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 2014

Digerati
Tutor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8일 (목) 17: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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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6 일요일

어제 아침에 와이프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걸음도 휘청거리고 말도 어눌하고 얼굴도 부은 것 같았다. 연초부터 폭설과 강추위에 감기로 시달렸었고 지난 달부터 복용하는 혈압약 부작용 같다고 월요일에 의사한테 가겠다고 해서 영호한테도 그렇게 전화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또 못 일어나고 말도 더듬고 해서 영호한테 전화했더니 당장 캠브리지에 있는 Mount Auburn Hospital Emergency Center 에 가라고 한다. 의사가 Stroke 확인을 위해 CAT Scan, MRI 를 먼저 해야 한다고 준비시켰다.영호가 달려와서 찌그러진 엄마 얼굴을 보더니 코너에서 통곡을 하고 운다. 난 영호가 커서 저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영호 말은 어제 바로 응급처리를 했었더라면 약물복용으로 치료 가능했었을 텐데 하면서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담당의사는 어제 바로 왔어도 약물처리가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었다면서 우선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보자고 한다. 오후에 MRI 결과 stroke 는 분명한데 blood clut 인지 blood supply 문제인지 더 지켜보겠다고 해서 우선 입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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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승순

방금 외숙 이메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시겠어요. 저희 식구 모두 외숙모님이 빨리 회복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금요일이 구정 설날이어서 어제 오후에 호순이와 몇몇 어른들께 세배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전주 이모님댁에 들렀지요. 4년전 이모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 이모는 명석이와 둘이서 송파구 오금동 아파트에서 조용히 지내고 계십니다. 명석이는 지금도 중앙일보사에 파트 타임으로 계속 근무하고 있고 이모는 성경책을 읽거나 기독교 방송을 시청하시면서 소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옛날 제 어릴 적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어렸을 적엔 해남 친가쪽 친척들 보다는 항상 외갓집 식구들과 어울렸었던 적이 많았었습니다. 특히 수유리에서 살 때에. 광주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서울에 올라 오시면 외삼촌, 이모들 식구들과 함께 들썩거리면서 먹고 놀고하였던 기억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외가쪽 친척들과 서로 교통하거나 연락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은 걸 깨달았을 때, 뭔가 서운하고 반성하는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 55세, 주변을 돌아보는 나이가 되어서 인지, 내 친척, 내 어렸을 적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외숙모께서 빨리 쾌차하셔서 종전처럼 건강하고 편안한 상태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외삼촌께서도 건강 잘 챙기세요. 승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