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 (작곡가)

Dige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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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작곡가 변혁

박건호(朴建浩, 1949-2007)
작사가, 수필가



<사랑해>의 작곡가로 알려진 변혁은 거인이었다. 체격이 다른 사람보다 3분의 1은 더 컸다. 그러니 먹는 것도 양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먹으러 가자는데 거절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974년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기다리게 해 놓고>의 가사를 주었던 인연 때문에 방주연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냈다. 그녀가 용산 성남극장에서 쇼에 출연할 때였다. 노래를 두 서너 곡만 하면 시간이 많이 남으니 점심 식사나 하자고하여 변혁과 함께 찾아간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었다.

아마 15인 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나는 식성이 좋은 그들을 따라 정신없이 먹다가 보니 배가 남산만 해 졌다. 숨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음식점을 나서며 변혁이 “점심은 이렇게 배고픈 듯 하게 먹는 것이 딱 알맞아요.”

해서 우리는 배꼽을 잡았다.

물론 그것은 웃자는 얘기였지만 그 시절 그와 함께 다니면서 나는 배고플 겨를이 없었다. 하루에 다섯 끼도 좋고 여섯 끼도 좋은 그였다.

그러나 그는 체격에 비해 너무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던 그는 항상 서정적인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 그것은 그를 어린애로만 보는 어머니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의 어머니는 체격이 큰 그에게 언제나 ‘우리 관현(그의 본명)이 우리 관현이’ 했다.

어느 날이었다. 종로 5가에서였는데 길을 걸어가던 그가 느닷없이 저울 가게 앞에서 저울에 올라섰다.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섰다. 거인이 올라 섰으니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가 올라서자 저울의 눈금이 98kg을 가리켰다. 그때 변혁은 나를 돌아보며 “좀 빠졌지?”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100kg에서 2kg이 모자라는 그는 체격이 비대해서 그런지 좀 게으른 편이었다. 나는 <사랑해> 하나만을 보고 그와 손을 잡으면 멋진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같이 있다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날마다 무협소설만 빌려다 읽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한 방울의 잉크로 적어 둔 그 이름 
한 방울의 잉크로 지우고 말았어요 

그와 함께 있는 1년 동안에 그가 작곡을 한 것은 이 두 줄 뿐이었다. 그 나머지 부분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작곡할 생각은 하지 않고 흘러 다니는 작자 미상의 곡들이나 외국곡들을 채보하고 편곡하는 일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았다. ( He seemed not interested in composing his own music. He seemed to care only about recording and arranging unknown songs or foreign songs that flow around him.)

은희가 부른 <등대지기> <회상> <사랑의 자장가> 등은 모두 그에 의하여 발굴된 작품들이다. 그 노래들이 그의 작곡이건 아니건 상관이 없다. 나는 그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변혁의 얼굴이 떠오른다.

몇 해 전에 은희가 뉴욕에서 보았다는 말 이외에는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출처: 박건호와 포엠아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