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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yi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4월 21일 (목) 23: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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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조선왕실 개창의 산물: 백자
조선시대 관요와 관요생산 백자 이야기

Synopsis

Storyline

Episode 1: 조선왕실과 관청의 전용자기 생산담당의 가마 관요의 등장

조선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던 자기를 생산하였던 가마는 경기도 광주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지역에 국가 직영 사기소인 관요가 설립되는 시점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통하여 1432년 이전까지는 전국 군현 별로 운영되었던 184개의 자기소에서 자기를 공납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토산품으로 공납되었던 백자는 1467년경 궁중 주방인 사옹원의 분원 가마가 광주에 설치되면서 관영수공업체제를 갖추고 직접 생산, 조달하게 되었다.</br> 관요 중의 하나였던 경기도 광주시 우산리 가마터에서는 사옹원으로 추정되는 ‘司’자가 인각기법으로 새겨진 백자 접시 편이 출토되었다. 본래 사옹원은 고려시대의 사옹司饔이다. 사옹의 ‘옹’은 <주례周禮>의 주에서 割烹煎和, 즉 ‘고기를 베어 삶고 간을 맞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사옹은 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을 담당하는 동시에 공납용 자기 제작을 감독하고 수취해왔다. 고려시대의 사옹은 조선시대에는 사옹방으로 吏曹에 편제되었고, 1467년에 첨설직에서 녹관을 둔 정3품의 정식 행정 관사인 사옹원으로 개칭되었다. 관요는 사옹원의 분원으로 설립되어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자기소로 운영되었다. 공납물이었던 자기는 광주 자기소에서 직접 조달받게 된 것이다.
사옹원 소속의 번조관과 경공장은 관요 운영과 관련한 구성원이었다. 번조관은 경공장을 관리하는 역할이었고, 경공장은 <경국대전> 공전 사옹원 조에 명시된 사기장 380명이었다.

Episode 2: 시기별 경기도 광주지역 관요의 특징

분원(관요)에서는 전국에서 차출되어 부역을 하던 1140명의 사기장沙器匠이 380명씩 3개조로 나뉘어 돌아가며 일했고, 사옹원에서 파견된 감관(낭청)이 봄, 가을로 제작된 그릇을 배에 실어 한양으로 수송했다. 약 10년을 주기로 수목(땔감)이 무성한 곳을 찾아 옮겨 다녔던 분원가마는 1752년(영조 28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물자를 수송하기에 유리한 분원리에 정착하여 이후 130여년간 요업을 지속하였다. 현재까지 광주시 전역에는 340여개소에 이르는 분원가마터 유적이 고스라니 남아있다. 그 가운데 약 22개소의 분원 가마터가 여러 기관에 의해 발굴조사보고·연구되어 조선전기에서 후기까지 시대에 따라 발전된 제작기술과 도자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관요 가마터에서는 관사를 뜻하는 글자 외에도 천⦁지⦁현⦁황, 간지, 좌우, 숫자 등의 글자가 새겨진 자기가 확인된다. 각각 다른 시기에 운영되었던 가마터에서 확인되는 명문들은 해당 가마터들의 선후 관계를 파악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천⦁지⦁현⦁황’명 명문은 경기도 광주시 우산리, 경기도 광주시 도마리, 경기도 광주시 무갑리 가마터에서 확인된다. 해당 명문은 조선 전기에 사용되었고, 중기에는 간지, 간지, 좌우, 숫자 등의 글자 조합들이 확인된다.

Episode 3: 관요에서 제작된 왕실과 관청의 자기 백자

Episode 4: 조선시대 관요의 모습, 상번천리 요지 보호각

Episode 5:

Storytelling Network


Metaverse 구현 예시

Virtual Class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