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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KU2025:Seung-Story | Story]]  》 Ep 01. 조선시대 공주 덕온의 생애와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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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KU2025:Seung-Story | Story]]  》 Ep 01. 조선 후기 덕온공주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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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Narrative:===
 
===Korean Narrative:===
조선 시대, {{형광펜|순원왕후}}(純元王后)와 {{형광펜|순조}}(純祖)의 사랑은 여러 자녀를 통해 역사에 기록되었다. 순원왕후는 {{형광펜|덕온공주}}(德溫公主), {{형광펜|명온공주}}(明溫公主), {{형광펜|복온공주}}(福溫公主), 그리고 {{형광펜|효명세자}}(孝明世子)를 낳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복의 아름다움과 같이 세세한 부분에서도 깊은 의미와 역사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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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궁궐은 복잡하고도 다양한 인물과 관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형광펜|[https://ko.wikipedia.org/wiki/덕온공주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와 그녀의 가족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형광펜|덕온공주}}는 1822년에 태어나 1829년에 {{형광펜|봉작}}되었으며, 1837년에는 {{형광펜|남녕위 윤의선}}(南寧尉 尹宜善)과 화려한 혼례를 올렸다. 이 혼례는 {{형광펜|덕온공주가례등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형광펜|덕온공주의 혼례}}는 당시 사회의 문화와 예법을 반영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덕온공주와 남녕위 윤의선 사이에는 친자식이 없었지만, {{형광펜|윤용구}}를 양자로 삼아 그들의 가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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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온공주는 {{형광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943 순조]}}(純祖, 1790~1834)의 딸로, {{형광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924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소중한 딸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1822년에 태어나 여러 자매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녀의 자매들로는 {{형광펜|[https://ko.wikipedia.org/wiki/명온공주 명온공주]}}(明溫公主, 1810~1832), {{형광펜|[https://ko.wikipedia.org/wiki/복온공주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 그리고 {{형광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811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있었죠. 어머니 순원왕후는 이들 모두를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형광펜|덕온공주의 유품}}그녀의 삶과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유품은 후대인 {{형광펜|윤백영}}에 의해 기증되었다고 전해진다. 윤백영은 윤용구의 딸로, 가문의 역사와 유산을 이어받아 그 의미를 새긴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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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덕온공주는 공식적으로 {{형광펜|봉작}}을 받았고,<ref>[https://sillok.history.go.kr/id/kwa_12903006_004 『순조실록』 30권, 순조 29년(1829) 3월 6일 경자 4번째기사.]</ref> 이로 인해 그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녀의 {{형광펜|혼례}}는 1837년에 열렸으며, 중요한 사건은 {{형광펜|[https://jsg.aks.ac.kr/dir/view?dataId=JSG_K2-2631 『덕온공주가례등록』]}}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형광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513 남녕위 윤의선]}}(南寧尉 尹宜善, 1823~1887)이었고, 이 결혼은 두 사람의 인연을 공고히 했습니다.<ref>[https://sillok.history.go.kr/id/kxa_10308013_001 『헌종실록』 4권, 헌종 3년(1837) 8월 13일 무오 1번째기사.]</ref>
  
{{형광펜|숙의 박씨}}는 {{형광펜|영온옹주}}를 낳았고, 순조는 숙의 박씨와 순원왕후를 비롯한 여러 후궁들과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다. 순원왕후는 순조의 정비로서, 그녀의 자녀들은 조선 왕실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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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덕온공주와 윤의선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기에, 그들은 {{형광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477 윤용구]}}(尹用求, 1853~1939)양자로 삼았습니다. 윤용구는 훗날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덕온공주와 윤의선의 이야기는 조선 왕실 내에서 사랑과 의무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의 사회적 지위, 결혼, 가족 관계 등을 통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창을 열어준다. 각각의 인물과 사건은 "조선시대 공주 덕온의 생애와 유품"라는 주제 아래에서 조선 시대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교훈과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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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는 다섯 명의 자녀들을 두었고, 순조의 후궁인 {{형광펜|[https://ko.wikipedia.org/wiki/숙의_박씨_(순조) 숙의 박씨]}}(淑儀 朴氏, ?~1854) 또한 {{형광펜|[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영온옹주(永溫翁主) 영온옹주]}}(永溫翁主, 1817~1829)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조선의 왕실은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었으며, 각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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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관계와 사건들은 조선 왕실의 복잡한 구조와 함께 그 안에서 각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나타냅니다. 덕온공주와 그녀의 가족은 그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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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1일 (수) 20:07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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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Ep 01. 조선 후기 덕온공주의 생애



Korean Narrative:

조선 시대의 궁궐은 복잡하고도 다양한 인물과 관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와 그녀의 가족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덕온공주는 순조(純祖, 1790~1834)의 딸로,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소중한 딸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1822년에 태어나 여러 자매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녀의 자매들로는 명온공주(明溫公主, 1810~1832),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 그리고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있었죠. 어머니 순원왕후는 이들 모두를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1829년, 덕온공주는 공식적으로 봉작을 받았고,[1] 이로 인해 그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녀의 혼례는 1837년에 열렸으며, 이 중요한 사건은 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남녕위 윤의선(南寧尉 尹宜善, 1823~1887)이었고, 이 결혼은 두 사람의 인연을 공고히 했습니다.[2]

그러나 덕온공주와 윤의선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기에, 그들은 윤용구(尹用求, 1853~1939)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윤용구는 훗날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덕온공주와 윤의선의 이야기는 조선 왕실 내에서 사랑과 의무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순원왕후는 다섯 명의 자녀들을 두었고,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淑儀 朴氏, ?~1854) 또한 영온옹주(永溫翁主, 1817~1829)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조선의 왕실은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었으며, 각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모든 관계와 사건들은 조선 왕실의 복잡한 구조와 함께 그 안에서 각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나타냅니다. 덕온공주와 그녀의 가족은 그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