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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clickable button| Home}} ==2017/1/1 일요일== 파일:2017-01-01.png ====Letter from 김재형==== <pre> 교수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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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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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김재형

교수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좀더 많이 웃을 수 있는 한 해가 되시길 바라고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주도에서) 김재형 드림

Letter from 차인병

교수님 가족들 모두 다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사진을 볼 때마다 교수님은 배재대에서 봤던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하시려는 모습을 보면
어느 청춘보다 젊게 사는 것 같습니다.. 항상 본보기를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2017년에도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 보여주세요.. (차인병)

2017/1/13 금요일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다. 드디어 은퇴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비록 외롭겠지만 모두 털어버리고 가볍게 살려고 한다.

Letter from Lydia Chiang

Dear Prof, Yoon 
Happy New Year to you as well! Hope you and your family enjoy a prosperous Year of Rooster!
I am so sorry to hear that you are leaving BC. What surprising news! On the other hand, I understand that, after so many years of devotion to educating our students, you truly deserve the peace and serenity of retirement. Thanks to you and your wife, the Korean Language Program at BC has prospered over the years. We are very grateful to your tireless dedication to teaching and will miss you very much! 
I wonder if you would recommend some suitable candidates to succeed you? I would also deeply treasure any parting advice you might give us.
Best wishes,
Lydia Chiang
Director, Asian Studies Program
Boston College

Letter from Carter

Dear Hyongnim,
Wow, that’s a big change for you. But I hope it frees you for many new interesting things! I leave for Korea tomorrow morning at 6AM!
You mentioned that you might be able to arrange an interview with Mrs Kim Ch’angyong. I would be very grateful if you could do that, perhaps toward the end of my visit in March, but of course depending on her schedule.
Wish me luck. Using the National Archives is very complicated, I am finding out, especially for foreigners without Korean IDS, and the document processing takes up to several business days per document!
Happy New Year! My birth year of the Rooster! Carter

2017/3/14 화요일

Letter from Carter

Dear Hyongnim,
I wanted to thank you for arranging for me to meet with Mrs Kim Ch’angnyong, through Prof. Kim Hyeon. I met with her and her daughter and her daughter’s husband this afternoon, and they took me for a delicious dinner afterwards. I really enjoyed meeting all of them, and especially Mrs. Kim Ch’angnyong, who is in her 90s but looks wonderful and has a great sense of humor. Actually she reminded me very much of my own mother. She didn’t have much to tell me that I didn’t already know, and she obviously keeps a lot to herself (not surprising given the life she has led because of her husband), but I enjoyed my time with her and the family very much. Kim Yongmi of course asked about you and asked me to send you her warmest, warmest, warmest (three times!) greetings. I think she still misses your company and regrets you haven’t been able to visit Korea in recent years. I also enjoyed meeting her husand, an architect and artist.
Sun Ho tells me you are in the midst of a terrible blizzard. So sorry. The weather here even since I came in late January has been wonderful, early spring-like and sunny.
I am going up to Seoul on Saturday for the last two weeks of my trip. I’ve had a very productive time here and collected many documents. I will return to Cambridge on April 2.
Thanks again so much for arranging this meeting. I hope you and the family are well, and Susan especially is improving. Carter

2017/3/25 토요일

Letter from Young-Ho

Hi dad,
I think it's good for the kids to spend as much time as possible with you and mom--I felt like we were a little isolated from the rest of the family when I was growing up, and it feels like we're getting older so quickly. However, it's okay if you can't make it over some mornings (you looked like you weren't feeling well the other day). Sela and I can always skip morning Suzuki practice if I need to take both kids to school, so feel free to send a text if that's the case. As you know, Sela gets to do a lot of activities because of your help and care (I think it's hard to imagine another child her age who is able to do everything that she does, and which she does pretty well, even if she's not a prodigy), but you might recall that she also went through a more difficult period when she was around Westley's age, as well. Even though you weren't always happy about how she behaved (I have a small scar on my right arm from when she bit me when she was three-and-a-half), we think that she's turning out to be a really great kid so far. She already has goals that you can see on the last picture I posted to Facebook.
Everyone loves you, and we all need to support each other as best we can, okay?
Young-Ho


2017/5/25 목요일

승순이 편지에 이수가 일하는 선재미술관에 관재 이도영의 그림들이 전시되여 있는데 내가 어머님한테 유산으로 물려받은 12 폭 관재 그림들과 비슷하다고 진위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SBS PD혜정이 남편 이선의가 진품명품 쇼 심사위원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렇쟎아도 그림들이 두루말려 있고 보관을 제대로 못해 약간 어둡게 변질되는 것 같아 잠시 서울에 다녀오기로 했다.

