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의미
고대인들은 현세 이외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람이 죽으면 현 세 계로부터 귀의 세계로 간다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이 귀의 세계를 현세의 존재와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특히 이기론적 본체관과 결부된 성 리학적 귀신개념은 영적 존재와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자 하는 도덕 적 의식이다.
고대인들은 귀신이 초능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었고, 그리고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감시하여 상과 벌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을 숭배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귀신을 숭배하는 내용은 인간과 귀신의 관계가 종교 행위로 드 러나게 된 것이 실제로는 당시 사회와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 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귀신은 단지 인간의 육체를 떠난 것일 뿐, 귀신의 세계에서 여전히 산 사람들과의 관계는 계속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 다. 그러므로 귀신과 산 사람의 관계는 상호 우호적인 관계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귀신에 대한 숭배의식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는 의식일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집단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대사에 필요한 의견을 묻기도 하였다. 특히 묵가의 사상은 천•귀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있다고 할 수 있다.203 그러나 그 관계에 있어서는 당시의 사상가들과는 견해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만물을 절대 권위를 가진 상 제(上帝)가 주재하는 것으로 믿었던 바를 그대로 수용하였던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간은 단지 복을 구하는 입장으로서 종 속적인 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묵자는 만약 천과 인간의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사람들 은 무조건 일방적으로 천의를 따라야만 한다. 여기에 대해 묵자는 사람이 천의에 따르게 되면 하늘 또한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한다. 반대로 하 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하늘 또한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한 다.204 이렇게 묵자에게 있어서 귀신과 인간은 상호 순응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 리하여 하늘과 귀신이 사람의 호악(好惡) 감정을 그대로 상벌을 시행한다고 보았다. 귀신이 현자(賢者)에게 상을 주고 폭자에게 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국가 에게 알리고 만민에게 알리는 것이 실제로 국가를 안정시키고 만민을 이롭게 하는 방법이 된다.205 그리고 오늘날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귀신이 현자에게 상을 주고 폭자에게 벌 을 준다는 사실을 믿게 할 수 있다면 천하가 어찌 혼란스럽겠는가.206
이상에서 보면,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은 국가와 만민을 이롭게 하고 정치 사회적 안정이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결국 귀신의 존재 증명 또한 그 상벌 작용의 권위와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상벌 시행은 엄격하여 추호의 예외를 두지 않는다.207 그리하여 ‘하늘에 죄를 지으면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208고 하면서 천자(天子)라 하더라도 천의 (天意)의 순응 여부에 따라 상벌의 대상이 된다’209고 하였다. 이것은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이 당시의 역사 조건 하에서 군권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음 을 의미한다.
이렇게 묵자는 상벌(賞罰)의 시행의 근거에 대해서는 ‘위로는 천을 높이고, 가운데로는 귀신을 섬겼으며, 아래로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 곧 존천(尊天)• 사귀(事鬼)•애인(愛人)이 상의 조건이며 벌은 그 반대다. 여기서 존천(尊天) 과 사귀(事鬼) 그리고 애인(愛人) 이 삼자가 통일된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으 로는 ‘위로 하늘을 이롭게 하며, 다음으로 귀신을 이롭게 하고, 아래로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하여 이해(利害)의 측면에서 통일되며, 이에 해당되면 성왕(聖 王)이라고 한다.210
이러한 점들이 묵가 천과 귀신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본다. 요약해 보면,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이 첫째 당시의 통치자들에게 일정한 비판과 견제의 의 미를 지니며, 둘째로는 이해의 측면에서 천과 귀신 그리고 인간 이 삼자가 통 일된다는 점에서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과는 구별된다. 물론 묵가가 신비적인 관념을 완전히 탈피했다고 평가할 수 없지만, 단순히 전통적인 관념처럼 신비 적인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실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은 그들의 주요 이 념을 반영한 하나의 법이었다.
내가 천지(天志)를 갖고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수레장이나 장인의 규(規)구(矩)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211 오늘날 크게는 천하(天下)를 다스리고, 다음으로 대국(大國)을 다스리면서 표준으로 삼을 만한 법이 없다면, 그것은 백공(百工)이 분별하는 것만 같지 못 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합법을 삼아야 좋을까? 가령 모두 그 부모를 본받는 것은 어떨까? 천하의 부모는 많으나 인자(仁者)는 적으니, 만일 모두 그 부모 를 본받는다면 이것은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이다.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을 법으로 삼을 수 없다. 가령 그 학자(學者)를 본받는다면 어떨까? 천하의 학자 는 많으나 인자(仁者)는 적으니 만일 그 학문을 본받는다면 이것은 불인(不 仁)을 본받는 것이다.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을 법으로 삼을 수 없다. 가령 모두 그 군주(君主)를 본받는 것은 어떨까? 천하의 군주는 많으나 인자(仁者) 는 적으니 만일 그 군주를 본받는다면 이것은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이다. 불 인(不仁)을 본받는 것을 법으로 삼을 수는 없다. 따라서 부모•학자•군주 세 가지는 치법(治法)으로 삼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치법(治法)을 삼아야 좋을까? 따라서 말하길, ‘하늘을 본받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212
이처럼 묵자는 본래 신비적인 관념이었던 천과 귀신 관념을 재해석하고 나 름대로 자신의 이념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법칙이나 표준으로 설정한 것은 그 의 사상사적인 면에서 한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