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우반동 간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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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과 박태관
- 朴泰觀(1678~1719.2.9.)
명문세족 반남박씨 박소(朴紹)의 후손. 4세에 모친을 여위고, 20살에 부친상을 당함. 족형인 징사공 박태초를 스승으로 섬김. 농암 김창협에게 가서 학문을 질정했는데 김공이 자주 칭송을 함. 김수종과는 막역한 친구 사이로 김수종과 자주 교류하며 간찰과 선물을 주고 받았음. 강호에 오랫동안 살다가 늦게 三淸 白蓮峯 아래에 집을 사서 ‘白厓’라 이름 지음. 저서는 시고 한 권이 있음. 호는 凝齋.
증조부 朴東說 관찰사. 조부 朴濠 첨지중추부사. 부 朴世標 南平현감. 모 咸平李氏.
初娶 全州李氏, 參奉讓錫의 딸
再娶 寧越辛氏, 縣令泰東의 딸
참고문헌: 고전번역원 凝齋朴君墓表, (朴弼周의 黎湖先生文集)
- 金守宗(1671~1736)[1]
김수종은 김명열의 손자이며 우반동 입향조인 김번의 양자로 그의 생부는 김번의 아우인 김문이다. 김수종은 다섯 살이던 1675년에 큰아버지인 김번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김수종은 40세인 1710(숙종 36)년에 진사에 급제하였다.(시권이 남아있음). 참봉직에 몇 차례 천거되었으나 결국 과거길에 오르지는 못하였다.
이후 김수종은 중앙 관리나 명문세족과 교유하며 가문의 지체를 높이고 자녀들을 좋은 집안의 자제들과 혼인시키려고 노력을 하였다.
당시 이만성(李晩成)·이병상(李秉常)·조관빈(趙觀彬)·조도빈(趙道彬)·박태관(朴泰觀)·박태겸(朴泰謙)등과 교우하면서 이들을 통해 서울 소식을 전해 받았다.
증조부 金弘遠. 조부 金命說 . 양부 金璠. 양모 漢陽趙氏. 생부 金璊. 생모 牛峯李氏
처 順興安氏, 靑松沈氏
간찰 번역
편지 목록
순번 | 문서번호 | 서기년 | 간지 | 편지 발신자 | 박태관나이 | 김수종나이 | 내용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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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58 | 1697 | 정축년 3월 26일 | 弟 泰觀 頓首 | 20 | 27 | 안부를 전하면서 가을이라 한번 찾아오라 함. 답장. |
2 | 164 | 1700 | 경진년 10월 2일 | 朴泰觀 | 23 | 30 | 만남 후에 보낸 편지로 僮僕이 돌아감에 부침, 부탁한 시를 지어 보냄. |
3 | 136 | 1701 | 신사년 上元日 아침 | 弟 泰觀 | 24 | 31 | 안부 편지, 監試 初試가 8월로 결정되니 그 때 올라오는지 물음. |
4 | 149 | 1701 | 신사년 2월 6일 | 弟 泰觀 | 24 | 31 | 며느리가 유산됨, 읍리 편에 편지를 부침. 추신-『遺響』을 보내 달라. |
5 | 131 | 1701 | 신사년 5월 7일 | 服弟 泰觀 | 24 | 31 | 과거를 보려는 것이 잘못됨을 들음, 춘궁을 구제해 준 두 가마니는 너무 과해 송구하다. 답장. /추신-盤松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허락을 요구. 『遺響』은 잘 받음. |
6 | 129 | 1703 | 계미년 6월 19일 | 弟 泰觀 | 25 | 33 | 뜻을 확고히 하여 마음을 다잡아라, 子受 집에서 인편이 감에 작성함. /추신-庄奴는 엄하게 다스려 달라. |
7 | 128 | 1703 | 계미년 7월 19일 | 弟 泰觀 | 25 | 33 | 小紙에 적힌 盤松의 家舍는 형이 定之와 각자 가지는 문제는 둘이 잘 합의해라, 전복과 종이를 보내주어 감사함, 錦平에 노인이 죽었다고 통보. 답장. |
8 | 115 | 1703 | 계미년 9월 1일 | 弟 泰觀 | 25 | 33 | 定之가 돌아감에 안부를 전함. |
9 | 120 | 1703 | 계미년 9월 18일 | 弟 泰觀 | 25 | 33 | 定之가 돌아감에 쓴 안부편지. /추신-定之가 잘 돌아갔는지 물음. |
10 | 133 | 1703 | 계미년 12월 5일 | 服弟 泰觀 | 25 | 33 | 奴가 돌아감에 쓴 안부 편지. /추신-생선을 보내주어 감사. |
11 | 117 | 1704 | 갑신년 11월 30일 | 朞服情弟 泰觀 | 26 | 34 | 박태관이 부안에서 서울로 온 후 잘 왔다고 보낸 편지. 공부하라는 조언, 시를 지어 보냄, 서울 소식을 전함, 新曆 4부 大墨 1홀을 보냄, 저고리가 바뀌었다고 함.
