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정포동(井浦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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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20일 (월) 01: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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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정포동(井浦洞401)) 客馬來尋井浦樓말을 탄 나그네가 정포 누각 찾아가니, 鎭雲散盡海長流진보 구름 흩어지고 바다는 멀리 흐르네. 却推許老詩中意허씨 노인 지은 시의 속뜻을 생각하니, 城月光輝又一秋성터의 밝은 달빛 속에 또 한해가 지나가네. ○ 위량면(位良面) 정포동(井浦洞)은 강화부 관아의 서쪽 30리 지점에 있다. ○ 허봉(許葑)402)의 ʻ정포의 성루(城樓)ʼ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늦도록 성루에 혼자서 앉아 있자니(獨坐城樓晩) 시끄럽던 까마귀 둥지에 드는구나.(棲烏無數喧) 바다 산은 안개에 싸여있어 어둡고(海山 籠霧暗) 사장의 포구는 조수 밀려 흐리구나.(沙浦帶潮渾) 손이 되어 속절없이 근심하고 생각하니(作客空愁思) 집으로 돌아가는건 꿈속의 혼이라네.(還家只㒱魂) 참성단에 올라서 주변을 바라보면(塹城壇上望) 이 나라로 들어오는 정문을 볼 수 있으리.(應見國正門)” 이 시로써 미루어 보건대 옛날에는 성루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옹성 여러 곳이 있는데 “광해세자가 이곳에 구금되었다.”라고들 전한다. ○ 옛날에는 진보가 있어서 수군 만호를 두었으며 현종 병오년(1666, 현종 7)에 유수 서필원(徐必遠)403)이 아뢰어서 수군을 교동으 로 옮기고 별장을 두었다. 기유년(1669, 현종 10)에는 유수 김휘(金徽)404)가 도로 만호를 두었다. 숙종 무오년(1678, 숙종 4)에는 윤이제(尹以濟)405)가 아뢰어서 장봉도로 옮겼지만 다시 별장을 두었다. ○ 제방은 서필원이 쌓은 것이다. 400) 위량면은 1914년 내가면과 양도면으로 나뉘어 편입되었다. 401) 내가면 외포2리 정포마을로, 외포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402) 허봉(1551∼1588) 조선 중기의 문인.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 본관은 양천(陽川). 403) 서필원(1614∼1671)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 404) 김휘(1607∼1677) 본관은 안동. 자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만은(晚隱 405) 윤이제(1628∼1701)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즙(汝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