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KU:박선영 연구기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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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의 ‘글쓰는 기계 시리즈’를 통해 본 한국 SF 소설의 담론적 변화: 서술어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 배경 및 문제의식
배명훈은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에서 「Smart D」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이래 20년째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SF 소설가로, 김보영과 함께 한국 문학사에서 “SF를 보편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2025년까지 게재된 논문 가운데 그의 작품을 작가론적 관점에서 분석하거나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탐구한 연구는 많지 않으며, 그마저도 2020년대에 나온 연구가 대다수다. 이는 한국 소설 연구가 소위 ‘순문학’을 주류 문학으로 채택하는 문단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 SF에 대한 관심이 2020년 전후로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의 대두와 함께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
연구 대상
- 배명훈의 ‘글쓰는 기계 시리즈’
본 연구는 배명훈의 SF 소설 가운데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설들을 다루고자 한다. 해당 소설들은 배명훈이 스스로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듯 “서술자가 절대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제품이거나 어떤 문화적인 결과물이어서, 내가 서술하는 것에 편향이 있다는 걸 가정하고 쓰는 작품들”들로, 편의상 ‘글쓰는 기계 시리즈’(「스윙 바이」(2006), 「서술의 임무」(2018), 「알람이 울리면」(2021)로 명명하기로 한다. 글쓰는 기계 시리즈는 AI(제품), 혹은 냉동인간(문화적인 결과물)이 서술자인 소설들, 바꿔 말해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군이다. 그들이 서술하는 바를 독자는 온전히 신뢰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어떤 경위로 이렇게 서술되었는가’를 계속해서 추측하며 읽게 된다.
독자가 그 화자들을 일반적인 소설에서처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한정적인 사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의 상황을 서술하도록 개발된 AI들은 학습한 텍스트 데이터의 편향성으로 인해 실제 상황을 오인한 서술을 반복하거나(「스윙 바이」) , 입력된 사고/행동 양식대로 무기력한 서술을 지속한다(「서술의 임무」). 인류의 시간성을 초월하는 긴 시간을 냉동인간 상태로 보내는 동시에 뇌를 깨어 있게 유지하고자 ‘꿈’을 꾸는 1인칭 화자는 본인이 꿈을 꾸는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알람이 울리면」). 마지막의 경우, 화자는 꿈속 현실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위화감으로 ‘인지’하는 데에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연구 주제 및 가설
배명훈의 글쓰는 기계 시리즈는 ‘인지’-‘정동’-‘감각’의 국내 담론적 수용의 흐름을 직간접적으로 담지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 본 연구가 출발한 가설이다. 이 작품의 화자들은 작품의 말미 각자의 방식으로 사고를 ‘도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방식에 따라 작품의 주제의식과 그것에 관계된 담론도 함께 달라지는데, 이는 작가가 작품을 집필한 시기 및 순서와 연관을 띠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집필된 「스윙 바이」의 경우, 서술 대상을 학습된 ‘에로 버전’으로 작성하던 서술자는 텅 빈 우주에서 서술 대상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서술하는 ‘나’를 발견함으로써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인공존재의 자기 존재 증명라는 주제는 배명훈이 「안녕, 인공 존재!」(2010)을 통해 변주하기도 했던 주제로,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인식론적 관심사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서술의 임무」(2018)는 「스윙 바이」(2006)와 거의 동일한 상황을 소설의 사건으로 등장시키지만, 배명훈이 조명하는 주체성의 핵심이 ‘자기 인식’에서 ‘정동’ 및 ‘주체적 행동’에 대한 고찰로 옮겨 간 작품이다. 이러한 변화는 2010년대 한국 내에서 포스트휴머니즘 담론과 함께 확산되기 시작한 ‘정동’ 개념을 수용함에 따라 발생한 변화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배명훈이 해당 작품들을 집필 후 발표한 시기 사이의 시간적 공백과 작품 내 동일한 상황 설정을 함께 놓고 볼 때, 이 두 작품 사이의 변화는 작가 본인이 수용한 담론적 변화와 명백히 맞물려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알람이 울리면」의 경우 앞선 두 작품과 상황 설정과 화자, 갈등 구조도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그리고 이번 책에 실리지 않은 작품군 중에 「알람이 울리면」과 약간 비슷한 작품군이 있어요.”(같은 기사)).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AI’가 아니라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적 불능 상태라 ‘AI’와 유사한 문제 상황에 놓인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이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감각’의 작용이다. 이는 한국에서 2020년대 전후로 확산되기 시작한 신유물론과 감각적 전이(sensual turn) 이론의 수용과 관계된 것으로 추측된다.
