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령포
영월 청령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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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명승 제50호 |
지정일 | 2008년 12월 26일 |
지정 명칭 | 청령포 |
한자 명칭 | 寧越淸泠浦 |
영문 명칭 | Cheongnyeongpo |
분류 | |
건립·제작 | |
주소 |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등 |
위도 | 37.176117 |
경도 | 128.445601 |
웹사이트 |
위치
가상현실
개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의 남한강 상류에 있는 명승지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남쪽은 험한 바위가 겹겹으로 쌓인 낭떠러지로 막혀 있고, 동ㆍ북ㆍ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굽이쳐 흐르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지형이다. 지금도 나룻배를 이용해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이곳은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생몰:1441~1457,재위:1453~1455)이 숙부인 수양대군(세조, 재위:1455~1468) 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上王)으로 있었다. 그 다음 해인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 사육신들이 상왕복위(復位)을 주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면서 상왕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었다. 이후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1]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觀風軒)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명칭 유래
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碑座, 비신<碑身>을 세우는 대좌<臺座>) 위에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에 새겼다.
비(碑)의 뒷면에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지명을 청령포라고 썼다. 이로 보아 청령포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 생각된다.
현황
유배 당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금표비(禁標碑)와 그 뒤 영조 때 세운 단묘유적비(端廟遺蹟碑)가 있다. 2000년 4월 단종문화제 때 세운 단종어가가 있으며,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었다고 하는 돌탑이 있다.
청령포 수림지[2]로 불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팔경(매우 빼어난 8개의 경치)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