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생기는 빈틈
욕망은 어디로부터 비집고 들어오는가?
욕망은 유년 시절의 불완전 애착에서 부터 비롯된다.
애착:욕망이 생기는 빈틈
결핍이 욕망을 태우는 방식
욕망은 단순한 갈망이 아닌, 결핍의 감정에서 비롯된 충족 욕구이다. 그리고 애착 이론이 제시한 애착 유형은 이 결핍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욕망을 형성하고 표현하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심리적 구조이다.
예컨대 《팔이피플》의 박주연은 불안 애착과 회피 애착이 뒤섞인 혼란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 유형의 인물이다. 그녀는 김예희를 이상화하면서 동시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예희가 가진 사회적 성공과 감정적 확신은 주연에게 있어 결핍된 이상적 자아상이었고, 이로 인해 주연의 욕망은 ‘그녀처럼 되고 싶다’와 ‘그녀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양가감정으로 발현된다. 그녀의 욕망은 욕망 그 자체보다 자신이 아닌 ‘누구처럼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더 가깝다. 그녀가 느끼는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비롯된 복합적 자아 분열의 산물이다.
《부부의 세계》의 여다경은 외적으로는 자신감 있고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실은 불안 애착(Anxious attachment) 유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녀는 지선우라는 완전한 ‘부인’을 앞에 두고, 그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 그녀의 욕망은 단순한 이태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지선우라는 여성의 삶을 욕망하는 구조다. 욕망의 대상은 이태오가 아니라 ‘지선우의 자리’이며, 그것은 자신이 채우지 못한 안정감과 이상적 여성상에 대한 결핍을 드러낸다. 여다경은 자신의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지만, 그 바탕에는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경쟁적 불안이 깔려 있다.
《블랙스완》의 니나는 표면적으로 완벽주의적이고 통제적인 모습을 보이는 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 유형의 전형이다. 니나는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욕망은 항상 억제되고 내면화된다. 그러나 이 억제된 욕망은 릴리라는 ‘자유롭고 관능적인 존재’를 통해 외부화되고, 점차 자아 분열과 파괴의 형태로 폭발하게 된다. 그녀는 욕망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강박적으로 추구한다. 니나의 욕망은 애착의 부재와 이상화된 자아상 사이에서 점점 균열을 일으키며, 결국 자기애적 붕괴로 이어진다.
《안나》의 유미는 가장 극단적인 불안 애착과 혼란 애착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욕망은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유미는 다른 사람의 이름과 인생을 훔치면서까지 이상화된 삶을 시뮬레이션하려 한다. 그녀의 욕망은 단지 더 좋은 환경, 더 높은 계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나”가 되는 것, 즉 현실 자아의 완전한 대체이다. 이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부정으로부터 비롯된 욕망으로, 그녀가 채우고자 했던 결핍은 단순한 물질적 부족이 아닌 존재론적 불안이었다.
결론: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기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를 설계할 때, 단순히 욕망의 대상이나 결과만을 서사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그 인물을 납작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왜 그녀는 그런 욕망을 품게 되었는가? 그녀가 결핍이라 느끼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채우려는 방식은 왜 그렇게 복잡하고 때로는 파괴적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애착 유형에 대한 배경 설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애착 유형은 그녀의 정서적 기반을 설명하며, 욕망이 형성되는 메커니즘과 그 감정의 방향, 표현 방식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불안 애착을 지닌 인물은 타인에게 매달리는 방식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회피 애착을 지닌 인물은 욕망 자체를 부정하거나 억누르며, 혼란 애착을 지닌 인물은 욕망과 공포 사이에서 스스로를 분열시킨다. 이런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서사에 녹여낼 때, 욕망하는 여성은 더 이상 단순한 욕망의 상징이 아니라, 심리적 깊이와 인간적 복합성을 지닌 입체적 인물로 탄생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여성 서사에서 욕망의 기원으로서의 애착 유형에 주목하는 시도는, 캐릭터의 개연성과 감정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