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
DH 교육용 위키
기본정보
-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속한 법정동으로, 서쪽은 산 능선을 경계로 성북구 정릉동과 접해 있고, 북쪽은 수유동, 동쪽은 번동, 남쪽은 도봉로를 경계로 길음동·하월곡동과 접해있다.
- 면적: 0.73 ㎢
- 위치
- 인구
- 특징
상권(초록:도시 재생 및 신규 개발 상권, 노랑:신규 창업 우세지역)
유년부양비:9.2 노년부양비:24.9 노령화지수: 271.8 (2919) [3]
행정동
주요 시설 현황
주택 구성 현황
지역명 유래
- 되너미 고개(돈암현)를 미아리 고개라고 부르는 까닭에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미아동에 있는 불당골에 미아사가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이 절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정릉동 지역을 사을한리라고 했으며 사을한리의 약칭인 사아리가 미아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행정구역상의 변화
- 1865년(고종2)에 편찬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 미아리계'라는 공식 기록이 처음 등장
- 일제강점기 때 경성부 승신면 미아리
- 1914. 경기도 고양군 미아리
- 1949. 성북구 신설되면서 서울에 편입
- 1950. 미아리에서 미아동으로 변경
- 1973. 도봉구 신설되면서 도봉구에 소속
- 1995. 강북구 신설되면서 강북구에 소속
지역 변화
- 1950. 미아리 전투 발발: 서울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전투로, 이 전투에서 방어선이 뚫리면서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되었다
- 현재 미아 제 1,2,6,7동 일대인 삼양동 지역은 1960년대를 전후해 서울의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당한 후암동, 신설동 주민들 및 남창동, 양동에서 화재로 집을 잃은 화재민, 장마 때 한강의 범람으로 집을 잃은 이촌동 수재민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곳이다.
- 북한산 고지대에 있어 저소득층이 주로 살았으나 현재 재개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음
미아리
- 미아리 고개(돈암동)
돈암동에서 길음동 넘어가는 미아로에 위치한 고개로 공동묘지가 묻혀 있어 공동묘지 구역이라고도 불리며 한국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북한으로 납치되었음.
이를 바탕으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노래가 만들어짐
현재는 미아리 고개에 예술극장이 설립되어 예술 문화 증진에 힘을 쓰고 있음
- 미아리 텍사스(길음동)
월곡동1구역에 위치했던 점성촌으로 현재 재개발이 확정되어 사라짐.
- 계속되는 재개발 지역
지역 사업
- 주택 재개발 및 쾌적한 환경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