/추신-2종의 생선과 耳掩을 보냄. |
12 | 139 | 1705 | 을유년 9월 28일 | 服弟 泰觀 | 26 | 35 | 과거시험에 못 보게 되어 아쉬움, 농사가 흉년이라 놀랍다, 湖伯형에 처소에서 돌아가는 편에 쓴 안부편지. /추신-船卜을 급하게 기다리니 廳奴에게 빨리 보내게 하라. |
13 | 148 | 1706 | 병술년 1월 17일 | 服人世弟 泰觀 | 27 | 36 | 定之가 죽어 슬픔, 정지는 문필을 버리고 무과에 급제 편모와 어린 자식이 있음, 喪車는 兩湖의 方伯에 부탁했음, 부의를 제대로 못해 송구함, 海墨을 보냄.
/별고-冑卿이 公山에서 만나자는 것은 기제 때문에 할 수 없음, 遮陽竹을 보내 달라. |
14 | 150 | 1706 | 병술년 5월 7일 | 服弟 泰觀 | 27 | 36 | 定之가 죽은 후로 김수종과 연락이 그침, 김수종이 아들을 낳는 것에 축하함, 竹園에 모르는 시체를 파 갔다고 하여 축하함, 두 섬의 벼와 여섯 묶음의 생선 30개의 靑竹에 감사함, 배를 팔게 하고 곡식을 받을 것임, 定之의 가족 소식을 물음. |
15 | 175 | 1707 | 정해년 5월 30일 | 弟 泰觀 | 28 | 37 | 홍역이 경향에 만연한데 안부를 물음, 아들딸 중 무엇을 낳았는지 물음, 과거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웬만하면 올라와라, 조카의 婚處가 古阜人을 택하는데 적합처를 알려 달라,
寒泉의 金友 일은 禮判이 거부하여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 |
16 | 134 | 1708 | 무자년 8월 2일 | 眷弟 泰觀 | 29 | 38 | 전염병이 없어지고 공부는 잘하는지 물음, 婚處에 대해서는 沈友에게 들었는데 집안이 좋다고 함, 비가 많이 내려 걱정됨, 京畿의 밭에는 수확물이 없어 부안만 믿음,
廳奴를 타일러 빨리 곡식을 보내 달라, 白紙는 품질이 안 좋음, 전복은 감사함, 조카의 혼례는 10월로 미룸, 筆墨을 보냄. |
17 | 172 | 1708 | 무자년 8월 3일 | 服弟 泰觀 | 29 | 38 | 200냥을 보내주어 감사, 方伯과는 추후에 인사를 하겠다. /추신-金鏡의 친우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 |
18 | 145 | 1709 | 기축년 1월 3일 밤 | 服弟 泰觀 | 30 | 39 | 부안에서 돌아온 후 안부편지, 김수종의 상사에 대해 위로, 자신은 조카가 요절함, 蘆橋에 대한 原情을 보내니 올려 달라. |
19 | 162 | 1709 | 기축년 1월 28일 | 服弟 泰觀 | 30 | 39 | 만난 지가 10개월이 됨, 김수종 계씨의 죽음을 위로함, 박태관은 요절한 조카를 묻을 것임, 蘆橋에 대한 송사가 정지되면 남쪽에 못 내려감,
領相이 沈浚과 崔壽慶을 붙여주기 위해 복과를 시행할 것이니 올라와라. /추신-東湘의 노형과 李忠義 부자와 石橋의 郎君 안부를 물음. |
20 | 151 | 1709 | 기축년 踏靑日(3월 3일) | 服制 泰觀 | 30 | 39 | 김수종 계씨의 장례에 부안군수가 도와줬는지 물음, 蘆橋 일은 내려가지 않음, 조카아이는 내려감, 網巾은 감사함.
