 2홈구장으로 사용했다.

2025년부터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가 개장함에 따라 경기가 편성되지 않고 있으며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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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에 위치한 야구장

2025년부터 현재까지 한화 이글스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장이 개장한 2025년은 한화 이글스가 창단 40주년을 맞는 해이다.

3루측 관중석 상단에 풀장 안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인피니티 풀이 설치될 예정이다.

다른 야구장의 '스카이박스 석' 등 단체 예약 관람객 대상의 서비스를 대체하는 듯하다.

팬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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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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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화 이글스는 성적에 관계없이 높은 팬 충성도와 독특한 팬덤 문화를 보유한 구단으로 평가받는다. 충청권 유일의 연고팀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1990년대 후반 우승기를 함께했던 정민철, 구대성, 송진우, 장종훈 등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중심으로 초기 팬층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꾸준히 자생적인 응원 문화가 발전해왔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팀이 장기간 리그 하위권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응원 현수막, 전광판 메시지, 원정 자발 응원 등을 통해 팀을 지지했다. 이 시기 인터넷 상에서는 “보살팬”, “#나는_행복합니다” 등 팀의 성적과 무관하게 끈질기게 응원하는 문화를 표현한 밈이 확산되었다.

특히 2015년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한화 이글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팬덤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김성근 감독의 ‘우승 청부사’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훈련 짤, 끈질긴 경기 운영, 선수들의 독특한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면서 라이트 팬층과 SNS 기반 젊은 팬들, 특히 20~30대 여성 팬들의 유입이 급증하였다. 이 시기 ‘#보살’, ‘#부처’, ‘#해탈’ 등의 해시태그가 유행하며, 한화 팬덤은 단순한 지역 응원을 넘어 인터넷 밈과 결합된 현대적 팬덤 문화로 확장되었다.

또한 커뮤니티 기반에서 “핫도그녀”, “아잊한실(아, 이제 한화 실점이구나)”, “칰칼코마니(한화 수비 칼 같이 코마니)”와 같은 개그성 짤방과 징크스 유머가 유행하며, 젊은 남성 팬들도 팀의 ‘밈화된 약팀 이미지’에 매력을 느끼고 입덕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2020년대에는 신축 홈구장(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의 개장, 류현진의 복귀, 유망주들의 등장과 더불어 팬덤의 세대 교체와 저변 확대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화 이글스의 팬덤은 KBO 리그 내에서도 독보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맨틱 스토리텔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한화 이글스의 경기 성적 변천사를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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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자료

1999년 우승의 순간 영상 자료

창단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하이라이트

<한화이글스:클럽하우스> 메인 예고편| 1년간의 치열한 기록

한화클럽하우스.png



ootb STUDIO |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한화 이글스] | 야구대표자 입덕가이드

주석

  1.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구단 History
  2. 사진출처, 인천투데이.
  3. 사진출처, 대전일보.
  4. 사진출처, 연합뉴스.
  5. 사진출처, 스포츠경향.
  6. 사진출처, MHN.
  7. 사진출처, 머니투데이.
  8. 사진출처, 연합뉴스.
  9.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선수 라인업, KBO리그40.
  10.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명패, 연합뉴스.
  11. 사진출처, 경향신문.
  12. 출처, KBO리그40.
  13. 사진출처, 나무위키.
  14. 출처, KBO리그40.
  15. 사진출처, 중도일보.
  16. 출처, KBO리그40.
  17. 사진출처, 세계일보.
  18. 출처, KBO리그40.
  19. 사진출처, 나무위키.
  20. , 이투데이.
  21. 사진출, 스포츠경향.
  22. 사진출처, 트립메이트.
  23. 사진출처, 조선일보.
  24. 사진출처, 나무위키.
  25. 사진출처, 서울일보.
  26. 사진출처, 조선일.
  27. 사진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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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사진출처.나무위키
  30. 사진출처.한화이글스 구단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