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 2019

Dige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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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 금요일

단조로운 일상이 계속 반복된다. 해가 바뀌어도 별다른 느낌도 없다. 지난 달 10 일 봄학기가 시작되어 월 수 금 학교에 나가는 동안 간병인이 와서 대화도 나누고 같이 정원 산책도 한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매일 아침과 오후엔 손주들 돌보고 목요일엔 물리치료 데리고 가고 월요일 저녁엔 멀지않은 Waltham Symphony 오케스트라 리허살에 나간다. 지난 2 년 가입했던 Wellsley Symphony는 좀 멀고 리허살도 너무 길어 가까운 Waltham Sympony 로 옮겼다. 금년 겨울은 눈도 많이 안 오고 춥지 않아 운전하고 다니는데 아직은 불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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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5 화요일

Letter from 김정덕

일상생활 소식을 보내주어 고마워~~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생활의 낙이 있겠나.
흔히 말하는 '죽지 못해 사는거지'
그래도 너는 바이올린 연주 특기가 있어 매주 리허설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겠다.
간병인을 구해서 네가 밖에 나가도 안심이 되겠다.
다음학기도 가르칠 예정?
놀면 뭐하나. 할수 있으면 더 하지.
이제 여기도 봄이 오려고 막바지 추위가 기승
하나 어차피 추위가 맥을 못춘다.
봄이 오면 이 봄이 마지막인양 부지런히 돌아다녀 보자. 김정덕


2019/3/7 목요일

드디어 매형 떠나셨다.

아흔 두 해 동안 파란 많은 일생 끝내시고 편안히 소천하셨다니 옆에서 지켜봐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걷잡을 수 없지만 천국에서 기다리시는 누님을 상봉하시고 같이 명복을 누리시도록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이젠 더 이상 찾아가 뵙고 베풀어 주시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인생허무를 절실히 느낀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성을 다해 모신 너희들의 정성과 효심은 자랑스럽고 너희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싶다. 너희들 삼 남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매형께서 보여주신 어지신 인품과 변호사로서 보여주신 사회 공헌을 본받아 우리 모두 앞으로의 삶을 더욱 보람있고 먼저 가신 분들께 보답하도록 하자. 부모님 누님들 매형들 모두 떠나시고 이젠 우리 차례가 된 거 같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그들이 보여준 모범을 실천하도록 최선을 다 하려고 한다.

서로 돕고 함께 노력하자. 토요일 발인 장례식 준비로 바쁠텐데 참석도 못 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이른 새벽에 고인의 저 세상에서 명복을 빌며 눈물을 거둔다. 외삼촌

2019/5/8 수요일

봄학기를 마지막으로 BC 에서 완전히 끝내고 이제 정말 최후 은퇴하였다. 다행히 이경진이 조교로 수업에 와서 학생들을 많이 도와주었고 자기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전승희 교수와 강력히 추천해서 학과에서도 인정받아 가을 학기부터 일학년 두 과목 가르치게 되었다. 그 동안 전승희 교수랑 자주 만나서 BC 한국어 프로그램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었고 차츰 실현되는 것 같아 같이 기뻐했고 두 후배들을 도울 수 있어 다행이다.

2019/6/22 토요일

손주들 학교도 끝나고 그 동안 수고했다며 영호가 또 우리 한국 여행을 마련해주었다. 보스톤에서 대한항공이 직항이 생겨서 갈아타지 않고 편리했다. 작년처럼 시머셋호텔에 머무르며 승순이랑 매형 누님 산소에 가서 성묘도 하고 처가집 식구들을 초대도 하고 김현 교수가 미리 연락을 해서 대전에서 바이올린 배웠던 김미영 선생과 남편 김억중 교수그리고 기타리스트 김정열 선생을 초대해서 판교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식사도 하고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그리고 하루는 신상인이 안내해서 속초 낙산사에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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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19 금요일

