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로 본 90년대 문화, 스토리텔링
2016-2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콘텐츠전공 <디지털문화지도의 이해> 과목에서
B팀(김경현, 박정현, 오효영, 유현나, 조은선)이 "응답하라 1994로 본 90년대 문화"라는 주제로 수행한 과제물입니다.
콘텐츠 소개
오프닝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한 땐 오빠들에 목숨 걸었던 피 끓는 청춘이었으며,
인류역사상 유일하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모두를 경험한 축복 받은 세대였다.
70년대 음악에 80년대 영화에 촌스럽다는 비웃음을 던졌던 나를 반성한다.
그 음악들이 영화들이 그저 음악과 영화가 아닌 당신들의 청춘이었고 시절이었음을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2013년 12월 28일 이제 나흘 뒤 우린 마흔이 된다.
대한민국 모든 마흔살 청춘들에게 그리고 90년대를 지나 쉽지 않은시절들을 버텨 오늘까지 잘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바친다.
우리 참 멋진 시절을 살아냈음을 빛나는 청춘에 반짝였음을 미련한 사랑에 뜨거웠음을 기억하느냐고
그렇게 우리 왕년에 잘 나갔었노라고 그러니 어쩜 힘겨울지도 모를 또 다른 시절을 촌스럽도록 뜨겁게 살아내 보자고 말이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기획의도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대표적으로 대두되는 '복고' 콘텐츠 중 하나이다.
다양한 변동이 있었던 1990년대가 배경인 이 드라마는 그 당시, 그들이 소비하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세대들에게는 향수와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불러오게 하고, 추억을 그리게 한다.
또한, 그 세대뿐만 아니라, 현재의 20대들에게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해주고, 간접적인 공감을 불러온다.
이것은 <응답하라 1994>가 현대에 들어서 재해석된, 과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응답하라 1994>에 드러난 그 시절의 문화를 드라마와 연결지어, 시각화하여, 보여주려고 한다.
이것은 '멋진 시절 빛나는 청춘'이었던 당신과, '현재의 빛나는 청춘'인 당신의 아들•딸에게 "90년대"라는 타임머신이 되어줄 것이다!
응답하라 1994
소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CJ E&M의 소속인 tvN에서 방영되었던 작품이다.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던, X세대의 이야기를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촬영장소
사진 | 장소명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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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속 연세대학교 | 등장인물들의 출신대학교로, 이곳에서 무선호출기의 음성메세지 확인을 위해, 공중전화에서 줄을 서는 씬들이 있다. 연세대학교를 선정한 것은 그 당시 X세대들의 주 무대가 신촌이었기 때문이다. | |
응답하라 1994 속 하이델베르크 하우스 | 해태의 동아리 선배로 나오는 신촌 잔다르크 김인서와 썸이 발생하는 장소의 배경이다. 응답하라 1994뿐만 아니라 tvN드라마인 두번째 스무살과 호구의 사랑에도 촬영 장소로 쓰였다. | |
응답하라 1994 속 카페 코인 | 등장인물들이 미팅을 하던 장소로 쓰였다. 이 곳은 CJ E&M[1]이 배급한 두근두근 내 인생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 |
응답하라 1994 속 원삼탕 | 등장인물들이 목욕을 하는 공간으로 나왔다. 실제 드라마에서는 원잠탕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졌다. |
한국의 1990년대 문화
농구
1990년대는 한국 농구의 전성기였다. 그 당시 MBC 배 농구대잔치로 인해서, 농구스타들은 현재의 아이돌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연세대학교 농구부인 서장훈, 이상민, 우지원과 고려대학교 농구부인 현주엽, 전희철 등이 인기였다. 그 이유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대학농구 라이벌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서장훈과 현주엽은 같은 휘문고등학교의 동창이었다.
이러한 농구의 성행으로 인해, 농구를 주제로 한 콘텐츠 역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만화 잡지에 연재되었던 슬램덩크와 드라마 마지막승부가 바로 이러한 작품이었다. 이중에서도 MBC[2]에서 방영되었던 마지막승부는 신인이었던 심은하를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심은하는 MBC[3]의 드라마 M의 주인공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MC를 맡게 되기도 했었다.
