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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1일 (수) 01:46 기준 최신판

내용[1]

요약

신라시대의 설화.

자세한 정보

금추설화(金錐說話)라고도 한다. 중국에까지 전해져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 권1, 《태평어람(太平御覽)》 권 41, 《동사강목(東史綱目)》 부권(附卷) 중의 괴설변증(怪說辯證) 방이조(旁㐌條)에 각각 실렸다.

신라시대에 김방이(金旁㐌)가 살았는데 그의 아우는 부자였고,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하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하자 심술사납고 성질이 포악한 아우는 누에와 곡식 종자를 삶아서 형에게 주었다. 이를 모르는 방이는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그 중에서 단 한 마리의 누에가 생겼는데, 그것이 날로 자라 황소만큼 컸다. 소문을 듣고 샘이 난 아우가 찾아와 그 누에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러자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켜 주었으므로 형은 ‘누에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곡식도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으나, 역시 이삭이 한 자가 넘게 자랐다. 하루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산 속으로 달아났다. 새를 쫓아서 산 속 깊이 들어갔던 방이는 해가 저물어 돌 옆에 머물게 되었다. 그 때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金錐子]로 돌을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다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를 먹고 놀더니 금방망이를 돌 틈에 놓아두고 헤어졌다. 방이가 그 금방망이를 주워서 돌아오니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이 난 아우는 형처럼 하여 새를 쫓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지난번 금방망이 도둑으로 몰려 사흘이나 굶주리며 연못을 파는 벌을 받고 코끼리처럼 코를 뽑힌 다음에야 돌아왔다. 《흥부전(興夫傳)》은 이 설화를 번안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코 떼었다’ 또는 ‘내 코가 석 자’라는 속담도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드&관계

노드 관계 노드
방이설화 ~는 ~시대의 설화이다. 신라
방이설화 ~는 ~의 원형이다. 도깨비 방망이 속의 도깨비 이야기

기여

각주

  1. 이동 <출처> 두산백과, 방이설화

문화콘텐츠로 본 동양의 도깨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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