Letter from Tracy To

안녕하세요 선생님,
Professor, my summer is going great! Thanks for asking! I am glad to hear you and your wife have been well and have had a wonderful time in Korea. Those pictures look great! I can not wait for the day when I get to visit Korea. I look forward to it every day I am studying.
I have never had a Professor like you 선생님. You have had such a positive impact on my life and have allowed me to open my eyes to the world! I was always excited for every class we had. Thank you for keeping in touch and sharing your life experiences with me! I will be sure to let you know how my next few years at Boston College go! 감사합니다!
All the best, 
Your student 트레이시 토 (Trac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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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화요일

Letter from 승훈

형님 잘 지내시죠?
작년에 제가 목리 집 안채를 구매했습니다.
15여년전에 범규형이 사랑채와 안채를 분할해서 안채를
모르는 사람에게 팔았는데 그 사람이 다시 판다고 해서 제가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건물이 너무 오래 되어서 보수 할려고 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창규형이 도와주고 있어요..
이번에 집안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앨범을 보니 일본 명치(메이지)대 법학과 1924년 졸업생으로 나오고요
아버지는 1936년 보성고보 졸업생 앨범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할아버지와 증조부님이 생전에 당대 유명하신 서예가와 화가들에게 받은 글씨와 그림 몇 점이 저의 집에 있어서 정리하고 있는 중이며 지금 까지 정리된 글씨 몇 점을 사진으로 찍고 한문 학자에게 그 뜻을 물어 파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의 증조부님께서 마을 사람들에게 재물을 배풀어 마을 입구에 있는 시혜불망비(요증으로 치면 공적비) 탁본을 떠서 그 내용도 알았습니다.
또 연락 올리겠습니다. (목포에서) 승훈 올림

외갓집 회상

난 어려서부터 방학때만 되면 강진 목리에 있는 먼 외가집에 가는 즐거움이 기다려졌었다. 외할머니도 살아계셨고 특히 외숙께서 나를 많이 사랑해주셨고 외사촌들과 친했다. 충청도에서 나고 자라서 사투리도 신기했고 목리가 차 씨 집성촌이여서 이웃들이 대부분 친척들이었는데 가는데마다 환영이었다.

워낙 큰 농가집이라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정미소 과수원 그리고 강둑에 소들도 매일 구경거리였다. 집은 운동장같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졌는데 안채는 주로 여인들이 기거하며 중간에 부엌 (정제?)이 있어 늘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다에서 잡아온 꼬막과 바지락도 처음 먹어보았다.

중학교때 여름방학을 맞아 전주에서 여러시간 걸려 광주까지 버스 그리고 환승해서 강진에 왔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임종을 나 혼자 지켜볼 수 있었다. 오래 큰 살림을 맡아 하셔서 좀 엄하시긴 했지만 인자하신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안채 마당에 큰 텐트를 세우고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초상 준비를 했는데 내 모친과 외숙 두 남매는 슬픔을 못 이겨 상여 뒤따라가면서도 통곡을 하셨다. 내 일생에 상여를 뒤따라간 유일한 경험이었다.

대학 입학후 4.19 혁명이 일어나 여름 방학 동안 농촌계몽 참가를 했는데 서울에서 자라서 전라도에 가 본적이 없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강진 목리를 찾았다. 외숙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며 사랑채에 머물도록 해주시고 동네 사람들을 오게하여 그 날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 중 한 명이 서울대 정치학과 황수익 교수다. 틈틈히 외숙께서 집안 이야기도 자세히 들려주셔서 황 교수는 과거 전라도 지주들의 역사와 생활상을 직접 배우고 체험하고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사랑채는 늘 손님들이 찾아와 쉬는 공간이었고 외숙께서는 그들을 반기셨다. 외사촌 막내 차승훈이 강진 목리에 흩어진 고가들을 다시 모아 복원사업을 잘 하고 있어 자랑스럽고 나도 언젠가 다시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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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1 목요일

일 주일 내내 날씨가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린다. 곱게 물들었던 단풍도 거의 다 떨어지고 낙엽치우는 일이 하루하루 일정이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허전해 보이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이 보여 더 아름답다. 모두 내려놓고 무소유의 단순한 삶을 살고 있어 더 절실하게 느낀다. 왜 그토록 가지려고 노력했을까

텅빈 거실에는 소파, 피아노 그리고 바이올린이 전부 내 서재에 있던 책들도 거의 다 학교에 기증해서 썰렁하지만 이제 익숙해진다. 부엌 살림도 기본 도구들 뿐 커피 메이커도 2 잔 내릴 수 있는 최소형, 집도 마음도 텅비어간다.

