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問天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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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問天答 1375년 정도전이 나주로 귀향갔을때 쓴 글이다. 글 구성은 크게 心門편과 天答편으로 나눠서, 정도전의 마음이 하늘에게 물어보고 하늘이 답하는 내용이다.
心文
- 此篇, 述心問天之辭. 人心之理, 卽上帝之所命, 而其義理之公, 或爲物欲所勝, 而其善惡之報, 亦有顚倒, 善或得禍, 而惡乃得福. 福善禍淫之理, 有所不明, 故世之人, 不知從善而去惡, 唯務趨於功利而已. 此人之所以不能無惑於天者也, 故托於心之主宰, 以問上帝而質之也.
- 이 편은, 마음이 하늘에 질문하는 말을 서술한 것이다. 사람 마음의 이치[理]는 상제가 명한 것이나 그 의리의 공변됨이 간혹 물욕에 굴복되어 선악에 대한 보응에 또한 어긋남이 있게 되어서 선한 자가 어떤 때엔 재앙을 얻기도 하고, 악한 자는 도리어 복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선[을 행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을 행한 자]에게 재앙을 주는 이치가 분명치 못한 바가 있기에, 세상 사람들은 선을 좇고 악을 없앨 줄을 모른 채 오직 공리(功利)만을 힘써 취할 뿐이다. 이에 사람은 하늘에게 의혹이 없을 수가 없어서 마음의 주재함에 의탁하여 상제에게 따져 묻게 된 것이다.[1]
- 乙卯季冬, 幾望之夕, 天淨月明, 群動就息.
- 을묘년(우왕 원년, 1375) 늦겨울 14일 저녁에 하늘은 맑고 달은 밝으니 뭇 움직임이 그친다.
- 季冬, 涸陰沍寒之極, 而春陽欲生之時. 幾望, 月光漸滿, 而其明復圓之日, 以譬人欲昏蔽之中, 而天理之復萌也. 天淨月明, 群動就息, 以譬人欲淨盡, 天理流行, 方寸之間, 瑩徹光明, 而外物不能以動其中.
- ‘늦겨울’은 혹독한 추위가 극심하나, 봄볕이 생하려는 때이다. ‘14일’은 달빛이 점점 차올라서 그 다음 날 다시 둥글게 되는 날이니, 인욕이 어둡게 가린 가운데 천리가 다시 싹트는 것을 비유하였다. ‘하늘은 맑고 달은 밝으니 뭇 움직임이 그친다’는 것은 인욕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마음속이 투명하고 밝으므로 외물이 그 마음을 동요할 수 없음을 비유하였다. [2]
- 若有一物, 朝于上淸, 立于玉帝之庭, 稱臣而告曰, 臣受帝命, 爲人之靈.
- 한 물건이 상청(上淸) ‘상청(上淸)’은 도교의 용어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도교 최고의 이상향인 삼청(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 중 하나이다. ‘삼청(三淸)’에 조회하고자 옥황상제의 뜰에 서서 [자신을] 신(臣)이라고 칭하며 고하기를, “신은 상제의 명을 받아서 사람에게 신령스러운 [물건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一物, 指心而言, 上淸, 上帝之所居也. 玉帝, 卽上帝, 貴而重之之稱也. 稱臣者, 心之自稱也. 臣受帝命, 爲人之靈者, 心自言其受上帝所命之理, 以爲人之主宰, 而最靈於萬物也. 此章, 設言吾心主宰之靈, 朝見上帝之庭, 稱臣而問之也. 然其曰朝者, 豈別有一物爲帝, 而又有一物朝之者哉? 方寸之間, 私欲淨盡, 則吾心之理, 卽在天之理, 在天之理, 卽吾心之理, 脗合而無間者也, 其曰朝者, 設言以明之也.
