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 2018

Dige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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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15 목요일

보스톤은 매년 2 월이 가장 혹독한 날씨라 두렵기도 했는데 금년은 어렵지 않게 지나는 거 같다. 작년만해도 학교에 가는 날들 폭설이 내리면 새벽부터 눈 치우고 단단히 벼루고 긴장속에 살았었다. 봄학기 끝나고 은퇴후 백수 생활은 손주들 뒷바라지에 올인해서 매일아침 7 시에 가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후에 픽업해서 학원에 데리고 간다. 운전기사 전업주부 역활로 백수가 더 바빠졌다. 요리 솜씨가 늘어 가끔은 가족 저녁 식사도 맡는다.

2018/6/16 토요일

토요일 아침 바이올린 김지혜 선생이 집에 와서 렛슨 해준다. 멕시코에서 자랐고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 졸업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집에 와서 도와주는 고마운 선생님이다. 작년 가을 산후에도 쉬지 않고 올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고 잘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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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9 화요일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최선을 다 하려면 우선 나부터 건강해야 한다. 정신적인 번뇌와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나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고 평안을 얻도록 노력하며 얻을 수 없는 욕망은 아예 잊어야 한다 손주들 돌보면서도 그저 해달라는대로 해줄 뿐 간섭하거나 참견하지 않는다 전에는 내 의견과 주장때문에 갈등의 여지가 많았지만 마음을 내려놓으니 나도 편하고 이제 우리만을 돌보며 마음준비를 한다.

2018/7/19 목요일

다시는 멀고 먼 고향에 찾아가 형제들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희망과 기력을 아예 포기한채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며 살고 있는데 우리 나이 77 을 기념하며 선물로 한국행 비지니스 클라스 티켓을 마련해준 자식의 선물을 효심으로 받아드리고 황혼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와이프는 장시간 비행 자신이 없다며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비행기타고 가다가 같이 죽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시켜 와이프는 10 년만에 폭염속의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비지니스 클라스라 좌석도 편하고 누울 수도 있고 좋은 음식도 제공되어 견딜만한지 도착할 때쯤엔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한다.

2018/7/22 일요일

조카 승순이 반갑게 공항에 마중나와 처제가 마련해준 섬머셋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음 날엔 처가 집 식구들 작은오빠 언니 올케들 처제 조카 모두 호텔로 와서 오랜만에 감격의 상봉을 하며 돌아가신 두 오빠들 이야기를 나누며 그리워했다. 84 세 작은오빠도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언니 형부 모두 고령이신데 잘 견디고 사시고 또 올케들도 반가워했다. 지난 6 년간 뇌경색에 시달려 고립된 일상이 망각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서로 감회에 젖어 기쁨을 나누는 모습들이 황혼의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었다.

다음 날엔 승순이 매형모시고 동생들 모두 데리고 와서 매형 좋아하시는 일식집에 가서 점심 대접했다. 매형도 구순이 넘으셨는데 건강하셨다. 조카들이 씰라 웨슬리 보고 싶다며 내년에 꼭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다.

일요일 저녁엔 김현교수 내외 조세린 조인숙 이정숙 교수들과 만찬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제주도에서 김재형이 보고 싶다며 귤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와 고마웠다.

낮엔 폭염이 계속되었지만 오전엔 시원해서 처제가 빌려다 준 휠체어에 태우고 매일 아침 밖에 나가 산책했다. 마침 근처에 있는 조계사에서는 연꽃축제가 진행되어 대법정안의 부처를 보며 기도도 하고 연꽃 감상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세종로를 달려 동아일보를 지나 청계천에 가서 돌아보고 오면서 인사동에도 들렸다. 또 하루는 경복궁 돌담을 따라 올라가 북촌까지 올라갔는데 경사가 가파르고 위험해 넘어지기도 했다. 한 시간넘게 휠체어를 밀고 다니다 호텔에 돌아오면 양손이 마비상태였다. 호텔 옥상에 올라가면 북한산 청와대 경복궁 다 볼 수 있고 서을시내 전망이 좋았다.

일 주일동안 황혼인생을 재충전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언제나 편안한 가족 울타리속에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살아있는 행복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더 이상 단절하고 포기하지 말고 황혼의 삶이 더 아름답게 물들여지도록 최선을 다 하고 노력해서 내년엔 손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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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8 토요일

한국에 다녀와서 Yuanmei Xing한테 몇 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고 셀폰도 안 받아 오늘 다시 집전화 번호로 하니 남자친구 스티븐이 전화를 받았고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다.