2019/11/4 월요일

아침에 Newton Senior Center 앙상블에서 풀룻을 부는 Bonnie Carter가 집에 들려서 같이 연습을 했다. 우리보다 한 살 많은데10 년전에 티비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은퇴하고 열심히 풀룻을 배우고 있다. 동갑인 남편도 트롬본 연주자로 밴드도 나가고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자기도 아직도 계속 렛슨을 받고 있다고 한다. 취미로 늦게 배우기 시작한 악기를 계속하려면 렛슨이 필수적이다. 더구나 늙어서의 배움은 음악공부도 되고 정서적으로 치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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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일요일

깊어가는 가을의 싸늘함속애 저물어 가는 황혼인생을 보내면서 무기력한 와이프 병간호에 지칠 때면 하루하루가 마지막이기를 비는 마음 간절해지고 먼저 가신 분들이 꿈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승순이가 오늘 어머님 기일이라 형제들이 모여 추모한다는 메일을 보내줘서인지 나도 누님깨 감사한 마음이 새삼스럽고 온갖 추억들이 떠오른다. 형제들이 많은 대가족의 다섯번째로 태어나 누님과는 나이차가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누님과 유난히 가까웠고 얶힌 사연들이 많았다. 선친께서 자주 전근을 다니셔서 전학하고 새로운 지방에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누님과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잘 하는 편이었고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다.

내가 공주 사범대학 부속학교 입학했을 때 워낙 학교가 멀어서 공주사범에 다니는 누님이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6/25 전쟁시 계룡산 소아리로 피난가서도 모친은 늘 불려다니고 갓난 막내 영이 때문에 누님이 동생들을 보살폈고 여름동안 고생이 많았다. 강경으로 이사해서 누님은 강경여고 다니실 때도 늘 우등생에 붓글씨를 잘 쓰셔서 내 학교 숙제를 도와주셨고 학교에서 연극 연습하는데도 따라 다녔다.

광주로 전학했을 때도 누님은 광주여고에서 두각을 인정 받았고 나도 서석국민학교 5 학년 3 반 반장이 되었다. 와이프는 5 학년 7 반 반장이었다. 누님은 약학대학 진학을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워낙 엄하신 부모님 반대를 이겨낼 수가 없었고 꿈을 포기한 누님의 비통한 심정을 지켜보며 안타까웠다. 그러나 대학입시보다 어려웠다는 한국은행 입사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은행에서도 좋은 보직을 받아 조사과에 근무하며 외국 잡지들도 집에 가져와 내게도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광주 서중에 입학해서는 집에 돌아오면서 은행에 들리면 누님이 용돈을 주셔서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선친이 전주지법으로 옮기셨어도 누님은 전주 한국은행에 경력직원으로 근무 가능했고 나는 전주북중으로 전학했다. 한국은행은 급여도 좋았고 여름에는 가매미(?) 해수욕장에서 직원들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서 가족들도 갈 수 있었다. 전주지법에 오신 매형도 그 때 처음 뵈웠고 누님과 사귀시다가 결혼하셨다. 누님은 대학진학 포기로 자괴감과 깊은 상처를 자주 이야기하셨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한 보람도 행복한 가정과 자랑스런 자식들을 키우며 얻으셨다.