/추신-領相이 『禮記類編』을 찬술함, 이로서 성균관 유생과 갈등함, 노론과 소론들이 혈전을 벌임. |
21 | 174 | 1709 | 기축년 9월 26일 | 服弟 泰觀 | 30 | 39 | 김수종이 간 후 10개월 지남, 박태관은 두 장례식의 返虞를 마침, 조카는 멀리 떠나 감, 完山의 백일장은 잘 볼 수 있는지 물음, 人馬는 가까운 고을에서 빌리기로 함. |
22 | 168 | 1709 | 기축년 11월 5일 | 服弟 泰觀 | 30 | 39 | 조카가 모두 남쪽에 내려감, 인마를 빌려주어 감사함, 굶주림에 곡식을 도와 달라. /추신-李鉽의 鞫廳을 설치하고 사형시킴, 영상 李濡가 쫓겨나고 崔相이 다시 배수 받음, 전복과 생선은 감사함, 먹을 보냄. |
23 | 169 | 1710 | 경인년 1월 5일 | 服弟 泰觀 | 31 | 40 | 편지를 한지 60일이 됨, 남쪽에 간 조카의 소식을 못 들음, 임금의 병이 심하다가 회복함, 봄에 慶科를 설치한다 함, 조카를 잘 봐 달라,
族姪 朴弼揆가 完山 判官이 되어 가는데 만나 봐라, 상사에 의함 병으로 봄에 도성으로 이사하려 함, 靑竹 3~40통을 보내 달라, 三曆을 보냄. |
24 | 126 | 1710 | 경인년 12월 16일 | 弟 泰觀 | 31 | 40 | 김수종 딸의 혼처를 물음, 李兄의 旬撫하는 행차가 바뀐 것을 전함, 달력을 보냄. /추신-黃口筆 2개를 보냄. |
25 | 116 | 1711 | 신묘년 4월 17일 | 服弟 泰觀 | 32 | 41 | 營中에 있는 李柏年에게 편지를 보내라 함. 답장. |
26 | 154 | 1711 | 신묘년 12월 17일 | 弟 泰觀 | 32 | 41 | 박태관은 賢兒와 모든 아이들이 마마 걸림, 6일에 젖먹이 애가 죽음, 일찍 고아가 된 후 부인과 형을 잃었다고 함, 김수종이 아들 얻은 것을 축하함, 坤殿에 창질이 회복됨,
大庭試를 2월 30일 설행한다 함, 과거공부를 하라, 柳婚이 틀어짐. /추신-새 수령이 재목을 베어 배를 만든 것을 단속한다는 데 잘 처리해 달라, 台甫가 扶安수령과 다투어 안 내려감, 청나라 황제가 歲幣를 없앰, 新曆은 금처럼 귀하여 3부만 보냄. |
27 | 170 | 1712 | 임진년 8월 26일 | 弟 泰觀 頓 | 33 | 42 | 박태관은 동쪽 여행 후 학질에 걸림, 남행은 다음 달 10일 갈 것임, 根壽의 죽음이 안타까움, 科獄의 곡절이 심하여 鞫獄이 일어남. |
28 | 152 | 1713 | 계사년 4월 11일 | 弟 泰觀 | 34 | 43 | 박태관이 반년 동안 있다가 서울로 잘 올라왔다고 전함, 진송해 준 것이 감사, 關伯형의 龍山 江亭에서 1~2년 보낼 것임, 金昌翕에게 그 풍경을 들음,
김수종에게 이곳에 집을 지어 달라 함, 붓 2개 먹 하나를 보냄. /추신-東湘에 안부를 전해 달라. |
29 | 167 | 1713 | 계사년 11월 7일 | 弟 泰觀 頓 | 34 | 43 | 東村의 伯兄이 1일에 죽음, 부안에 있는 박태관의 막내 조카가 죽었다고 전해서 놀람, 柳庄은 풍토가 좋지 않아 조심하고 산 사람을 돌봐 달라, 임금의 감기가 차도를 보임,
