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부여 석조-이예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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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html><iframe width="781" height="439" src="https://www.youtube.com/embed/xn1Bk9e1L4o" title="[ Beautiful KOREA ] 3D 영상으로 보는 한국의 보물 / 부여 석조"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html> | |
2024년 10월 2일 (수) 15:19 판
부여 석 (扶餘 石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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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 부여 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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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石槽 |
영어 | Stone Basin, Buyeo |
시대 | 백제 |
소장처 | 국립부여박물관 |
유형 | 종교물품 |
국가유산 종목 | 보물 |
국가유산 지정일 | 1963년 1월 21 |
내용
부여현의 동헌건물 앞에 있었던 것을 일제시대에 옛 박물관 뜰로 옮겼다가 현재의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부여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로, ‘工’자형의 받침대 위에 둥근 꽃망울 형태로 올려져 있다. 받침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간결한 모양이다. 그 위에 놓인 석조는 입구가 약간 오므라들면서 밖으로 둥글게 원호를 그리며, 바닥은 평평한 듯 하나 완만한 곡선이다.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개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고,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의 1층 탑몸돌에 새겨진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과 같은 글을 새기려던 흔적이 보인다.
이 석조에는 연꽃무늬 장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사찰과 관계된 유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본래 이 석조가 있었던 장소가 백제시대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어 당시 왕궁에서 쓰이던 석련지(石蓮池)가 아니었나 짐작된다.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으로 처리된 석조로,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이 잘 나타나 있다.[1]
갤러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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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관련 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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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부여 석조 | 실습 국립부여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있다. |
참고문헌
Web Resource
Bibliography
주석
- ↑ "보물 부여 석조",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