유안메이 싱이 지난 8 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2 년전부터 폐암으로 치료받으며 고생하다가 드디어 눈을 감았다. 아직 예순도 안 되었는데 구십 넘은 중국에 계신 어머니께 알리지도 않고 떠나버렸다고 같이 살던 스티븐이 아쉬어했다. 여러 번 내가 쓰지 않는 Hotmail 주소로 연락했었다고 한다. 지난 6 월 14 일 아침에 좋아하는 장어김밥과 불고기를 만들어 병문안 갔더니 밖에서 기다리며 반가워했었다. 우리를무란식당에 점심을 초대하여 치료받느라고 머리가 다 빠져서 모자를 쓴다며 와이프 모자랑 비교하며 환하게 웃었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잘 다녀오라며 더위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긴 메시지를 보냈었다.

내가 유엔메이를 처음 만난 게 20 년전이었다. 캠브리지에 있는 음악학교 Longy School 에서 성인교육을 위한 오픈하우스에 갔었는데 늦은 나이에 조금 할 줄 아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친절하게 자기를 소개하며 성인도 여러 명 가르치고 있다며 렛슨을 권장했다. 중국 청두에서 태어나 음악인 부모밑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상해 북경 음악원을 거쳐 40 년전에 보스톤에 와서 공부하고 Longy 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바이올린 배운다는 것이 쉽지않았지만 몇 년 꾸준히 연습하고 매주 렛슨을 받았다. 클라리넷 연주가인 스티븐과 같이 살며 결혼은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성악가인 어머니가 방문하면 우리집에 초대도 하고 점점 친해져 영호 결혼식 때는 4중주 연주도 해주었고 2005 년 내 하바드 퇴임파티에서도 독주를 해주었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집에 찾아오고 와이프랑 쇼핑을 즐겼다.

내가 미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바이올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오케스트라도 소개해주었다. 지금 사용하는 바이올린도 중국 다녀오면서 사다줬는데 소리도 좋고 마음에 든다. 너무 어려운 곡들 도전하며 실망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열심히 연습해보라는 충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음악을 하며 음악을 위해 일 평생을 살다가 떠나버렸지만 저 세상에서도 영원한 평안속에 음악을 계속하며 행복하도록 고인의 명복을 빈다. 캠브리지 Mt.Auburn cemetry에 plagu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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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 토요일

작년부터 전승희 교수가 BC 한국어 책임자가 되어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수가 너무 많아 파트타임 선생을 물색중이라며 혹시 내가 한 과목 가르칠 수 있느냐고 학과장한테 편지가 왔다. 마침 간병인도 구했고 염형곤 부인 이경진이 가르치고 싶은데 경험이 없어 자격이 안된다고 해서 전승희 교수와 상의 끝에 내가 한 과목 맡고 경진이를 조교로 쓰기로 했다. 이경진도 문리대 후배고 보스톤대학에서 미술사로 석사를 했는데 이런 기회가 와서 열심히 배우겠다며 고마워했다. 수업있는 월 수 금요일 오후 2 시간씩 간병인이 와서 돌봐주는데 젊은 한국 분이고 친절하다. 완전 은퇴를 결정하고 새로운 도전속에 사는데 또 다시 가르치게되니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어린 학생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어 에너지 충전도 된다.

2018/9/23 일요일

Letter from 최석범

Air Canada 를 타고 Boston 을 꿈속에 다녀온 것 같네요..
형의 근황을 옆에서 보고 감탄했고, 전의 모습을 찾아볼수없는 형수의 모습을 보고 인생말년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같아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을 느꼈습니다. 
형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좀더 자유로울 수있는 상태가 되었음 좋겠군요...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인 형 건강은 모든 식구를 지켜주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힘이 됨으로 계속해서 Gym 운동하시고 맛있는 것 많이 자시고 연주도 하면서 어려운 가운데도 즐거운 생활 찾아 하시면 되겠습니다. 
Boston College 방문은 참 인상적 이었습니다. 형의 한국어 가르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잘 남겨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송편드시면서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해피 추석 ! (밴쿠버 최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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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수요일

결혼 50 주년 기념일

특별한 느낌도 없이 흐르는 세월속에 잠길 뿐이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종일 누워만 있으려고 하니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 어제도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도 안 가겠다고 한다. 겨우 저녁먹으로 나갔다 왔다. 우리는 50 년전 와이프가 웨딩 드레스를 가지고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친구 스피디 부모가 도와줘 Cuero 에서 간략한 결혼식을 했다. 같이 University of Texas in Austin 에서 대학원에 다니며 대학 도서관에서 알바이트 하다가 도서관학 석사도 끝낼 수 있었다. 나는 1971 년 시카고대학 박사과정에 입학되었고 와이프는 전문직 사서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시카고에서 1989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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