御史로 尹鳳朝·呂光周·李秉常이 나감, 鵞峴의 季兄이 廣州府尹으로 부임할 것임. /추신-新曆 2건을 보냄. |
30 | 147 | 1714 | 갑오년 1월 26일 | 服弟 泰觀 | 35 | 44 | 希甫가 죽었다하여 놀람, 김수종의 동생인 根壽가 작년에 希甫가 이번에 죽음이 한탄스러움, 庶弟 하나만 남음, 박태관은 부인과 형과 아이를 잃고 작년에 조카가 요절함,
17일 東村형을 장사지냄, 돈을 보내주어 감사함. /추신-임금의 건강이 회복함, 主材와 먹 하나를 보냄. |
31 | 161 | 1714 | 갑오년 2월 28일 | 服弟 泰觀 | 35 | 44 | 김수종에게 동생을 잃은 후 안부를 물음, 大庭試를 치룰 것이니 공부하라, 李慶叔이 부인을 묻기도 전에 새 부인을 얻은 것을 만류시켜라. /추신-붓 1자루 보냄. |
32 | 146 | 1714 | 갑오년 4월 1일 | 服弟 泰觀 | 35 | 44 | 龍湖의 하류로 이사가려 함, 식량을 보내주어 감사함, 곡식을 보내 달라, 李慶叔의 자식이 죽음은 슬픔. /추신-임금의 건강이 안 좋음, 청나라 사정을 전함, 三日製에 李匡輔가 장원함. |
33 | 119 | 1715 | 을미년 3월 23일 | 弟 泰觀 | 36 | 45 | 과거에 낙방, 김수종이 소첩을 데린 것에 대한 훈계, 김수종 조카도 낙방하고 돌아감. 답장. /추신-국왕이 나으면 庭試가 있을 것임, 먹을 보냄, 大蝦를 보내 달라 요구. |
34 | 130 | 1715 | 을미년 5월 10일 | 弟 泰觀 | 36 | 45 | 보리를 몇 가마 보내 달라. /추신-임금이 병환이 심해짐, 도정은 8월에 할 것임. |
35 | 122 | 1715 | 을미년 7월 18일 | 弟 泰觀 | 36 | 45 | 더위가 심함, 첩을 두는 것에 훈계, 숙부 盤松察訪이 돌아가심. 답장. |
36 | 138 | 1715 | 을미년 8월 24일 | 服弟 泰觀 | 36 | 45 | 아들을 낳음, 察訪 숙부가 굶어 죽음은 친구들이 슬퍼할 것임, 관 값을 박태관 자신에게 보내 달라, 吏判은 趙泰采가 되고 申銋은 체직됨. /추신-東湘의 안부를 물음. |
37 | 157 | 1716 | 병신년 정월 아침 | 弟 泰觀 | 37 | 46 | 새해 안부편지, 임금의 건강이 안 좋음, 講經 別試는 2월 20일 후로 정해짐, 察訪 숙부의 賻儀金을 모을 수 있는지 물음, 관 가격을 독촉 받음, 凶書 만든 사람이 잡혀 사형 당함,
鵞峴 李兄이 藥院에 들어감, 새로 얻어 아이의 건강을 물음, 抱龍丸 安神丸 淸心丸을 보내 달라, 월력 3건과 먹 하나를 보냄. /추신-大蝦는 좋은 것으로 보내 달라. |
38 | 118 | 1716 | 병신년 단오일 | 弟 泰觀 | 37 | 46 | 새로 얻어 아이의 마마를 걱정해 줌, 곡식을 보내주어 감사함, 집을 짓는데 돈을 보태 달라, 여러 사람들의 안부를 물음. /추신-大蝦를 보내 달라, 아이 약과 붓 하나를 보냄. 답장. |
39 | 140 | 1716 | 병신년 11월 23일 저녁 | 弟 泰觀 | 37 | 46 | 山訟으로 바쁠 것이라 염려 됨, 박태관은 아이가 요절함, 굶주리고 있으니 곡식을 보내 달라, 湖儒가 孝廟를 추숭하는 일로 上䟽함, 太守의 행차 편에 편지를 보냄.