내가 고 3 되어 전주고에서 광주일고로 전학해서 대학입시로 고민도 많았는데 졸업전에 일찍 서울 명륜동에 사시는 누님집에 가서 기거하며 누님의 도움으로 최선의 노력 끝에 서울대 합격할 수 있었고 누님은 누구보다 기뻐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대학 4 년을 누님집에서 다녔고 친구들이 찾아오면 꼭 식사를 챙겨주셨다. 그리고 누님은 내 식성을 잘 아셨다. 내가 바이올린 배우기 시작해서 렛슨 주러왔었던 음대생 김순신도 내가 2005 년 한성대학에서 가르칠 때 몇 십년만에 만났었는데 당시 누님께서 밥 먹고 가라며 친절하셨다고 기억난다고 했다. 한성대학에서 성북동이 멀지않아 점심 때 자주 들렸는데 손만두 식당 주인이 건강이 좋지 않은 누님 드린다고 싸달라고 주문하면 특별히 잘 해주었고 일식당에서 생선매운탕 그리고 누릉지 백숙 사가면 좋아하셨고 늘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수육 준비하시고 기다리셨다.

마지막 새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내가 계속 있기를 원하셨고 마지막 임종하셨을 때는 내게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 서러운 이별이었다. 지난 여름 승순이 우리를 천안 묘지에 안내해서 성묘하면서 매형 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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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화요일

세상이 워낙 변해버려서인지 모두들 늙어버려 힘든 탓인지 이메일 보내도 읽는 사람도 없고 보내는 친구도 없다. 그래도 무료한 하루를 보내면서 메일을 열어보면 가끔 조카들이나 처제 그리고 가르쳤던 학생들이 소식을 전해줘 반갑기도 하고 기다려지곤 한다. 지난 봄학기 끝나고 BC에서 완전히 은퇴했지만 학교 이메일은 그대로 쓸 수있고 학교 소식도 알게되어 고맙다.

그러나 와이프는 이메일은 전혀 쓰지않고 받기만 해서 오늘은 필요없는 메일들을 제거하면서 컴퓨터 정리하다가 우연히 몇 년전 아내 대학 동창 이조경의 메일 주소를 발견하였다. 얼마나 궁금해할까 몇 년이 지나버려 메일 수신 가능한지도 모르고 와이프는 모든 걸 단념하고 마음 문을 닫고 살아 뭐든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참 생각 끝에 내가 와이프 대신 몰래 간단히 소식을 전했다.

Letter (from Wife) to Jokyung

Dear Jokyung,
This is a short note to say hi, and inform you that I still live in Boston trying to recover from the stroke I had six years ago.
Sorry I haven't had contacted anyone. Having health issue has kept me alone and down.
Hope you are in good health and enjoying active retired life.
My family is well taking care of me and supportive, and I feel grateful for their love.
My best regards to you and friends.
Hyang Sook 

놀랍게도 전혀 기대나 생각과 달리 이조경의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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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Jokyung to Wife

How nice it is to receive an e-mail letter from you! This is really, really the best surprise present I’ve ever gotten so far. The fact you wrote this to me is the very token you’re getting better and better, isn’t it? 
Dear friend Hyang Sook, now I’m so excited and thankful for you to have this much health and kind regards to us. Hopefully you could talk with me over the phone just as the old days in the near future. Naturally some changes have been here among our friends. We could talk about it later. 
Dear Hyang Sook, I will never forget how nice and outstanding you were! Please keep this in your mind that we’re fond of you, wishing your quick recovery. 
My best regards to your family, 
Jokyung with big hug 

1960 년 입학한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동기는 25명이었고 그 중 여학생은 3 명이었다. 모두 졸업후 사회생활을 했고 결혼을 했으나 남편들이 일찍 떠나 우리만 이토록 오랜 연분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다시 와이프 모르게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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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Wife) to Jokyung

Thanks for your kindness and letting them know that I still alive. After my stroke in 2014, we moved to a small house near my son’s house in Newton in 2015 so that we could keep in touch closer, and sometimes watching our grandkids, 9 year old granddaughter and 6 year old grandson. They are growing lovely encouraging me to be strong. 
Hope all friends are in good health and my best wishes, 
Hyang Sook 


