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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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3고소미 (토론) 사용자의 2014년 6월 8일 (일) 20:40 판
Meta Data
내용
- 이칭별칭 : 자 응길(應吉), 호 촌은(村隱)
- 출생-사망 : 1545년(인종 1) ~ 1636년(인조 14)
- 성격 : 문인
- 본관 : 강화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으로 선조(宣祖)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또 중국 사신들의 잦은 왕래로 호조(戶曹)의 비용을 모두 쓰게 되자 그가 계책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하사받았다.
광해군 때에 이이첨(李爾瞻)이 모후(母后)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고 그에게 상소(上疏)를 올리라 협박했으나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다.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른 뒤에 그 절의를 높이 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를 올려주었고, 80세 때 가의대부(嘉義大夫)를 제수 받았다.
그는 당시 같은 천인신분으로 시에 능하였던 백대붕(白大鵬)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했다. 이 모임에는 박계강(朴繼姜)·정치(鄭致)·최기남(崔奇男) 등 중인신분을 가진 시인들이 참여했다.
천민 출신이나 한시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했으며 자기 집 뒤의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유명 문인들과 시로써 화답했다. 그때에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아 『침류대시첩(枕流臺詩帖)』을 만들었다.
문집으로 『촌은집(村隱集)』3권이 전하며 그 밖의 저서로 『상례초(喪禮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