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답사보고서
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이 교서는 선조 37년(1604)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서 왜군과 대적하여 크게 이기고, 정유재란 때 통제사가 되어 적선을 물리치다 장렬하게 전사한 원균(1540∼1597)에게 공신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신교서이다.
이것의 내용은 왜군을 물리치고 장렬하게 전사한 원균에게 죽은 후에도 그 후손들을 계속해서 보살필 것임을 밝히고, 노비 13명, 전 150결, 은 10냥, 옷감 1단, 말 1필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 교서와 함께 있는 치제문은 선조 38년(1605) 정월 18일 임금이 의정부좌찬성으로 증직된 원균의 영전에 그의 죽음을 기리어 제사를 지내게 한 글을 담은 문서이다.
이 교서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는데 많은 공을 세운 원균 장군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1]
호기심의 확장
원균 선무공신교서에서 출발한 나의 호기심은 임진왜란때 활약한 원균과 그의 공을 치하하는 목적인 선무공신이라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선무공신을 좀 더 살펴보니 원균 외에도 이순신, 권율 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충청남도 아산시의 현충사에 있는 것을 확인 했고, 현충사에는 그가 쓴 난중일기가 소장되어 있었다.
한편 선무공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호성공신이 있다. 임진왜란인 끝나자 선조는 임진왜란 때 공적을 세운 장군 및 관리에게 그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공신교서를 내리고 상을 내렸는데 그때 크게 선무공신과 호성공신으로 나누었다. 선무공신은 무(武)로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을 치하하기 위한 것이고 호성공신은 임금인 선조 주변에서 선조를 보위하며 공을 세운 것이었다.
호성공신으로는 심대 라는 인물이 있었으며, 심대가 받은 심대 호성공신교서가 마침 경기도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심대의 묘는 용인시 처인구에 있었고, 원균의 묘는 평택시 도일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식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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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참고자료
- 원균은 어떻게 일등공신이 됐을까?(上), Youtube.
- 원균은 어떻게 일등공신이 됐을까?(下), Youtube.
- 영웅의 길 반역자의 길 이순신 vs 원균, 한국사 맞수열전, 다음백과.
- 심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백과.
- 노승석, 「선무공신교서(宣武功臣敎書)」, 『이순신연구논총』 8 , 2007, 363-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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