2019/11/16 토요일

Letter from Jokyung to Wife

Dear our friend Hyang Sook, 
How are you doing? I do hope everything around you is becoming okay day by day. Absolutely you seem to show rapid recovery thanks to the warm care of your family. I feel your writing is beautiful and perfect. 
Now writing you e-mail, I’m a little bit cautious not to bother you. You may answer or not as you like. In any case, I’ll fully understand. You may be busy with caring your grandkids. If my memory doesn’t betray me, the name of your granddaughter is Sela and the grandson’s is Westley, right? You can freely tell me how cute they are. From them you could enrich your life with their fresh vitality. 
A few minutes ago, I talked over the phone with Hyunja, your sister. With great surprise, she was so happy after hearing all about the e-mails between you and me. 
Dear Hyang Sook, you are not alone. We all pray for your health and happiness. Let’s remember: “If you really want something, the whole universe conspires for you to achieve it.” Paulo Coellyo, the Nobel Prize Winner, wrote in his novel <The Alchemist>
Please stay joyfully. You are strong and wise by nature. 
Joy Lee (my English name) with hugs 

2019/11/17 일요일

Letter from 유보일 to Wife

정향숙씨에게,
정향숙씨에게 보낸 우리 육영회 알림장이 반송이 되었을 때 가슴 철렁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군요. 특히 이사를 가도 간 곳을 계속 추적하여 배달하는 미국의 우편제도를 몇 번 경험했는데 “추적불가”라는 쪽지와 더불어 반송되었을 때의 당황함이란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경험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조금 후에 정향숙씨와 같은 곳에 사는 교포중의 한 분이 귀뜀으로 “쓰러지셨다”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쓰러진다”는 것이 단순한 낙상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뇌졸중을 의미하는지 우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는데 주소까지 감추고 “잠적”하신 걸로 미루어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까지는 인지했습니다. 그 후 서울 사시는 매씨를 통해서 구체적 정황을 알고 모두 걱정을 하긴 했지만 서울서 어떻게 해볼 도리없이 이제까지 벌써 5 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이메일을 하실 수 있는 단계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 주셨으니 꼭 이산가족 상봉처럼 그저 꿈만 같습니다, 명수식 선생 부인께서도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는데 지금은 발병하기전 상태의 99%까지 회복되셨다고 합니다. 꾸준히 노력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걸로 믿고 천지신명의 가호를 빌어드리겠습니다. 정향숙씨처럼 의지가 굳센 분은 모두 재활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니 끝까지 포기하시지 말고 굳게 지켜 이겨내십시오. 이 곳 사정이야기는 12 월 알림장에서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9 11 월 17 일 밤 柳甫一

2019/11/28 목요일

Letter (from Wife) to Jokyung

Dear Joy,
Happy Thanksgiving! 
I received Mr. Ryu's thoughtful letter with monthly newsletter yesterday, and feel grateful to all of you for your kind concern and prayer for my health.
I still need physical therapies and see my primary care doctor regularly, and getting stable slowly.
Thanks again for your best wishes for me.
Fondly,
Hyang Sook 

2019/11/29 금요일

Letter from Jokyung to Wife

Dear Hyangsook,
I'm very glad to hear you are getting stable. Day by day you will be better as we all hope.
Yesterday as soon as I found your letter, I could not but send it to Mr.Ryu's email address to share this happy news.
Dear my friend Hyangsook, you are bright and smart, I vividly remember. Never forget it, dear.
It's becoming cold. Winter is around the corner. Please be careful not to catch cold. Joy with big hug

Thanksgiving 휴일 동안 푹 쉬고 있다. 그저께 유보일한테 온 손편지를 받고 읽으며 와이프가 의아해 하길래 내가 이조경한테 메일을 보내고 주소를 알려줬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알림장 소식이 반가운지 이름들도 기억하고 그들의 경력도 자세히 알고 있다. 나보다 기억력이 더 좋은 것 같다. 기력만 조금 나아지면 내년 6 월에 한국에 가서 형제들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손주들에게도 한국을 보여주고 싶다.