/추신-大小 달력 2개를 보냄. |
40 | 141 | 1717 | 정유년 5월 14일 | 弟 泰觀 | 38 | 47 | 서울에 돌림병이 심함, 金春澤과 鄭錫敷 이 때문에 죽음, 임금의 건강이 걱정됨, 받은 網巾은 너무 사치스러움, 부채 1개 먹 2개 붓 3개를 보냄. /추신-참빗 2개를 보내 달라. |
41 | 166 | 1717 | 정유년 7월 5일 | 服弟 泰觀 | 38 | 47 | 김수종의 庶弟가 죽은 것을 위로, 時病이 일어남에 괜찮은지 물음, 박태관은 三淸에 집을 옮김, 종이를 구하는 것에 부안 것이 오히려 비쌈, 종이 값을 그냥 보내 달라. |
42 | 121○ | 미상(계미년 9) | 典農에서 보낸 물건과 편지의 행방을 물음, 龍奴 조카인 有秋에 대해 걱정 말라, 耳掩의 가격을 보내라, 집 짓는 목재는 준비해 두라. | ||||
43 | 123 | 미상(을미년 7) | 김수종이 목이 쉬는 병에 걸림을 위로, 딸아이 얻음을 축하함, 자식이 번성하지 못함을 위로함, 박태관의 서제와 조카가 부안으로 이사 감에 인마를 빌려 달라. 답장. | ||||
44 | 124 | 신○년 11월 1일 | 弟 泰觀 | 큰 아이가 마마를 앓음, 귀마개는 품질이 좋은 것임, 서울 소식을 전함. | |||
45 | 127○ | (경인년 12) | 眷弟 | 상대가 행차하는 관계로 어제 이별한 후에 보낸 편지, 행차 길에 瘡疾이 퍼져 걱정됨, 臘藥을 보냄. | |||
46 | 132 | 병○년 6월 27일 | 眷弟 泰觀 | 竹林에 시체를 파 갔다고 들음, 박태관의 庶弟의 병이 위독함, 김수종이 새로 얻은 아이의 병을 걱정함, 독서를 하라, 庶母집에 곡식을 金無毒에게 빼앗겼는데 이를 해결해 달라,
扶安郡守가 李塾의 甥姪인데 만나봐라. | |||
47 | 135 | 갑○년 10월 9일 | 弟 泰觀 | 산속 암자에서 논어를 읽다가 돌아 옴, 임금의 건강이 안 좋음, 전에 보내준 음식에 감사함, 달력 2건 붓 1자루 보냄, 신년 안부편지. | |||
48 | 137 | 무○년 1월 23일 | 朞服弟 泰觀 | 次雲이 온 후로 소식을 못 받음, 初喪부터 신세가 처량함, 楊州의 선산 가까이 혈처를 얻어 地師에게 날짜를 요구함, 世子의 謁聖이 2월 21일 정해짐,
判書 閔鎭厚를 수장에 규정한다는 윤허를 받음, 시험보러 올라 와라. /추신-아이 약을 보냄. | |||
49 | 142 | 병○년 9월 4일 | 眷弟 泰觀 | 김수종의 자식이 요절한 것을 위로함, 박태관 자신의 친조카와 庶弟를 못 도와줘 안타까움, 呂必重 姜履相 등이 유배 감, 신사년 옥사에 대신들이 파직됨,
釋之의 상사에 슬픔, 扶庄에 곡식이 잘 되도록 도와 달라. | |||
50 | 143○ | (병?년 9) | 眷弟 | 비가 걱정됨, 戶牌 나무는 시장에서 구입하라, 壯紙 등 종이를 보냄, 錦平과 燕行과 西郊에 종이를 보내는데 말을 빌려 달라. /추신-호패 작성법을 적음. | |||
51 | 144 | 을○년 30일 밤 | 服弟 泰觀 | 김수종의 어린 딸을 묻는 참혹함을 위로, 湖儒의 上䟽로 인해 春宮과 廷臣들이 몰려가서 간청함, 增廣試를 설행한다고 함, 서울로 와서 계속 떨어지는 치욕을 떨쳐라.
