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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메타버스로 만나는 소동파와 덕후들
소동파는 누구인가?
소식(蘇軾: 1037∼1101)은 이름보다 ‘동파(東坡)’라는 별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동파’라는 호는 소식이 45세 때, 오대시안(烏臺詩案) 사건으로 인하여 황주(黃州)에 유배되었던 4년 동안 거의 자갈밭이나 다름없었던 ‘동쪽 언덕’을 손수 개간하여 지내면서 스스로 붙였던 자호(自號)이다. 동파라는 별호는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특유의 낙천적 성격과 유머로 마침내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던 한 문인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대 사람들은 동파라는 별호로서 그를 지칭하는 것에 더욱 친근함을 느껴왔다. 소식(蘇軾)은 시(詩)·사(詞)·부(賦)는 물론이고 제발(題跋) 같은 잡문과 서(書)·악(樂)에 이르는 예술 영역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며 그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이 때문인지 소식은 북송 시대 문인들은 물론 해외 문인들로부터 꾸준한 애호를 받아왔다.
중국의 소동파 덕후, 옹방강
소식에 대한 관심과 추숭은 18세기 ‘모소(慕蘇)’ 열풍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모소열(慕蘇熱)’의 중심에 청나라 문인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이 자리하고 있다. 옹방강은 일종의 동파벽(東坡癖)이 있던 인물이다. 후지츠카 츠카시의 연구(1936)에 따르면 옹방강의 동파벽은 그가 우연히 소식의 〈천제오운첩(天際烏雲帖)〉을 손에 넣게 된 이후라고 하며, 이후 옹방강은 소식의 시집과 초상화, 서화작품 수집에 열성을 보이는 한편, 해마다 소식의 생일이 되면 소식의 초상화를 내걸고 몇몇 문인들과 함께 모여 절을 하고 시를 짓는 등 동파제(東坡祭)를 겸한 시회(詩會)를 가졌다.
한국의 소동파 덕후, 김정희
옹방강이 해마다 소동파에 대한 ‘모소(慕蘇)’의 열기를 더해가던 중 조선(朝鮮)에서 연행사(燕行使)로 사행을 가게 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조우하면서 옹방강의 동파벽은 또한 김정희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이후 김정희에 의해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 모소 열풍이 불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옹방강과 김정희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후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 지속된 ‘배파회(拜坡會)’의 현상은 성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소동파 덕후, 나가오 우잔
19세기 일본에서의 ‘모소(慕蘇)’ 열풍은 각각 메이지(明治: 1868∼1912) 시대와 다이쇼(大正: 1912∼1926) 시대에 나가오 우잔(長尾雨山: 1864∼1942)과 도미오카 뎃사이(富岡鐵齋: 1836∼1924) 등에 의해 주도된 적벽회(赤壁會)와 수소회(壽蘇會) 모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소동파와 관련된 글씨(書), 그림(畵), 문구(文具), 골동품(古董) 등을 열성적으로 수집하며 동파의 생일인 12월 19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수소회(壽蘇會)’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1922년에 처음으로 ‘적벽회(赤壁會)’를 개최하였는데 ‘적벽회’는 동파의 적벽유(赤壁遊)를 흉내 낸 성대한 모임이었다. 나가오 우잔은 적벽회를 열 때마다 〈적벽부(赤壁賦)〉와 관련된 그림이나 동파와 관련된 물건들을 심혈을 기울여 진열해놓고, 일본 각 지역에서 오는 수백 명의 인사들을 정성껏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