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왕릉원 서상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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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은 지하식이고, 횡혈식으로 현실과 연도, 묘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甲자형이며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 단면형태는 육각형이다. 현실의 장축방향은 북-남방향에 가깝다. | :석실은 지하식이고, 횡혈식으로 현실과 연도, 묘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甲자형이며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 단면형태는 육각형이다. 현실의 장축방향은 북-남방향에 가깝다. | ||
:현실의 천장은 판석으로 덮었으며, 북단벽은 판석, 동서 양장벽은 각각 장방형의 판석을 세운 후 그 위단에 장대석을 경사지게 놓아 축조되었다. 현실의 바닥에는 1매의 거대한 판석을 깔았다. 현문시설은 문틀식이며, 문비석은 1매의 판석으로 막았는데 그 중앙에 방형의 홈이 나 있다. 연도의 천장석, 양벽도 각각 1매의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연문의 문비석도 판석 1매로 세웠다. 석실의 상세한 규모는 알수 없다.<ref>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 연구단, [https://digital.khs.go.kr/record/recordDetailReport.do?ichDataUid=13897469728182900408 사적 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Ⅰ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조사와 기록], 부여군, 2017, pp. 86-87</ref> | :현실의 천장은 판석으로 덮었으며, 북단벽은 판석, 동서 양장벽은 각각 장방형의 판석을 세운 후 그 위단에 장대석을 경사지게 놓아 축조되었다. 현실의 바닥에는 1매의 거대한 판석을 깔았다. 현문시설은 문틀식이며, 문비석은 1매의 판석으로 막았는데 그 중앙에 방형의 홈이 나 있다. 연도의 천장석, 양벽도 각각 1매의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연문의 문비석도 판석 1매로 세웠다. 석실의 상세한 규모는 알수 없다.<ref>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 연구단, [https://digital.khs.go.kr/record/recordDetailReport.do?ichDataUid=13897469728182900408 사적 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Ⅰ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조사와 기록], 부여군, 2017, pp. 86-87</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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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사비(부여)의 [http://aks.ai/GC09000037 부소산]을 두르고 있는 산성으로 도성(都城)의 일부이다.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산성 아래로 백마강이 흐른다. 백마강은 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의 다른 이름으로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천도한 이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0여 년 동안 사비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백제의 중심이 되었다. 백제는 수도인 사비를 수호하기 위해 부소산성을 쌓았고, 이 부소산성은 백제가 망할때까지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부소산성은 사비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사비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된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나당연합군이 오자 궁녀들은 부소산의 바위에서 몸을 던져 ‘삼천궁녀의 낙화암 전설’을 만들었다. 지금도 부소산 아래로 푸른 백마강이 흐르고 있다. | ||
==갤러리== | ==갤러리== |
2025년 4월 9일 (수) 04:05 판
부여 왕릉원 서상총 (扶餘 王陵園 西上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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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 부여 왕릉원 서상총 |
---|---|
한자 | 扶餘 王陵園 西上塚 |
영어 | Buyeo Royal Tombs |
이칭 | 4호분 |
시대 | 백제시대 |
국가유산 종목 | 사적 |
국가유산 지정일 | 1963년 01월 21일 |
내용
- 서상총은 서편 능선의 상단부에 위치한다. 고분의 봉분 가장자리에는 할석을 세워 쌓은 호석이 둘러져 있다. 호석이 둘러진 봉분, 연도 입구와 현실 내부의 사진은 남아있지만 도면 자료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 석실은 지하식이고, 횡혈식으로 현실과 연도, 묘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甲자형이며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 단면형태는 육각형이다. 현실의 장축방향은 북-남방향에 가깝다.
- 현실의 천장은 판석으로 덮었으며, 북단벽은 판석, 동서 양장벽은 각각 장방형의 판석을 세운 후 그 위단에 장대석을 경사지게 놓아 축조되었다. 현실의 바닥에는 1매의 거대한 판석을 깔았다. 현문시설은 문틀식이며, 문비석은 1매의 판석으로 막았는데 그 중앙에 방형의 홈이 나 있다. 연도의 천장석, 양벽도 각각 1매의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연문의 문비석도 판석 1매로 세웠다. 석실의 상세한 규모는 알수 없다.[1]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사비(부여)의 부소산을 두르고 있는 산성으로 도성(都城)의 일부이다.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산성 아래로 백마강이 흐른다. 백마강은 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의 다른 이름으로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천도한 이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0여 년 동안 사비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백제의 중심이 되었다. 백제는 수도인 사비를 수호하기 위해 부소산성을 쌓았고, 이 부소산성은 백제가 망할때까지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부소산성은 사비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사비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된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나당연합군이 오자 궁녀들은 부소산의 바위에서 몸을 던져 ‘삼천궁녀의 낙화암 전설’을 만들었다. 지금도 부소산 아래로 푸른 백마강이 흐르고 있다.
갤러리
사진
동영상
위치 정보
위도 | 경도 | 주소 |
---|---|---|
36.278722 | 126.94333200000001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5 외 |
관련 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
실습:부여 석조 | 실습 국립부여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있다. |
참고문헌
Web Resource
Category | Title | Site | Url |
---|---|---|---|
사전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디지털부여문화대전 | https://www.grandculture.net/buyeo/toc/GC09000699 |
사전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한국문화민족대백과사전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382 |
해설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국가유산포털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402880000&pageNo=1_1_1_1&sngl=Y |
해설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국립부여박물관 | https://buyeo.museum.go.kr/rprsPsn/view.do?rprsPsnCmdtyMngSn=2001010002&key=2302150017 |
사진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국가유산포털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402880000&pageNo=1_1_1_1&sngl=Y |
사진 | 석조사리감의 뒷면 | 국가유산포털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402880000&pageNo=1_1_1_1&sngl=Y |
사진 | 앞면 명문의 탁본 | 국가유산포털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402880000&pageNo=1_1_1_1&sngl=Y |
동영상 | [내 손안에 부박] 창왕명석조사리감 | Youtube | https://www.youtube.com/watch?v=Oi8vZ-1IYNw |
※ 사전, 해설, 참고, 기사, 잡지, 사진, 동영상 등
Bibliography
Category | Title | Site | Url |
---|---|---|---|
단행본 | 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 연구단,『사적 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Ⅰ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조사와 기록』, 부여군, 2017, pp. 86-87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 https://digital.khs.go.kr/record/recordDetailReport.do?ichDataUid=13897469728182900408 |
※ 단행본, 논문 등
주석
- ↑ 백제고도문화재단 사비도성 연구단, 사적 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Ⅰ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조사와 기록, 부여군, 2017, pp. 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