연구 방법 및 기대 효과
본 연구가 이를 검증하는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 비평 분석을 따르지 않는다. 각 장르와 작품별로 필요한 분석 방법은 다르며, 배명훈의 글쓰는 기계 시리즈에 접근하는 데에는 이만의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군이 ‘서술’의 방식과 그 변화를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주요한 장치로 채택하고 있는 바에 따라, 본 연구 또한 각 작품 내 서술 형태의 변화, 나아가 문장 구조를 ‘디지털인문학적’ 방법론을 활용해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로, 「스윙 바이」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시점의 변화다. 단순히 주어진 상황을 묘사하고 추측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화자가 각성하는 시점 이후부터는 ‘나’라는 주체가 등장함에 따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동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점에서부터 서술자의 ‘확신’이 감소하는 동시에 ‘의문’이 증가하는 등 인지적 변화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논문이 자주 그러하듯 있는 그대로 연구자의 생각을 제시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어학적 분석에 따른 명확한 논증이 필요하다. ‘생각하다’ 등의 인지 동사의 증가, 문장 구조적 측면에서의 의문문 증가, 논항 구조 분석을 통한 불확실성 파악 등의 과정을 그친다면 이와 같은 논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증은 작품 내 인지적 변화를 명확히 보이는 데에 기여할 것이며, 동사 분석에는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바른)를, 논항 구조 분석에는 ETRL에서 제공하는 분석 모델을 사용할 예정이다.
둘째로, 「서술의 임무」에는 감정적 변화 양상이 주목된다. 작중 한국어 소설을 주로 학습한 AI는 우주에 나가서 표류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연민하지만,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희망적인 각성을 하게 되고, 이는 주체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KOTE 감정 분류 등을 활용해 살펴볼 계획이다. 단순히 감정 분석에 그치지 않고, ‘희망’을 품은 서술의 방식이 해당 작품 내에서는 어떠한 문장 구조를 취함으로써 구현되는지를 드러내는 것 또한 본 연구가 목표하는 부분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알람이 울리면」의 경우 지각 동사의 활용 양상이 주목된다. 해당 작품의 제목에서도 암시되듯, 이 작품에서의 ‘듣기’ 행위는 ‘보이지 않는’ 외부로부터의 침투 및 연결을 함의한다. 1인칭 화자는 수동적 ‘보기’ 행위에서 ‘듣기’ 행위로 옮겨감에 따라 점차 인지적으로 각성하게 되고, 소설은 화자가 냉동인간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단순히 ‘보다’ 혹은 ‘듣다’ 등의 지각 동사의 빈도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가설을 증명하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지각동사는 의도성과 수동성의 자질 여부가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에 논항 구조 분석을 통한 세밀한 의미분석이 동반되어야 한다.
작품 내의 서술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기존의 내용 중심 비평이 발견하지 못했던 잉여로서의 소설적 가치를 발굴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본 연구는 이로부터 나아가 세 작품 간의 변화로부터 담론적 변화를 가시화하고, 각 작품이 함의하는‘인간성/주체성’에 대한 고찰 및 비평적 평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에 진행된 적 없는 형태의 연구로, 지금까지는 다소 방법론적 시도에 그쳤던 디지털인문학적 문학 연구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데이터
- 실제 파일은 저작권 문제로 메일 발송
1. 각 작품의 XML 파일
- 태그는 크게 scene, description, dialog로 구분
- scene의 구분은 화자의 의식/장소/시점 등의 변환점을 기준으로 함
- description을 태그해 서술자의 의식이 반영된 서술 부분을 따로 구분함
2. 소설 형태소 분석기(바른 사용)
3. 소설 논항구조 분석기(ETRL 사용)
참고 문헌
1. 단행본
배명훈, 「스윙바이」, 『HAPPY SF 과학소설 전문무크 제2호 02』, 행복한책읽기, 2006.
배명훈, 「서술의 임무」, <<문학3>> 2018년 3호, 창비, 2018.
배명훈, 「알람이 울리면」, 『미래과거시제』, 북하우스, 2023.
2.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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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철, 「인간-인공지능의 인지-정동적 재배치와 포스트휴머니즘 영상미학」, 『인문과학연구』, 81, 인문과학연구소, 2024. 171~197쪽.
3. 기사
“배명훈 "『미래과거시제』, 제 대표작이 될 거라 생각해요"”, 채널예스, 2023.04.24. https://m.ch.yes24.com/article/details/5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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