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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내용<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9537&cid=40942&categoryId=31541 <출처> 두산백과, 방이설화]</ref>== | |
+ | ===요약=== | ||
+ | 신라시대의 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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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추설화(金錐說話)라고도 한다. 중국에까지 전해져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 권1, 《태평어람(太平御覽)》 권 41, 《동사강목(東史綱目)》 부권(附卷) 중의 괴설변증(怪說辯證) 방이조(旁㐌條)에 각각 실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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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시대에 김방이(金旁㐌)가 살았는데 그의 아우는 부자였고,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하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하자 심술사납고 성질이 포악한 아우는 누에와 곡식 종자를 삶아서 형에게 주었다. 이를 모르는 방이는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그 중에서 단 한 마리의 누에가 생겼는데, 그것이 날로 자라 황소만큼 컸다. 소문을 듣고 샘이 난 아우가 찾아와 그 누에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러자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켜 주었으므로 형은 ‘누에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곡식도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으나, 역시 이삭이 한 자가 넘게 자랐다. 하루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산 속으로 달아났다. 새를 쫓아서 산 속 깊이 들어갔던 방이는 해가 저물어 돌 옆에 머물게 되었다. 그 때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金錐子]로 돌을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다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를 먹고 놀더니 금방망이를 돌 틈에 놓아두고 헤어졌다. 방이가 그 금방망이를 주워서 돌아오니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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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술이 난 아우는 형처럼 하여 새를 쫓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지난번 금방망이 도둑으로 몰려 사흘이나 굶주리며 연못을 파는 벌을 받고 코끼리처럼 코를 뽑힌 다음에야 돌아왔다. 《흥부전(興夫傳)》은 이 설화를 번안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코 떼었다’ 또는 ‘내 코가 석 자’라는 속담도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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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드&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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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방이설화 || ~는 ~시대의 설화이다. || [[신라]] | ||
+ | |- | ||
+ | |조선 || ~의 수도는 ~이다. || 서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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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 ~의 초대 임금은 ~이다. || 이성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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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여== | ||
+ | *최초 작성자 : [[김대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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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 ||
+ | <referenc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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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톨로지/문화콘텐츠로 본 동양의 도깨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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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인문정보학입문2017]][[분류 : 문화콘텐츠로 본 동양의 도깨비들]] [[분류 : 공간]] [[분류: 김대영]] |
2017년 6월 21일 (수) 01:45 판
내용[1]
요약
신라시대의 설화.
자세한 정보
금추설화(金錐說話)라고도 한다. 중국에까지 전해져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 권1, 《태평어람(太平御覽)》 권 41, 《동사강목(東史綱目)》 부권(附卷) 중의 괴설변증(怪說辯證) 방이조(旁㐌條)에 각각 실렸다.
신라시대에 김방이(金旁㐌)가 살았는데 그의 아우는 부자였고,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하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하자 심술사납고 성질이 포악한 아우는 누에와 곡식 종자를 삶아서 형에게 주었다. 이를 모르는 방이는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그 중에서 단 한 마리의 누에가 생겼는데, 그것이 날로 자라 황소만큼 컸다. 소문을 듣고 샘이 난 아우가 찾아와 그 누에를 죽이고 돌아갔다. 그러자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켜 주었으므로 형은 ‘누에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곡식도 한 줄기밖에 나지 않았으나, 역시 이삭이 한 자가 넘게 자랐다. 하루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산 속으로 달아났다. 새를 쫓아서 산 속 깊이 들어갔던 방이는 해가 저물어 돌 옆에 머물게 되었다. 그 때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金錐子]로 돌을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다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를 먹고 놀더니 금방망이를 돌 틈에 놓아두고 헤어졌다. 방이가 그 금방망이를 주워서 돌아오니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이 난 아우는 형처럼 하여 새를 쫓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지난번 금방망이 도둑으로 몰려 사흘이나 굶주리며 연못을 파는 벌을 받고 코끼리처럼 코를 뽑힌 다음에야 돌아왔다. 《흥부전(興夫傳)》은 이 설화를 번안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코 떼었다’ 또는 ‘내 코가 석 자’라는 속담도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드&관계
노드 | 관계 | 노드 |
---|---|---|
방이설화 | ~는 ~시대의 설화이다. | 신라 |
조선 | ~의 수도는 ~이다. | 서울 |
조선 | ~의 초대 임금은 ~이다. | 이성계 |
기여
- 최초 작성자 : 김대영
각주
문화콘텐츠로 본 동양의 도깨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