- ‘한 물건’이란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상청’이란 상제가 거처하는 곳이다. ‘옥제’란 곧 상제로서, 귀중하게 받드는 칭호이다. ‘신(臣)이라고 칭하’는 것은 마음이 스스로를 일컫는 것이다. ‘신은 상제의 명을 받아 사람에게 신령스러운 [물건이] 되었습니다’라는 것은 마음이 상제가 명한 리(理)를 받아 사람의 주재가 되어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함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이 장은 내 마음의 주재하는 신령함이 상제의 뜰에 조회하여 [자신을] 신(臣)이라 칭하면서 질문하는 것을 가설하였다. 그러나 ‘조회한다[朝]’고 말했다고 해서 어찌 별도의 한 물건이 있어 상제가 되고, 또 다른 한 물건이 있어 [상제에게] 조회를 한 것이겠는가? 마음속에 사욕이 깨끗하게 없어지면 내 마음의 이치가 곧 하늘에 있는 이치이고, 하늘에 있는 이치가 곧 내 마음의 이치로서 [이 두 가지는] 꼭 같아서 차이가 없으니 ‘조회한다’고 말한 것은 가설하여 [마음의 신령함을] 밝힌 것이다.[3]
- 人有耳目, 欲色欲聲, 動靜語默, 手執足行, 凡所以爲臣之病者, 日與臣爭.
- 사람은 이목(耳目)을 갖기에 빛을 보고자 하고 소리를 듣고자 하며, 움직이기도 고요하기도 하며 말하기도 침묵하기도 하고, 손으로 잡거나 발로 걷기도 하니, [이] 모든 것은 신(臣)의 병통이 되는 것들로서 날마다 신과 싸우는 것들입니다.
- 此章, 言物欲害吾心之天理也. 蓋凡有聲色貌相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日與人之身相接. 而人之有目, 莫不欲色, 有耳莫不欲聲, 至於四肢百骸, 莫不欲安佚. 故天理雖根於吾心固有之天, 而其端甚微, 人欲雖生於物我相形之後, 而其發難制, 是其日用云爲, 順理爲難而從欲爲易. 書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此之謂也. 且人之此身, 不能一日離物而獨立, 小有不謹則凡外物之害此心者, 投間抵隙, 攻之甚衆矣, 此天理之所以病也
- 이 장에선 물욕이 내 마음의 천리를 해치는 것을 말하였다. 대개 소리, 빛, 모양은 천지 사이를 가득채우니 모두 ‘외물’로서, 날마다 사람의 몸과 서로 맞닿는다. 사람은 눈이 있어, 빛을 보고자 하지 않음이 없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음이 없으며 사지(四肢)와 백해(百骸)에 이르러서도 안일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천리가 비록 내 마음의 고유한 천[성]에 뿌리내리고 있으나 그 실마리는 매우 은미하고, 인욕은 비록 외물과 내가 서로 접촉한 후에야 생기는 것이지만 [인욕의] 발함은 제어하기가 어려우니, 이 때문에 일상에서 말하고 행위함에 있어 천리를 따르기는 어려우나 인욕을 좇기는 쉬운 것이다. [그래서] 서경에서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다. 또 사람의 이 몸은 하루라도 외물을 떠나 홀로 살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외물이 이 마음을 해쳐 [마음의] 틈새를 타고서 매우 심하게 [마음을] 공격하므로 이 때문에 천리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4]
天答
- 此篇, 述天答心之辭. 天能以理賦予於人, 而不能使人必於爲善, 人之所爲, 多失其道, 以傷天地之和. 故災祥有不得其理之正者, 是豈天之常也哉. 天卽理也, 人動於氣者也, 理本無爲而氣用事. 無爲者靜, 故其道遲而常, 用事者動, 故其應速而變, 災祥之不正, 皆氣之使然也. 是其氣數之變, 雖能勝其理之常者, 然此特天之未定之時爾. 氣有消長, 而理則不變. 及其久而天定, 則理必得其常, 而氣亦隨之以正, 福善禍淫之理, 豈或泯哉.