또한, 농구의 성행은 패션의 변화도 일으켜왔다. 단지 스포츠 의복 중 하나일 뿐이었던 농구복과 운동화인 농구화 에어조던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당시 농구에 대한 큰 관심으로 인해 이러한 패션들은 유행을 일으켰다.
가요
이 당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로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1990년대의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와 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 음악 등 색다른 시도를 많이 했던 대중음악인으로 알려져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에서 데뷔해서, 가요톱텐[4]등의 많은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쓸었었다. 그러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데, 그 이유는 창작의 고통이었다. 은퇴 이후, 서태지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NELL[5]과 같은 뮤지션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또한, 양현석은 YG엔터테인먼트[6]를 설립하여, 서태지와 같이 뮤지션을 키우는 데에 힘썼다. 재미있는 점은 1990년대 같이 활동했던, 연세대학교[7] 출신의 박진영[8]이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라이벌구도를 띤다는 점이다. 서태지는 지금까지도 문화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그 만큼 서태지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을 볼 수 있다.
MBC의 대학가요제[9]로 인해, 대학가요가 성행하였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등의 많은 대학교들이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다. 그 중 전람회의 소속 김동률과 서동욱은 연세대학교이면서, 농구스타 서장훈과 현주엽과 같은 휘문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김동률은 신해철의 프로그램에 나와서, 서태지의 발라드곡인 영원을 칭찬하기도 했다.[10] 또한, 무한궤도로 참가해서 인기를 끌었던 신해철은 서태지의 6촌 친척관계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이때 팬덤문화가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콘서트들이 성행하였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11]에서 콘서트[12]를 열기도 했다. 또한,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로 유명세를 탔던 이문세[13], 파격적인 솔로 댄스가수였던 박진영 역시 이 곳에서 공연을 열었다.
대중가요스타들을 담았던 다양한 잡지 역시 가요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그 중 1993년 잡지 하이틴 9월호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 다루기도 하였다.
기술
X세대들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시대에는 기술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무선호출기의 음성메세지를 듣기 위해서, 공중전화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공중전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시티폰이 나오기도 하였다.[14] 또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CD 플레이어 등으로 대중문화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PC통신을 처음으로 이용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1990년대의 기술과 관련한 소품에 대해 궁금하다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으므로 가보기를 추천한다.[15]
각주
- ↑ 영화 오늘의 연애도 CJ E&M이 배급하였다.
- ↑ MBC는 현재, 무한도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도전 가요제 등의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 ↑ 홍석천은 MBC 공채 출신이다.
- ↑ IMF 외환위기로 인해 폐지된 프로그램이다.
- ↑ NELL은 이후, 울림엔터테인먼트로 소속을 옮긴다.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초창기에는 에픽하이도 소속되어있었다.
- ↑ 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에픽하이가 이 곳으로 소속사를 옮겼다. 특히, 부부사이인 타블로(해피투게더 시즌3 야간매점의 62대에 올라가있다.)와 강혜정이 같은 소속사에 소속되어있다.
- ↑ 인디밴드 10cm의 권정열과 가을방학도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 ↑ 해피투게더 시즌3 야간매점의 3대로 올라가 있다.
- ↑ 브로콜리 너마저와 윤덕원이 참가하였으나, 예선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 ↑ 이에 비해, 현대로 와서는 서태지의 컴백이 노브레인(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주로 공연했다. 드럭은 1995년부터 인디를 중심으로 라이브클럽문화를 성행하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에 의해 비판받기도 하였다. 노브레인은 서태지 안티공연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며 직접적 비판을 가했다.
- ↑ 1990년대, 농구대잔치도 이 곳에서 열렸었다.
- ↑ 2000년대에는 인디밴드 10cm가 공연을 열기도 했다.
- ↑ 2005년경, 이문세는 서태지를 비난하는 말을 프로그램에서 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 ↑ 시티폰의 사업자였던 나래이동통신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결국 없어지고 만다.
- ↑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서울 1000주년 타임캡슐을 재현하여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타임캡슐 안에는 그 당시의 다양한 소품들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