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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복식제도 변화와 사건들.l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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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근대 복식 제도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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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근대 복식 제도 변화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

1868년 5월 10일 저녁,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묘가 도굴될 뻔한 사건이 발생한다. 통상 수교 요청을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은 독일인 오페르트가 도굴하려 했으나 봉분 아래의 큰 무쇠에 도끼가 튀어 실패하게 된 것이다. 남연군 묘 도굴 미수 사건은 서양인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감정을 자극하여 쇄국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연군 묘 도굴 미수 사건은 이미 국가 간의 정세가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던 와중에 발생한 사건이었고, 이후로도 신미양요(1871), 강화도 운요호 사건(1875)이 일어나면서 조선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규(1876)를 체결하게 되었고, 조선에서는 서양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이는 와중에 의복 제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복식제도의 개혁으로 갑신의제개혁(1884), 갑오의제개혁(1894), 을미의제개혁(1895)이 단행되었고, 전통 복식의 종류와 구성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을미의제개혁이 발표된 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면서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고, 그런 가운데 내려진 단발령은 백성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된다.

단발령 직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하였다가 1897년 덕수궁으로 환궁하며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였고, 이로서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시도를 하였다.


※ 참고

  • 이경미, 『제복의 탄생』, 민속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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