- 이 篇은 하늘이 ‘마음’에게 답한 말을 기술한 것이다. 하늘은 理를 사람에게 부여 할 수 있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善을 행동하게 할 수는 없으니 사람이 하는 일은 대부분 그 正道를 잃고 天地의 조화로움을 훼손시킨다. 그러므로 재앙과 복이 그 이치의 바름을 얻지 못할 경우[者]가 있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일정한 법칙[常理]이겠는가. 하늘은 理이고 사람은 氣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理는 본래 無爲하고 氣는 用事한다. 無爲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기[靜] 때문에 그 道는 더디지만 일정하고[常] 用事라는 것은 움직이기[動] 때문에 그 대응이 빠르지만 변하니 재앙과 복의 바르지 못함은 모두 氣가 그러하도록 시킨 것이다. 이것은 그 기운[氣數]의 변화가 비록 능히 그 理의 일정함을 이기는 경우[者]가 있어도 이것은 단지[特] 하늘이 아직 定하지 못할 때일 뿐이다. 氣는 쇠락하고 왕성함이 있지만 理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오래 됨에 이르러서 하늘이 定해지면 理가 반드시 그 일정함을 얻게 되고 氣도 (理를) 따라서 바르게 되니 福善禍淫의 이치가 어찌 혹여 사라지겠는가.
- 帝曰. “噫嘻, 予命汝聽. 予賦汝德, 在物最靈, 與吾並立, 得三才名.”
- 上帝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나의 命을 너는 들을지어다. 내가 너에게 德을 부여하여 萬物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이 되었으니 나와 함께 나란히 서서 三才의 이름을 얻었도다.”
- 帝, 上帝也. 噫嘻, 歎息也. 予, 上帝之自予也. 汝, 指心而言. 德卽仁義禮智之性, 天之所令而人之所得者也. 三才, 天地人也. ○此章, 設爲上帝答心之辭. 歎息而言. “予有所命, 惟汝人心其聽之哉. 予旣賦汝以健順五常之理, 而汝得之以爲德, 方寸之間, 虛靈不昧, 具衆理應萬事, 而在萬物最爲靈矣. 故能與我與地並立而得稱三才之名也.”
- 帝는 上帝이다. 噫嘻는 탄식하는 것이다. 予는 上帝가 자신을 予라고 한 것이다. 汝는 마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德은 仁義禮智의 性이니 하늘이 명령한 것이며 사람이 얻은 것이다. 三才는 天· 地· 人이다. 이 章은 상제가 마음에게 대답한 말을 가정[設想]한 것이다. 탄식하여 말하였다. ‘내가 명령하였으니 오직 너는 人心의 그 (명령을) 들을지어다. 내가 이미 너에게 健順과 五常의 理를 부여하였으니 네가 [이것들을] 얻어 德으로 삼고 마음이[方寸之間] 虛靈하여 어둡지 않으니 모든 이치를 갖추어 만 가지 일에 응하여서 萬物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능히 나와 땅과 나란히 서서 三才라고 칭하는 이름을 얻었다.’
- 又當日用之間, 洋洋焉開道引迪, 使爾不昧其所適, 予所以德 [5] 汝者非一, 汝不是思, 或自棄絶.
- 또한 일상생활에서 드넓게 개도하고 이끌어서[引迪] 너로 하여금 그 가는 곳을 어둡지 않게 하였으니 내가 너를 德으로 교화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닌데, 너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간혹 스스로 저버리는 도다.
- 洋洋, 流動充滿之意. 爾, 亦指心而言. ○此承上言. ‘人倫日用之間, 莫非天命之流行發見, 汝在父子則當親, 在君臣則當敬, 以至一事一物之微, 一動一靜之際, 莫不各有當行之理, 流動充滿, 無小欠缺, 是孰使之然哉. 皆上帝所以開道啓迪於斯民, 使之趨善而避惡, 以不昧於其所適從也. 然則上帝之所以爲德于汝者, 非可以一二計也, 而爾曾不以是而致思 [6], 乃或背善從惡, 以自棄絶之也.’
