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효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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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판소리 이론가면서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1812∼1884)가 살던 집이다.

철종 1년(1850)에 지은 것으로 짐작하며 광무 3년(1899) 그의 아들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집은 소담한 초가집 사랑채로 보고 있는데 중요 민속자료 지정 전까지 고창 경찰서의 부속 건물로 쓰였다. 지금 건물은 많이 개조되고 변형된 것을 국가에서 관리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고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앞면 6칸·옆면 2칸 규모에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초가지붕이다. 구성은 앞에서 볼 때 왼쪽부터 부엌 1칸, 방 2칸, 대청 1칸, 2칸을 합하여 통 1칸으로 만든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엌을 뺀 나머지 앞면 5칸은 반칸 툇마루를 두었다.

부엌과 방 사이에 쌍여닫이 출입문을 만든 점과 대청 양쪽 방으로 연결하는 문을 달지 않은 점이 특이한 구조로 눈길을 끈다. 현대 판소리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명인(名人) 신재효의 옛 집으로서 가치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1]

신재효와 진채선

신재효가 판소리의 이론을 정립하고 많은 제자를 길렀으나 진채선이라는 제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게된 것은 그녀가 최초의 여성명창이면서 굴곡진 삶을 살았던 때문으로 보인다.

신재효

판소리문학의 이론가, 연출가이자 광대의 지휘자라는 평을 듣고 있는 신재효 선생은 1812년에 신광흡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고창군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동리 신재효는 애초 소리꾼이 아니라 재산이 넉넉한 중인 출신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를 기반으로 집안을 번창시키면서 판소리의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동리가에서도 노래했듯이, 그는 "시내 위에 정자 짓고/ 정자 곁에 포도시렁/ 포도 곁에 연못이라…"를 읊을 줄 알았던 풍류가객이기도 했다.

동리선생은 말년까지 이집에 살면서 노래청을 두고 수많은 제자를 불러 명창들을 길러냈으며, 토끼타령, 박타령,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가루지기타령 등 6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편술했다. 여섯 마당 판소리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은 너무 음탕하다고 하여 부르기를 꺼려 왔던 바람에 그 가락이 잊혀지고, 오늘날 다섯 마당만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2]

진채선

전라북도 고창 출생.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 신재효(申在孝)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 풍류·가곡(歌曲)과 무용에 능하였고, 여성이면서도 웅장한 판소리 성음(聲音)을 내고 기량도 대단하였다 한다.

20대에 경복궁 낙성연에서 판소리를 불러 좌중을 감탄하게 하였다. 이때 신재효가 지은 「성조가(成造歌)」를 불렀다는 설도 있다.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서울에 잠깐 머무르는 동안 신재효는 「도리화가(桃李花歌)」라는 노래를 지었다 한다. 이 노래는 가사체로 지금 전하고 있다. [3]

진채선과 흥선대원군, 그리고 신재효에 관한 사랑이야기는 2015년에 가수겸 배우인 수지가 주연을 맡아 “도리화가”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위치

참고영상

조선최초 여성명창 진채선

전주 MBC (2014.10.26)

도리화가

신재효와 진채선을 모델로 한 조선 최초의 여성명창의 이야기

개봉일: 2015년 11월 25일

감독: 이종필

촬영: 김현석

출연진: 수지, 류승룡, 송새벽 외

관련 사이트

출처

  1. 출처 : 문화재청 '고창신재효고택'
  2.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고창신재효고택'
  3.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 '진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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