2019/12/02 월요일

Letter from 현자

형부,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저려오고 안타까웠어요. 
언니가 이메일을 이렇게 쓸수 있고 친구를과도 교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행복했던 옛날이 그립고 덧없는 인생이 아쉽기만 하네요.
그래도 친구들이 진심을 다해 생각해 주고 회복을 빌어주니 너무나 고맙고 가슴 벅찼어요.
언니가 친구들 소식에 무척 반가웠으리라 생각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형부께서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정말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점점 좋아진다면 하고 빌어봅니다만....
좋아지기 위해서 언니가 억지로라도 노력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형부께서도 앞으로를 위해서 최대한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일만 생각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순리를 받아드리며 힘내시기 기원합니다. 늘 응원합니다. 건강하세요!!! 

2019/12/2 월요일

Letter from Jokyung to Wife

향숙아, 그리운 친구야~!
네가 사진을 보내주어서 참으로 반갑게 봤어.
더 잘 보고 싶어서 눈이 컴퓨터 화면에 닿을 정도였지.
너의 곁에 든든한 남편이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두 손으로 네 손을 감싸 쥐고 기도하시는 모습이
가슴 찡하게 감동이구나. 그 정성에 너는 곧 낫고 말꺼야.
꼭 보여줘. 정향숙이 누구니! 넌 원래 心身이 건강하고
쾌활한 여장부 스타일이었지. 그 기백이 되돌아오기를
우리 모두 간절하게 기도해보자. 물론, 겉모습은 너도 나도
예전같을수는 없지만, 마음만이라도 씩씩하게 가져보자.
고마운 친구야, 이렇게 글을 주고 받으니 너무 좋아.
네가 한글로도 자판을 깔아 놓았나봐. 잘 들어가길 바라며 
최근에 쓴 내 수필 두 편 첨부로 보내니 열어봐. 
조경이가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2019/12/8 일요일

Letter from Jokyung

윤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메일 주시느라 많이 힘드셨지요.
저도 읽으며 가슴이 찡하고 그게 오래가고 있네요.
현자씨가 그렇게 놀라던 일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 친구 향숙이, 그 활달하고 원기왕성하던 본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대로 조금씩이라도
말도 더하고 주변 일에 흥미와 의욕을 갖게 되기를 
저도 간절히 기도하는 중입니다.
윤교수님 부디 건강하시고 희망을 굳게 가지십시다.
유보일 씨가 여기 사정이야기를 12월 알림장에 써보내드릴겁니다.
그동안의 제 편지를 향숙이가 반가워 했다면 가끔이라도
제가 또 써 보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9/12/15 일요일

Letter from 유보일 to Wife

정향숙 씨에게
2019년도 이제 보름남짓 남겨놓은 12 월 중순입니다.
요즘 서울은 겨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른 봄 같은 느낌을 주는 날씨네요. 현재 사시는 곳은 어떠신지? 서울보다 위도가 높으니 더 추울 것 같은데 온 세계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종잡을 수가 없네요. 재활은 잘 되어가고 있겠지요? 아무리 의술이 발달해도 환자의 의지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닷ㅣ 10년전 정향숙 씨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약 잘 자시고 재활운동 열심히 해서 내년 6월 만날 때는 옛날의 그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우리도 요 몇 년동안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미 그전에 고인이 된 양중석, 박선부, 최학길 동문 말고도 2018 년 10 월에 홍기창 씨가, 11월에는 미국 LA 에 살던 조경일 동문이 별세했고 금년 8월에는 소설을 쓰던 박태순 씨가 별세했습니다. 또 미국 시카고에 살던 유재승 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었고 또 이봉철 씨가 타계했다는 소식도 전문했습니다. 이제 남은 인원 17명이 됐네요. 나머지 친구들도 한 두가지 약은 보약처럼 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현재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조경 씨만 아누 씩씩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림공부를 시작하여 벌써 개인전을 세번 했는데 한 번은 불란서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또 시조문학도 시작하여 지난 여름에는 영국 런던에서 세계전통시포럼에서 연설도 했습니다. 이런 공로로 지난 번에는 올해 “한국을 빛낸 사람들”로 수상도 했습니다.

