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차 문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으나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차가 정사상(正史上)에 나타난 최초의 문헌인 『삼국사기 三國史記』에 따르면 7세기 초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하여 흥덕왕 때인 828년 사신대렴(大斂)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王命)으로 지리산에 심었는데 그때부터 차 마시는 풍속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 제2권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이 즉위한 해인 661년에 가락국의 김수로왕은 자신의 외가 쪽 시조이므로 가락국 종묘의 제사를 합해서 계속 지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에 수로왕의 17대손인 갱세급간(賡世級干)이 나라의 뜻을 받들어 매년 술을 빚고 떡, 밥, 차, 과일 등의 음식을 갖추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를 관장한 갱세급간이 선왕들의 제사에까지 차를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아 가락국에서도 차의 비중이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와 백제도 일찍부터 차를 마셨는데 백제는 고대국가 중에서도 가장 먼저 문화가 발달하였던 나라로 백제인의 차 생활이 일본의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킨메이천황[欽明天皇 : 539∼571 재위] 13에 백제의 성왕(聖王 : 523∼554 재위)이 담혜화상(曇惠和尙) 등 열여섯 명의 승려에게 불구(佛具)와 차(茶), 향(香) 등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을 보면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行基 : 668∼749)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차나무를 심었다고 되어 있다.
고구려 역시 대륙과 직접 맞닿는 지리적 이점으로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였다. 고구려의 차 생활은 고구려의 옛무덤에서 발굴된 전차(錢茶)를 통해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데 이 전차는 가루내어 마시는 고급 단차(團茶)로 차를 무덤에까지 넣은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이 생전에 차를 몹시 좋아하였거나 아니면 신령과 부처님께 바친 것으로 고구려에서도 차가 널리 애용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락국과 고구려, 백제인의 차 생활은 그 내용이 수록된 문헌과 무덤 속에서 나온 유물 외에 다른 사료(史料)가 없어 그들이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그 기록과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고 신라뿐만 아니라 가락국, 고구려, 백제인의 생활 속에도 차가 깊숙이 침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백제의 경우 『일본서기』의 기록대로라면 신라보다 훨씬 일찍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부지방이 차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기후조건이여서 중원을 통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차를 마셨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차가 중원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이고 백제에서 다시 일본에 전해진 것은 확실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차의 역사 (차생활문화대전, 2012. 7. 10., 홍익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