- 洋洋은 流動하여 充滿한 뜻이다. 爾는 역시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것은 앞의 내용에 이어서 말하였다. ‘공동체 윤리[人倫]는 일상생활 가운데[日用之間] 天命의 流行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니, 네가 父子 관계에 있다면 당연히 親愛할 것이고 君臣 관계에 있다면 당연히 공경할 것이며 一事一物의 작고 一動一靜의 상황에[際] 이르기까지 각각 당연히 행동해야할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流動· 充滿하고 조금도 흠결이 없으니 이것은 누가 그렇게 하였는가. 모두 상제께서 이 백성들을 개도하고 이끌어서 그들로 하여금 善으로 나가고 惡을 피하여 그들이 좇아가야 할 곳을 어둡지 않게 하였다. 그렇다면 上帝께서 네게 德을 이루게 하는 방식이 한두 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데, 너는 이것을 가지고 생각을 지극히 한 적이 없으니 이에 혹시라도 善을 등지고 惡을 좇아 스스로 [命을] 저버리는가.’
- 風雨寒暑, 吾氣也. 日月吾目也. 汝一有小失, 吾之氣乖戾, 吾之目掩食, 汝之病我者亦極矣, 何不自反, 而遽吾責歟.
- 풍우(風雨)와 한서(寒暑)는 나의 氣다. 해와 달은 나의 눈이다. 네가 한 가지 조그마한 실수가 있으면 나의 氣가 어그러지고 나의 눈이 가려지니 네가 나를 병들게 한 것이 역시 極에 달했는데,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갑자기[遽] 나를 책망하는가.
- 吾, 亦上帝之自吾也. ○風雨寒暑, 爲天之氣, 日月, 爲天之眼, 而人者, 天地之心也. 故人之所爲, 一有小失其正, 則天之風雨寒暑必至於乖戾, 日月必至於掩食, 是人之所以病乎天地者亦可謂極矣. 蓋天地萬物, 本同一體, 故人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 人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 是天地之有災祥, 良由人事之有得失也. 人事得則災祥順其常, 人事失則災祥反其正, 何不以是自反其身, 以修汝之所當爲者, 而乃遽然責望于天乎.
- 吾는 역시 상제가 자신을 吾라고 한 것이다. ○風雨· 寒暑는 天의 氣가 되고 日· 月은 天의 눈이 되며 사람은 天地의 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하는 일이 한 번 조금이라도 그 바름을 잃으면 天의 風雨· 寒暑가 반드시 어그러지고 日· 月이 반드시 가려지는 상황에 처하니, 이는 사람이 天地를 병들게 하는 방법 또한 極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天地· 萬物이 본래 같은 몸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天地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氣가 順하면 天地의 氣도 또한 順하니 이는 天地에 재앙과 복이 있음은 진실로 사람 의 행동[人事]에 좋고[得] 나쁨[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이 좋으면 재앙과 복이 그 일정함을 따르고 사람의 행동이 나쁘면 재앙과 복이 그 바른 것을 어기니[反] 어찌 이것으로 스스로 자기 몸을 반성하여[反] 네가 마땅히 할 바를 닦지 않고서 갑자기 하늘을 책망하는가.
- 且以吾之大, 能覆而不能載, 能生而不能成. 寒暑災祥, 猶有憾於人情, 吾如彼, 何哉. 汝守其正,以待吾定.
- 또한 나의 거대함으로 덮지만 지탱하지 못하고 낳기는 하나 성장하게 하지는 못한다. 寒· 暑, 災· 祥은 人情에게 섭섭할 여지가 남아있으니[猶有] 내가 그에 대해서 어찌하겠는가. 너는 그 바름을 지켜서 내가 정한 것을 기다릴지어다.
- 且夫天體至大, 能無所不覆而不能載, 能無所不生而不能成. 天職覆地職載, 天主生地主成, 天地固有所不能盡也. 當寒而暑, 當暑而寒, 降災降祥, 不得其正者, 此人情所以猶有憾於天地也. 蓋天地之於萬物, 無心而化成, 能施其理之自然, 而不能勝其氣之或然, 如彼人之所爲, 雖上天其如何哉. 言天非有所容心以爲之也, 汝但當固守其理之正, 以待其天之定而已, 所謂‘夭壽不貳, 修身以竢之’ [7] , 曰. “人衆勝天, 天定亦能勝人.” [8] 天人之際, 雖交相爲勝, 然人之勝天, 可暫而不可常, 天之勝人, 愈久而愈定也. 故淫者必不能保其終, 而善者必有慶於後矣. 蓋一時之榮辱禍福, 自外而至者, 皆不足恤, 惟當力於爲善, 以不獲罪於天, 可也.