정치활동으로 우리 육영회 모임에는 잘 나오지 못했던 한광옥 씨가 현재는 가장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부인이 폐암으로 다년간 치료중인데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행방을 몰랐던 현종수 씨가 우연히 카톡상으로 연락이 이루어져 금년 4 월에는 현종수 씨 초대로 당일치기 부산 여행까지 했습니다. 손현태 씨는 척추관협착 증세가 심각하여 몇 차례 시술도 했지만 경과가 별로 좋지 않아 현재는 장거리 보행이 불가능하여 우리 월례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는 손현태 씨를 위해 제가 직접 집까지 가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황희태 씨는 위암수술을 받았는데 완치 판결을 받아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병재 씨와 윤종국 씨는 전립선 수술을 받았는데 모두 완쾌되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송태훈 씨는 등산을 너무 좋아하여 무리하는 바람에 무릅연골이 다 닳아 계속 치료를 받고 있는데 많이 좋아져서 지팡이에 의지하여서라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여기 언급하지않은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향숙 씨도 열심히 재활을 하시면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걸로 확신합니다. 내년 1월에는 더 희망적인 소식을 듣고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19년 12월 15 일 밤 柳甫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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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화요일

Letter from Jokyung to Wife

향숙아, 어느새 오늘이 크리스마스구나.
영호씨네가 부모님댁으로 아이들 데리고 와서
함께 즐겁게 지내려니 상상을 한다.
Boston 은 눈이 많은 곳이니 하얀 눈이 펄펄
내리면 아이들이 더 좋아하겠지.
여기는 오늘 눈은 안 오고 미세먼지가 심해서
하늘이 회색빛이야.
어제 우리 육영회 모임이 있었어. 언젠가 너도
이집에서 모였을 때 왔던 것 같애. 생선을 주로
내는 집인데, 네가 굴비 구운 것을 맛있게 먹던
생각이 나는구나. 
내년 6월에 한국 나오면 굴비 맛있는 집으로 안내 할께.
향숙아, 지금부터 6개월 동안 부지런히 걷고 치료도
잘 받아서 더 좋아진 모습으로 오기를 기대한다.
친구야, 부디 희망을 단단히 갖고 너는 꼭 나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해. 명수식씨 있잖아. 그분 부인이 2년 쯤 전에
고혈압으로 뇌출혈이 와서 쓰러졌어. 뇌기능이 거의 마비가
왔어도 계속 치료하고 어린애들 하듯이 산수공부, 언어공부
꾸준히 해서 지금은 명수식씨 자기보다 더 똑똑해졌다고
껄껄 웃더라. 
우리 친구 다들 너를 위해 한 마음이 되어 있어. 
어서 회복하기를,
원래의 활기넘치던 정향숙으로 돌아올것을 우리는 믿고 싶어.
하나님께 기도한다, 간절하게..!
향숙아, 사랑을 보낸다. 또 쓸께, 잘 지내고 있어.

2019/12/26 목요일

Letter from 한광옥

나 한광옥이네!
친구 오래간만일세!
최근 영문과 동창들로부터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
우선 반갑고, 자네가 부인 병고 때문에 고생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내 마음이 무척 안타깝다네.
나도 내 아내가 10년 전에 폐암 수술을 받고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자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네.
조만간 한국에 귀국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귀국하면 자네와 따로 만나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네.
한 광 옥 보냄

2019/12/27 금요일

Letter from Jokyung

윤교수님, 
보내주신 두 분 결혼 51주년 기념사진을
반갑게 잘 보았어요.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향숙이 얼굴이 달라져 있는 것 느끼시는지요?
제가 보기에는 이건 완전히 건강한 사람의 얼굴이에요.
작년 속초에서의 얼굴하고 영 다릅니다. 
눈동자가 또렷하구요, 엷은 미소까지 어려 있어요.
물론 작년에는 무더위 속에 여행하느라 힘들기도
했겠지만...그래도 제가 보기에 향숙이가 내심으로는
행복을 느끼고 나아가는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글도 향숙이에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 모두가 향숙이가 어서 낫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해 주세요. 
윤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이조경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