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다문화사회 외국인 거주자 2백만 시대

Korea100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23일 (월) 21:36 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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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 함께 사는 한국인 / 국가발전의 동반자
집필자 신현덕
교열자 유안리
개념용어 혼혈아 향가 색목인 단일민족 쇄국정책 세계화



1차 원고

한국인은 그들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들은 이 말을 순수한 혈통이라는 뜻으로 썼고, 때에 따라서는 남을 배척하는 때 이용했다. 한국에서 다문화가족은 혼혈아 국제결혼 등으로 부르며 차별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그간 다문화가족 출신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에서 조차 제외되었었다.

그러다가 20세기말 한국이 세계화에 나서며 국내로 이주하는 근로자와 국제결혼 등이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족을 국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또 하나의 동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은 조선 말기에 외국인을 배척했던 쇄국정책을 연상시켰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열강의 식민지 정책으로 아시아가 무너질 때 조선은 국가를 지키는 방안으로 문호를 닫아걸고 외국의 접근을 차단했다. 조선은 국가를 개방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안보정책이라고 생각, 서구의 앞선 문물 수용을 꺼렸고, 차단했던 것이다.

조선은 중국을 제외한 서구 국가를 외세라 여겼고, 그들과 교류는 덕이 될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선은 서구열강의 문물을 중국을 통해 중국인의 눈으로 검증한 것을 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조선은 나라를 열어 통상을 하자는 프랑스 미국 등과 전쟁을 했고, 앞선 서구의 과학 문명을 받아들이는데 주변국가보다 뒤졌다.

하지만 한반도가 오래전부터 외국과 교류했다는 기록은 많다. 신라의 향가 ‘처용가’에 등장하는 남자도 외국인이며, 고려 시대 ‘쌍화점’에는 아예 색목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외국인을 받아들여 성(姓)도 내려 주고 그들에게 벼슬도 주었다. 개국공신에도 중국의 한족이 들어있다. 이뿐 아니다. 만주와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여진 말갈 몽골 등등의 다른 종족의 피가 일부에서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곧바로 한민족으로 동화되었다. 이런 상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바꾸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16개 나라가 파병해 한국 국토와 자유와 인권을 지켰다. 그 후 남북분단으로 대한민국은 섬나라처럼 외국과 단철되었다가 경제가 발전하면서 저절로 문호가 열렸다. 한국은 1980년대 문호를 활짝 열었고, 근로자, 무역상, 유학생, 서비스 산업 종사자 등이 해외로 쏟아져 나갔다. 동시에 외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몰려 왔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뒤이어 그 나라 사람들이 묻어 왔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했고, 국적까지 취득하고 있다.

외국에서 온 이주 근로자들은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하듯 한국인들이 꺼리던 육체노동분야로 파고들었고, 지금은 그 분야의 대세를 이루었다. 여기에 가세하여 정부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을 허용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연수시키는 동시에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주 외국인이 2015년 현재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200만 명을 넘었다.

우리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2006년 39525명이던 것이 2015년에는 158,064명으로 대폭 늘었으며, 결혼으로 인한 경우가 가장 많다. 이는 급격한 도시화로 젊은 여성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하며 일어난 2차문제이다. 농촌에 남은 미혼 남성들이 배우자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농촌지역의 혼인율이 떨어졌고, 혼인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출산력의 저하를 가져와 많은 농촌 학교들이 문을 닫았다. 1990년대 들어 일부 농촌 총각들이 만혼 혹은 미혼의 문제를 국제결혼을 통해 해결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 거주하던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다문화가정이 2015년 278,036 가구로 크게 늘었다. 이들 가정에서 태어난, 특히 농촌지역에서만도 2020년이 되면 다문화 자녀가 13만 명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19세 미만 농가 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다문화 가정 내에서는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농촌의 가족, 학교, 지역 등에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전통적인 단일혈통에 의한 민족주의 이념을 뛰어 넘는 민족 정체성 확립이 시급하다.

연구원 1차 검토

검토의견
이 글의 대상 독자는 외국인임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문화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혈통주의 비판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 등으로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것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이들을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갖추어 나가고 있으므로 이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 기사 제목으로 제시한 “같이 갑시다”는 다문화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의미있게 통용될 수 있으나, 한국 사회는 오늘날 이미 다문화사회가 되었으므로 다른 기사 제목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 단일민족 및 다문화가정에 대한 과거의 생각, 현재 생각의 변화 및 정책에 대해서도 서술

- 현재 다문화사회가 되게 된 상황을 시대 순서별 그리고 상황별로 나누어 설명했으면. 외국인 유입에 대해 표를 만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 농촌 총각들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것이 2000년대에 들어와 확산되었나? 외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은?
- 본 원고는 다문화사회에 대해 농촌 총각들의 결혼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였는데, 그 외 시기별로 변화하는 다른 요소들도 정리하였으면 좋겠다.

- 다문화가정을 받아들이기 위한 정책, 텔레비전 프로그램, 공익광고 등을 현재 한국의 노력과 앞으로의 전망도 적어주었으면.


