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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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정(李益炡,1699~1782)묘 출토 심의(左), 홍의준(洪義俊)묘 출토 심의(右)
- 심의는 상하가 연결되어 몸을 깊숙이[深] 감쌀 수 있는 뜻을 취하여 이름을 붙인 의복이다.
- 중국에서 심의는 한대(漢代)에 상복(常服)으로 착용하였고, 한대 말기부터 사라졌던 것을 송대에 문헌을 고증하여 제작해 입기 시작하였다.
- 우리나라에서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전래와 함께 착용되기 시작하였고,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착용하였다.
-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심의를 선호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자가례』의 실천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주자가례』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두루 적용되는 통례(通禮)의 필수항목으로 ‘심의제도’를 싣고 있다.
- 아울러 심의의 형태는 옷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였으며, 심의를 착용했을 대 체득되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또는 그로 인해서 실천하게 되는 유교의 도덕이 있음을 유학자들이 중요시 여겼기 때문이다.
- 심의의 형태 중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속임구변(續衽鉤邊)의 해석이었다.
- 주자도 처음에는 사마광의 『서의』(書儀) ‘곡거지제(曲裾之制)’를 따라 곡거(曲裾)로 보았다가 만년에 그 설을 버리고 새로이 수정을 하였다고 하지만, 고친 심의제도가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주자가례』에도 속임구변의 항목이 없어 논란이 증폭되어 조선시대 학자들은 심의에 대한 각자의 해석과 도설을 자신의 문집에 남겨놓았다.
左: 김이안(金履安,1722~1791), 中: 이채(李采,1745~1820), 右: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심의 착용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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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유구 | 한백겸 | 이덕무 | 유형원 |
제목 | 임원경제지 | 구암유고 | 청장관전서의 심의설 | 반계수록 |
특징 | 단령의 뒷자락처럼 심의의 뒷자락을 만들어 뒤에 고정 | 깃을 방령의 형태로 만드는 심의설 제시 | 시대가 너무 오래되어 상고할 수는 없으나 각자의 심의를 입을만하다 하여 중립적 입장 | 한백겸의 설을 전체 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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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차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