/추신-東湘과 茁來의 안부를 묻고, 釋之의 안부를 물음. | |||
52 | 153 | 무○년 윤월 21일 | 弟 泰觀 | 남쪽의 瘡疾이 아직 있어 걱정됨, 李自白의 일은 호남방백을 만났는지 물음, 김생원댁 堂額을 빨리 지어 보내라. | |||
53 | 155 | 병○년 12월 20일 | 服制 泰觀 | 緬禮를 잘 치렀다 하여 하례함, 박태관은 부인이 출산 후 병으로 고생함, 舍姪이 고생한 것이 어른 입장에서 안타까움, 곡식이 빨리 오도록 도와 달라,
遮陽竹은 좋으니 더 보내 달라, 林浣이 장을 맞아 죽음. /추신-新曆 3부를 보냄, 別試는 중춘에 하니 올라 와라. | |||
54 | 156 | 무○년 11월 17일 | 弟朞服人 泰觀 | 잘 돌아갔는지 물음, 박태관은 첫 期日이 다가와 슬픔, 金友가 初試에 합격함. /추신-生薑을 보내 달라. | |||
55 | 159○ | 26일 저녁(정축년 3) | 眷弟 | 柳庄에 잘 도착함을 들음, 박태관은 부친의 忌日을 지내고 잠시 머무름, 같이 데리고 온 人馬가 많으니 양식을 보내 달라, 臘劑와 붓과 먹을 보냄, 典農 沈生의 창질이 나아 기쁨.
/추신-東湘에 안부를 전해 달라. | |||
56 | 160○ | 1707 | 小紙(정해년 1) | 判義禁府事 李頤命이 급하게 홀로 請對하려는 것을 배척당함, 이로서 파직 당함. | |||
57 | 163 | 병○년 10월 10일 밤 | 眷弟 泰觀 | 緬禮가 정해짐을 들음, 부탁한 내용은 민생과 의논하면 민대감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음, 부모를 장사지내는 일을 느슨하게 함을 질책, 보내준 벼와 생선에 감사함,
無毒의 일족 소재를 파악해 달라, 緬禮를 잘 치러라. | |||
58 | 165 | 경○년 10월 1일 | 弟 泰觀 | 파도로 行裝을 바다에 빠뜨린 것을 위로함, 과거시험을 못 봄, 저번 달에 아들을 얻음, 畿田이 흉년이라 扶庄의 곡식만 믿음, 해적이 창궐하니 조심하라, 婚事는 직접 찾아봐라. | |||
59 | 171 | 12월 15일 | 服弟 泰觀 | 三淸의 具兄이 돌아와 편지를 받음, 奴를 湖中으로 보내 공물을 가져오다가 강도를 만나 빼앗기고 노도 죽음, 임금의 건강이 회복됨, 내년 가을에 別試를 시행함. | |||
60 | 173 | 편지 받은 아침 | 損弟 泰觀 | 낮에 출발할 것이므로 자신에게 찾아와라. | |||
61 | 176 | 정○년 7월 11일 저녁 | 眷弟 泰觀 | 次雲이 편지를 전해 줌, 종이 구입은 좋은 종이를 구입하는 것 보다 그냥 돈을 준다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김수종의 庶兄 상사를 당함에 위장을 제때 못 보내 송구함.
/추신-李忠義 노인의 안부를 물음. |
부안김씨 간찰 관련 지리 정보
참고 문헌
- ↑ 출처: 전경목,『우반동과 우반동 김씨의 역사』,신아출판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