2017/5/27 금요일

새벽에 타오가 비행장에 데려다 주었다. DC에서transfer 하려고 carry-on suitcase를 캐빈에서 내리다가 가방이 눈에 떨어져 얼굴도 상하고 눈덩이가 부어 한국에 가서도 고생도 많았고 안과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승순 호순 이선의와 안국동에 있는 진품 심사위원 중 한 분 사무실에 그림들을 가지고 갔다. 컴퓨터로 정밀검사를 하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진품이 아니고 위작이라고 한다. 실망이 컸다. 부모님께서는 관제가 외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린 대첩인줄 아시고 외사촌 범규가 강진에서 팔려고 가져온 것을 구입해서 1975 년 부모님 미국에 오실 때 내게 주셨었다. 선친께서는 강진 도암이 고향이셨는데 광주서중을 졸업하시고 일본 유학가셔서 중앙대 법학과 출신으로 해방후 판사로 임명되셨다. 일 평생 공주 전주 광주에서 법관 생활을 하시다가 은퇴후 변호사 개업을 하셨다. 미국에는 한국 국제로타리 클럽 총재로 Florida 에서 열린 Governors’ Conference of International Rotary Club에 참석차 모친과 함께 오셨다. 모친께서도 처음 미국 방문에 손자를 보시고 기뻐하시며 와이프가 통역을 맡아 같이 Florida 에 다녀왔다. 내가 전주고 3 학년 되자 선친께서 광주 고법으로 전근되시어 나도 할 수 없이 광주 일고로 전학을 갔는데 대학 입시 준비로 고생이 많았다. 전주에서 영어 독어 불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장차 외교관을 꿈꾸며 서울대학 정치학과 지원했었다. 광주에 가서 광주 서석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던 와이프를 볼 수 있었고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우리는 같이 문리대를 다니며 자주 볼 수 있었다. 와이프는 졸업후 교편 생활을 하며 대학원을 다녀 나 보다 1 년 늦게 마치고 도미하였다. 와이프 집안은 워낙 유교 사상에 완고해서 난 솔직히 결혼까지는 어려울줄 알았었는데 내 모친께서 우리 사이를 일찍 아시고 성사토록 도와주셨다. 모친은 강진 목리가 고향이셨지만 외조부께서 일본 유학도 하셨고 모친은 어려서 서울에서 숙명에 다니시다가 결혼하시어 가난한 법관 생활에 자식 여덟을 기르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다. 진실한 기독교 신자로 감리교 권사를 하셔서 나도 어려서는 늘 모친 따라서 교회 다녔었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 마침 차편을 얻어 강진에 가서 부모님 산소에 들려 성묘를 하고 보고드렸다. 오랫동안 보물처럼 간직해왔는데 위작으로 판명되니 아무 가치가 없어졌다. 아예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시원섭섭하다. . 그래도 승순한테 부탁해서 병풍으로 만들어 내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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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4 월요일

은퇴후 갑자기 늙어가며 변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일 평생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다가 한없이 밀려나 이젠 전혀 다른 세계속에 내 자신을 발견한다. 정체성마져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고 주어진 환경속에 점점 대화의 기회마져 없어 점점 알아듣기도 힘들어지고 말도 어눌해지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더 이상 노력도 하지 않는다. 학교에도 안 나가니 책도 거의 읽지 않는다. 종일 누워만 있는 와이프는 더 하다. 다행히 요즘 재활병원에 다니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무기력한 자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누굴 만나기도 꺼려하고 전화도 안 받고 어데 갈 수도 없어 완전히 단절된 고립된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