- 또한 저 天體는 매우 커서 덮지 못한 것은 없으나 지탱하지는 못하고 낳지 않는 것은 없으나 성장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늘은 덮는 것을 맡고 땅은 지탱하는 것을 맡았으며 하늘은 낳는 것을 주로 하고 땅은 성장시키는 것을 주로 하였으니 天地도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추워야 하는데 덥고 당연히 더워야 하는데 추우며 재앙이나 복을 내리는 데에도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人情이 天地에게 섭섭할 여지가 남아 있는 이유이다. 대개 天地는 萬物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조화가 이루어져 그 理의 자연스러움을 베푼 것이고 그 氣의 일정하지 않음[或然]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니, 저렇게[如彼] 사람의 하는 바가 비록 하늘 일지라도 어떻다고 하겠는가!하늘이 달리 뜻한 바가 있어 한 것이 아니니 너는 다만 마땅히 그 理의 바름을 굳게 지켜 그 하늘이 定한 것을 기다릴 따름이니 이른바 ‘夭壽에 의심치 아니하여 몸을 닦아 기다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신포서가 말하였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定하면 또 능히 사람을 이긴다.” 하늘과 사람이 비록 서로 이길 수 있더라도 사람이 하늘을 이기는 것은 잠깐의 일이고 恒常한 일은 아니며 하늘이 사람을 이기는 것은 오래 될수록 더욱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한 자는 반드시 그 나중을 보존하지 못하고 착한 자는 반드시 후일에 경사가 있는 것이다. 대개 한때의 榮辱과 禍福이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은 모두 근심할 것이 없고 마땅히 착한 일 하는 데에 힘써 하늘에 죄를 얻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석
- ↑ 「心問」편은 ‘선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는’ 원리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공리(功利)만 취하게 되자, 사람이 하늘에게 왜 선악보응(善惡報應)의 이치가 준행되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과 상제가 문답하는 상황에 의탁하여 표현한 글이다.
- ↑ 권근은 본 문단(1)에서, 봄볕이 들기 직전의 가장 추운 때와 가장 환한 빛을 발하는 보름달이 뜨기 직전의 날(14일)에 모든 움직임이 잦아든다는 표현을, 마치 인욕 가운데 천리가 싹트기 시작하여 마음속에서 유행하게 되면 외물에 의해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 ↑ 권근은 본 문단(2)의 ‘한 물건[一物]’과 ‘신(臣)’은 마음을 의인화한 것이라 풀이하였고, ‘신이 상제의 명을 받아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臣]이 하늘[上帝]로부터 리(理)-곧 하늘의 이치[天理]와 동일한 리-를 품부받았기에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하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 ↑ 권근은 인간의 마음[臣]이 비록 하늘[上帝]로부터 [천]리를 부여받았기에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육체를 지닌 한, 인간의 신령한 마음은 이목(耳目)에 따른 감각적 욕구 및 신체적 행동[語默動靜]과 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으므로 현실적으로 천리를 발현하기가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본 문단(3)을 해석한다.
- ↑ 【德】12.德敎;敎化. (以德敎化) 《禮記·月令》:“<孟春之月>命相布德和令, 行慶施惠, 下及兆民.” 鄭玄注:“德, 謂善敎也.”
- ↑ 【致思】謂集中心思於某一方面. 《孔子家語·致思》:“孔子北遊於農山, 子路、子貢、顔淵侍側. 孔子四望, 喟然而歎曰:‘於斯致思, 無所不至矣! 二三子各言爾志, 吉將擇焉.’”『論語』「先進」, 子路, 曾點, 冉有, 公西華 네 사람이 공자를 모시고 있을 때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하였는데, 이때 증점이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공자가 자로, 子贡, 颜淵을 데리고 농산에 올라가 사방을 돌아보며 “여기서 생각을 지극히 하면[致思]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제자들에게도 각자의 뜻을 말하도록 한 일이 있다.
- ↑ 『孟子』, 「盡心」上.
- ↑ 『史記』, 권66, 「伍子胥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