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장릉
영월 장릉(寧越莊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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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사적 제196호 |
지정일 | |
지정 명칭 | |
한자 명칭 | |
영문 명칭 | |
분류 | |
건립·제작 | |
주소 |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
위도 | 37.197470 |
경도 | 128.452801 |
웹사이트 |
위치
가상현실
기본정보
-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96호
- 소재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생존:1441-1457, 재위: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世祖, 재위: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2]
단종과 세종
장릉에 얽힌 이야기
당시 영월 호장이었던 엄홍도가 한밤중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산속으로 도망 가다가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묻었다. 떳떳이 시신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좋은 터를 고를 겨를이 없었다. 쫓기는 와중에 마침 노루가 앉았던 터에만 눈이 쌓이지 않았기에 엉겁결에 땅을 파고 시신을 묻었을 뿐인데, 풍수지리가들의 말에 의하면 단종의 묘가 자리 잡은 곳은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3]
특징
1. 매년 4월 한식날에 단종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1967년부터는 단종문화제로 이름이 바뀌어서 영월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가 되었다. 문화제로서 제향이 거행되는 조선시대 왕릉은 장릉뿐이다.
2. 원래 왕릉은 한양에서 100리를 벗어나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관례이나, 여주의 세종대왕 무덤인 영릉을 빼고 가장 멀리 조성된 왕릉이다.
3. 낮은 구릉에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왕릉과는 달리 산줄기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4. 규모는 크지 않으나 조선의 왕릉 중에서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온 곳으로 손꼽힌다.
구조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다.[4] 추봉된 정릉(貞陵: 태조의 계비 神德王后康氏의 능) 등의 예에 따라 난간석과 무인석은 설치하지 않았다.[5]
특이한 것은 다른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배식단사(配食壇祠)라는 건물이 홍살문 바로 앞 오른쪽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건물은 정조15년(1791년)에 건립하였으며, 여기에는 단종께 충절을 다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자군노(宦者軍奴)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포함 총 264인의 위패(位牌)를 모셔 놓은 곳이다.[6]
- 홍살문
- 수복청
- 정자각
- 재실
- 배식단사(配食壇祠) -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심
- 충신각 - 단종으로 인하여 순절하거나 희생된 충신·종친·시종 들의 위패를 공동으로 모심.
- 단종 비각 - 단종의 생애를 기록한 비.
- 엄흥도 정려비
- 낙촌기적비 -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정려비
- 영천(靈泉) - 제사 지낼 때 쓰는 제정(祭井)
- 곡장 3면, 상석 1, 장명등 1,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석마 1쌍, 석양 1쌍, 석호 1쌍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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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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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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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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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와 어도[7]
- Yeongcheon.jpg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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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비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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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전에 모셔진 단종 영정[9]
- Yeongmojeon.jpg
영모전[10]
출처
- ↑ 네이버캐스트, 新택리지
- ↑ 두산백과, '장릉'
-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3 - 동해, 설악, 돌베개, 2011.
- ↑ 두산백과, '장릉'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장릉'
-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풍수지리, 2004
- ↑ 돌로 쌓아진 왼쪽의 높은 길이 신도이고, 오른쪽의 낮은 길이 왕도이다. 신도는 신(神)만이 다니는 길이며, 왕도는 초헌관, 일반제관이 다니는 길로 일반인들은 왕도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 ↑ 단종이 복위된 1698(숙종 24)에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고 비를 세웠으며, 비석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라 쓰여있다.
- ↑ 운보 김기창作. 세종 때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秋益漢)이머루를 진상하는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1457년(세조 3) 단종(端宗)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자 단종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던 추익한은 단종을 찾아가 시를 읊어 위로하고, 산에서 직접 딴 산머루와 다래를 진상하였다.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이를 애통해하다가 절명하였다.
- ↑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강원유형문화재 제56호.1517년(중종 12) 단종을 배향하기 위하여 군민의 성금으로 건립된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