沁都紀行
= 譯註 沁都紀行 발간사=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의 심도기행(沁都紀行)이 김형우 박사에 의해 완역되었다. 심도는 강화(江華)의 별칭이다. 심도기행에 수록된 한시 작품들은 강화의 오랜 역사와 수려한 자연, 그리고 강화가 길러낸 수많은 의인과 지사들의 행적에 바치는 아낌 없는 찬가(讚歌)이다. 이 기행시문은 강화도 선비 화남 선생이 지은 것으로 모두 256 수의 7언 절구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강화의 마을 유래와 풍경, 주민의 생활상을 소재로 삼고 있다.
고재형은 1846년 강화군 두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이며 1888년(고종25년)에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은 선비였다. 그는 “평소 충의와 의를 쫓은 인물들을 흠모하였으며 전통이 급속히 사라져가는 풍속을 개탄하였다”고 한다. 고재형은 자신이 태어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에서 출발하여 당시 강화군 17개면 100여 마을을 필마(匹馬)에 의지하여 빠짐없이 섭렵하였다.
저자가 “강화부 전체의 산천과 고적을 다시 탐방하기 위해” 단신으로 강화기행을 떠난 것은 1906년 봄이었는데 강화 기행을 감행한 동기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터인 강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었을 터이다. 한편 그가 강화순례를 떠난 해가 서구문명이 물밀듯 밀려들어 전통과 유풍이 점차 사라져 가는 때였으며, 일본이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운명이 기울어 가던 암울한 시대였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재형이 순례자가 되어 강화의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걸어갈 때의 심정은 훗날 이상화 시인이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을) 다리를 절며 걷고 싶다”고 토로했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심도기행은 독특한 구조와 내용을 지닌 기행시문이다. 우선 기존의 기행문학이 출발지와 목적지라는 두 점을 잇는 선형적 구조의 플롯을 취하고 있음에 비해 이 작품은 강화도의 모든 마을을 샅샅이 탐방해가는 공간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심도기행의 문체는 시와 산문이 병치되고 서로 조응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한편의 서사시처럼 읽힌다. 256수의 7언시를 골격으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한시 작품과 관련되는 주석이나 해설을 통해서도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산문으로 기술된 강화의 역사적 유산이나 자연경관, 풍속과 생활상, 성씨와 인물에 대한 서술은 그 자체로 지지(地誌)를 이룰 만큼 풍부하고 자세하다.
한편 심도기행은 저자 자신이 나고 자라고 생활한 고향땅을 기행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보통의 기행문학은 주체가 먼 이방 지대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접하는 이색적 풍물이나 감흥을 기록한 산물이다. 자신의 삶터가 성찰의 대상으로 바뀌었다면 거기에는 주체나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일 터이다. 친숙한 장소가 낯선 공간으로 현현(顯現)했을 때 주체의 대응 방식은 낯선 공간을 다시 자신의 영토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감행하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전통사회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낯선 공간으로 떨어진 향토를 재발견하여 전유(專有)하기 위한 주체의 대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대전환기 향토문학 가운데 선편에 놓을 수 있겠다.
심도기행의 입체적 성격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텍스트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ʻ권리ʼ를 허락해준다. 문학적 텍스트로, 그리고 민속지로, 지리지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을 읽는 분들께 화남 선생이 100년 전에 노래하며 홀로 걸었던 강화의 땅을 밟으며, 강도(江都)가 겪어 온 기나긴 수난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고, 그 땅이 길러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ʻ新 심도 기행ʼ을 떠나보자고 권유하고 싶다.
2008년 12월 인천학연구원장 이 갑 영
일러두기
1. 이 책은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이 1906년 강화도의 각 마을 명소를 직접 방문하여 256수의 한시(漢詩)를 짓고, 그 마을의 유래와 풍광, 인물, 생활상을 설명 한 산문을 곁들인 기행문집 심도기행(沁都紀行)을 번역한 것이다.
2. 심도기행은 필사본 2종이 조사되었으며, 그 중 종손 고승국이 소장하고 있는 ʻ고승국소장본ʼ을 저본으로 삼았고, 구창서의 발문이 있는 ʻ구창서발문본ʼ을 부본으로 삼아 대조하며 번역하였다. 번역문 뒤에 저본으로 삼은 ʻ고승국소장본ʼ을 영인본으로 수록하였다.
3. 원문의 수록 순서대로 한시 256수와 해설문을 배열하되, 당시의 면(面) 별로 묶어서 편집하였다.
4. 제목이 없는 한시는 바로 앞의 제목을 따르거나, 내용 중 에서 주제어를 뽑아 제목으로 삼고 끝에 ʻ*ʼ를 붙여 구별하였다.
5. 지명의 주석은 ≪강화지명지≫(강화문화원, 2002)와 ≪한국 지명총람-강화군≫(한글학회, 1986) 등을 참고하고, 현지 주민들의 증언으로 보완하였다.
6. 인물의 주석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의 자료와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의 내용을 주로 활용하였다.
7. 이 책의 각주는 모두 역자가 단 것이며, 저자의 주는 본문 속에 포함시켰다. [1]
8. ʻ구창서발문본ʼ에만 있는 구창서의 발문은 번역문 맨 뒤에 실었다.
9. 이 역주본은 2005년 3월부터 12월까지 강화역사문화연구소의 강독회 회원들의 강독이 출발점이 되었다.
참고
- ↑ 본 위키 문서( 沁都紀行.lst 및 링크문서 포함 )에서 역자의 주석은 링크문서나 주석의 설명으로 포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