수정 원고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 명(전체 인구의 4.0%)을 넘어섰다. 2007년의 100만 명(인구 대비 2.2%)을 넘어선 지 9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중국인이 1,016,607명(49.6%)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149,384명(7.3%), 미국 140,222명(6.8%), 타일란드 100.860명(4.9%), 필리핀 56,980명(2.8%), 우즈베키스탄 54,490명(2.7%) 순이다.

외국인의 국내 체류자는 2013년 이후 매년 0.2%p~0.4%p씩 증가하여, 전체 인구에 대한 외국인 체류자의 수가 1%p 증가하는데 4년이 걸렸다. 이 같은 증가 추세라면 체류 외국인이 인구의 10%에 이르는 시점이 늦어도 2024년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이제는 그들의 국내 정착을 돕는데서, 그들이 본격적인 역량을 발휘하도록 방향을 바궜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 각 분야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그중 정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국제결혼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이 미미하지만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결혼 이민자의 수는 2011년 144,681명이던 것이 2015년에는 151,608명으로 매년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 중 84.6%가 여성으로,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맞아들인 것이다. 여성이 외국인 남성을 신랑으로 맞아들인 것은 15.4%로 남성에 비해 월등하게 적다. 이들로 구성된 다문화[1] 가구가 전체 가구의 1.5%인 299,241가구에 이른다.

이들 가구와 가족 구성원수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도 늘었다. 대표적인 문제가 가족 간에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는 점이다. 이에 따라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과 사회적응 등 다방면의 문제를 낳았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2008년부터 다문화가정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해오고 있으며 2017년에는 다문화 가족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총 1,50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가족관계 개선, 정체성 형성, 사회성 발달, 미래설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인 ‘다재다능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105개로 늘리고, 이중언어 가족 환경 조성사업 등을 도울 계획이다.

또 결혼이민자의 안정적인 가족생활과 사회경제적 진출 확대를 위해, 한국생활 정보를 담은 휴대용 안내서 배포하고, ‘다누리 포털’(www.liveinkorea.kr)을 확장한다.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하여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결혼이민자의 국내 거주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결혼이민자 정착단계별 지원 패키지 프로그램’을 100개 이상으로 확대한다.

다문화교육을 위한 ‘다누리배움터’(www.danurischool.kr)에 유아용 콘텐츠를 개발하여, 다문화 아동들의 다문화교육, 다문화교육자료, 온라인학습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다.

각 방송과 기업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KBS, MBC 등 각 방송사는 한류 드라마에 다문화를 포함하고, 때로는 그들을 주연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방송하고 있다. 또 삼성, 현대, LG U+, 하나금융그룹 등은 공익광고를 통해서도 다문화의 유리함과 우수성을 지원하자고 광고한다. 한 기업광고에서는 놀이터에서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자의 모습과 함께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라는 카피가 흘러나오며, 아이가 밥을 먹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축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당신처럼![2]”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자고 강조한다.

한국에 온 유학생도 10만 명에 가깝다. 2015년 91,332명이 세계 160개국 이상에서 왔다. 이들의 전공은 다양하며 특히 기술 분야와 한국어, 한국 역사, 한류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수가 가장 많은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인력이 부족하자 정부는 1991년부터 산업연수생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도록 제도화했고, 각 기업들은 외국의 우수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근로자들을 필요로 했다.

한국이 이처럼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20세기만 해도 그들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말을 순수한 혈통이라는 뜻으로 썼고, 때로는 외국인을 배척하는 때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외국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가 오래전부터 외국과 교류했다는 기록이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네덜란드 영국 등에 산재해 있다.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에 등장하는 남자도 외국인이며, 고려 시대 ‘쌍화점’에는 아예 색목인으로 못 박고 있다.

이런 상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바꾸기 조금씩 허물어졌다. 한국전쟁에 16개 나라가 파병해 한국 국토와 자유와 인권을 지켰다. 그 후 남북이 분단되었고 대한민국은 섬나라처럼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 했다. 그 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은 근로자, 무역상, 유학생, 서비스 산업 종사자 등이 해외로 쏟아져 나갔다. 동시에 외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몰려 왔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뒤이어 그 나라 사람들이 묻어 왔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했고, 국적까지 취득하고 있다.

외국에서 온 이주 근로자들은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하듯 한국인들이 꺼리던 육체노동분야로 파고들었고, 지금은 그 분야의 대세를 이루었다. 여기에 가세하여 정부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을 허용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연수시키는 동시에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를 포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주석

  1. 김문희 문영숙 김병희, 「텔레비전 광고 콘텐츠에 묘사된 외국인 모델의 특성 분석」, 『광고학연구』 Vol.23 No.8, 2012, 9쪽.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지만, 지난 2005년 정부 차원에서 급증하는 이주노동자 대책을 모색하면서 급부상되었다.
  2. 하나금융그룹 공익광고

연구원 2차 검토

검토의견
문장의 뜻을 좀 더 명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음.

예 1)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를 포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예 2) “이런 상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바꾸기 조금씩 허물어졌다. 한국전쟁에 16개 나라가 파병해 한국 국토와 자유와 인권을 지켰다. 그 후 남북이 분단되었고 대한민국은 섬나라처럼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다.” → 한국의 다문화사회 형성과 한국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한국의 이주노동은 1980년대 후반 들어 본격화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예 3)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몰려 왔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뒤이어 그 나라 사람들이 묻어 왔다. → 한국의 다문화사회는 경제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소득급증과 1992년 중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예 4)

“그중 정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국제결혼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이 미미하지만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간”을 삭제하고 “최근 결혼 이민자의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로 수정함.


교열본

빠르게 증가하는 체류 외국인 수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 명(전체 인구의 4.0%)을 넘어섰다. 2007년의 100만 명(인구 대비 2.2%)을 넘어선 지 9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중국인이 1,016,607명(49.6%)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149,384명(7.3%), 미국 140,222명(6.8%), 태국 100.860명(4.9%), 필리핀 56,980명(2.8%), 우즈베키스탄 54,490명(2.7%) 순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2013년 이후 매년 0.2%p~0.4%p씩 증가하였다. 전체 인구에 대한 외국인 체류자의 수가 1%p 증가하는 데 4년 정도 걸려, 이 같은 증가 추세라면 늦어도 2024년이면 체류 외국인이 인구의 1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단순히 그들의 국내 정착을 돕는 데서 나아가 그들이 본격적인 역량을 발휘하도록 방향을 바꾸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사회 각 층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활발한 정책 시행

최근 결혼 이민자의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 결혼 이민자의 수는 2011년 144,681명이던 것이 2015년에는 151,608명으로 매년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 중 84.6%가 여성으로,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맞아들인 것이다. 한국 여성이 외국인 남성을 신랑으로 맞아들인 것은 15.4%로 남성에 비해 월등하게 적다. 이들로 구성된 다문화[1] 가구가 전체 가구의 1.5%인 299,241가구에 이른다.

이들 가구와 가족 구성원수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늘었다. 대표적인 문제가 가족 간에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는 점이다. 이에 따라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과 사회적응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2008년부터 다문화가정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해오고 있으며 2017년에는 다문화 가족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는 ‘다재다능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105개로 늘렸다. 총 1,50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가족관계 개선, 정체성 형성, 사회성 발달, 미래설계 등을 지원하고, 이중 언어 가족 환경 조성사업 등을 도울 계획이다.

또 결혼이민자의 안정적인 가족생활과 사회경제적 진출 확대를 위해, 한국생활 정보를 담은 휴대용 안내서를 배포하고, ‘다누리 포털’(www.liveinkorea.kr)을 확장하였다.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하여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인력을 대폭 늘리고 있다. 결혼이민자의 국내 거주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결혼이민자 정착단계별 지원 패키지 프로그램’을 100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다문화교육을 위한 ‘다누리배움터’(www.danurischool.kr)에 유아용 콘텐츠를 개발하여, 다문화 아동들의 다문화교육, 다문화교육자료, 온라인학습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다

각 방송과 기업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KBS, MBC, EBS 등 각 방송사는 한류 드라마에 다문화를 포함하고, 때로는 그들을 주연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방송하고 있다. 또 삼성, 현대, LG U+, 하나금융그룹 등은 공익광고를 통해서 다문화의 유리함과 우수성을 지원하자고 광고한다. 한 기업광고에서는 놀이터에서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자의 모습과 함께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라는 카피가 흘러나오며, 아이가 밥을 먹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축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당신처럼!”[2]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다문화 가정을 다르게 보지 말고 지원하자고 강조한다.

한국에 온 유학생도 10만 명에 가깝다. 2015년 한 해에만 세계 160개국 이상에서 91,332명이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다. 특히 기술 분야와 한국어, 한국 역사, 한류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수가 가장 많은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인력이 부족하자 정부는 1991년부터 산업연수생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도록 제도화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연수시키는 동시에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다양하고 국제적인 사회로...

한국이 이처럼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20세기만 해도 그들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말을 순수한 혈통이라는 뜻으로 썼고, 때로는 외국인을 배척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외국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가 오래전부터 외국과 교류했다는 기록이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네덜란드 영국 등에 산재해 있다.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에 등장하는 남자도 외국인이며, 고려 시대 ‘쌍화점’에는 아예 색목인으로 못 박고 있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급증한 시기는 한국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 시기와 맞물린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그 나라 사람들이 함께 묻어 왔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한국에 정착했고, 국적까지 취득하고 있다.

외국에서 온 이주 근로자들은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하듯 한국인들이 꺼리던 육체노동 분야로 파고들었고, 지금은 그 분야의 대세를 이루었다.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를 포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는 보다 더 다양하고 국제적인 사회로 나가는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주석

  1. 김문희 문영숙 김병희, 「텔레비전 광고 콘텐츠에 묘사된 외국인 모델의 특성 분석」, 『광고학연구』 Vol.23 No.8, 한국광고학회, 2012, 9쪽.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지만, 지난 2005년 정부 차원에서 급증하는 이주노동자 대책을 모색하면서 급부상되었다.
  2. 하나금융그룹 공익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