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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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vi424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22일 (월) 19:5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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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귀신의 날’/성황묘(城隍廟)의 날’

귀신의 존재를 굳게 믿었던 중국인들은 아예 귀신들을 위한 날을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귀신의 날’과 ‘성황묘(城隍廟)의 날’이다. 귀신의 날은 음력 7월 15일. 중국 사람들은 음력 7월을 ‘귀신의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 저승 문이 한 달 동안 열리는데, 지옥에 있던 귀신들이 인간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이때 선행을 많이 쌓은 귀신은 극락 세계로 가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성황묘의 날은 음력 4월 1~8일이다. 성황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성황 신앙은 마을 둘레에 못을 파놓고 그 못에 깃든 신이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는데, 송(宋) 대 이후 보편화했다. ‘귀신들이 모이는 날’인 4월6일에는 가장행렬이 있다. 4월8일은 성황의 생일이다. 이 날 저녁 성황(성황으로 분장한 사람)은 밖으로 순행을 나와 귀신들의 억울함을 씻어 준다. 성황이 다시 성황묘로 돌아가는 것으로 성황의 생일 의식이 끝난다.

중류

시대별로


1. 선진(先秦)유가의 귀신

2. 漢•唐代 유가의 귀신

3. 宋•明代 新儒學의 귀신



강시

산호

산퇴

우사첩(雨師妾)

육어(肉魚)

응룡(應龍)

이력

이매

이부(貳負) 천신(天神)

인어(人魚) 능어(陵魚), 용어(龍魚).

요괴 지도(공간)

사람들이 귀신 대한 생각

일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하고 있다고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귀신 에 대해서는 사상적 측면에서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우리가 고대인들의 원시신앙이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귀신관에서 그 방향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사상적 기초가 일찍부터 귀신신 앙과 관련지어 왔기 때문이다. 귀신신앙은 민중들의 삶 속에서 무의식적 상상 이 발현된 것이기 때문에 귀신에 대한 의식은 곧 그 나라 민족성의 이해와도 직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귀신사상은 동양의 여러 민족 문화의 기원이나 발생을 이해할 원초적인 요소로서 그 민족의 종교심성이나 민간신앙은 물론 민중생활 에 큰 영향을 끼쳐 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 사람들의 인생 관과 사생관(死生觀)을 결정짓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음에도 부인할 수 없다.146

그러나 죽음이나 귀신은 경험을 통해 말할 수 없기에 현상학적으로 귀신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후세계를 추상하여 전개하는 관념으로서의 접근은 다면적일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귀신이 자연 철학적 성격과 종교적 성격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송대의 성리학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성리학(性理學)에서 귀신은 인간과 자연물의 생성과 소멸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자연 철학적 입장과 유 한한 생멸의 과정을 넘어 영원한 것에 합일하려는 종교적 염원이 하나로 묶여 있는 개념이다.


귀신을 이해할 수 없는 괴력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런 자연 운행의 모습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보면 귀신은 지극히 이지적인 자연 철학적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계적 물질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영원성을 매개하는 원리적 순수성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보면 귀신이라는 존재를 존중과 외경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 곧 귀신은 유한한 인간의 개체적 삶 을 조상과 후손의 영속적인 관계로 이어줌으로써 영원성에 대한 인간의 소망 을 충족시켜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철학적 이해

귀신의 실존을 인정하되 두렵기만 한 난신괴력(亂神怪力)의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이해하여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움 직임이 학자들 사이에 있어 왔는데 이러한 배경이 귀신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기론(理氣論)에 입각하여 귀신의 문제를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성 리학자들은 합리적인 귀신 이해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귀신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실체가 아니라 자연 속의 여러 사물과 현상이 생기고 소멸하는 그 중간 과정이라는 것, 곧 리와 기로 이루어진 자연을 그 변화 운행의 측면에서 파악한 개념이 곧 귀신이라는 것이다. 곧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기이며 그에 내재하는 것이 리이다. 따라서 이기론의 입장에서 보면 귀신도 리와 기로 함께 묶여 자연 속에 실재하며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는 주재력을 발휘한다고 이해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몸도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 인간의 탄생은 어머니 배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기와 그 시 점에 주위를 떠돌던 기가 모두 합쳐져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를 형성함으로써이루어 진다. 인간의 죽음은 그 과정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던 한 인간의 생명이 다하면 그 몸을 이루고 있던 기가 자연 속으로 흩 어져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기의 흩어짐은 사람이 죽는 순간 곧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된다. 그러므로 죽은 자에 대한 제사는 허구나 관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처럼 성리학의 자연 철학적 입장에서 해석된 귀신은 리와 기의 합으로서 본체와 현상, 유와 무의 사이를 오가는 존재이다. 이 귀신의 개념을 인간에 적 용시킨다면 그것은 원초적인 무에서 탄생으로 이르는 과정, 죽음에서부터 원초 적인 무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곧 사람의 기는 죽은 후 완 전히 소멸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귀신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이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영원성에 대한 기 대는 시대가 바뀌고 인지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의식 세계를 떠 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 며, 이는 이성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 사상에서 인간은 죽은 후에 곧바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백이 귀신이라는 존재로 남아 후손과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숭배의 식이 종교적인 측면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백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으로 존재할 뿐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 다. 사람이 죽으면 그 기는 흩어지기 시작하고 그 흩어지는 과정에 있는 것이 귀신이니, 귀신의 존재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귀신을 이렇듯 한시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선대에 대한 제사를 4대로 그치게 한 데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 이상의 조상은 혼백을 지탱하는 기가 완전히 소멸되어 더 이상 제사 를 흠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리학의 사생관은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의 내세관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영원성을 추구 하는 종교적인 면이 극히 미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성격 곧 제의론적 성격과 자연 철학적 성격은 서로 에 대해 철학적인 합리성과 종교적 차원의 윤리성을 더해 주는 상호보완적 관 계에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의 고유한 성격을 제약하는 역할을 하기 도 한다. 곧 자연 철학적 입장에서 흩어지는 기로 설명되는 귀신개념은 제사의 대상이 되는 귀신의 영원성을 보장해 주지 못하였고, 제사의 의의를 뒷받침하 기 위해서 영원성을 보강한 종교적 귀신개념은 기의 유한성을 전제로 하는 성 리학설에 부합되는 이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의 귀신개념은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기대에 대 해, 그것을 근거 없는 것으로 돌리기보다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철학적 종교 적 자세로 이끄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보인다.



사회학적 의미


고대인들은 현세 이외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람이 죽으면 현 세 계로부터 귀의 세계로 간다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이 귀의 세계를 현세의 존재와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특히 이기론적 본체관과 결부된 성 리학적 귀신개념은 영적 존재와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자 하는 도덕 적 의식이다.


고대인들은 귀신이 초능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었고, 그리고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감시하여 상과 벌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을 숭배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귀신을 숭배하는 내용은 인간과 귀신의 관계가 종교 행위로 드 러나게 된 것이 실제로는 당시 사회와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 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귀신은 단지 인간의 육체를 떠난 것일 뿐, 귀신의 세계에서 여전히 산 사람들과의 관계는 계속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 다. 그러므로 귀신과 산 사람의 관계는 상호 우호적인 관계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귀신에 대한 숭배의식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는 의식일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집단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대사에 필요한 의견을 묻기도 하였다. 특히 묵가의 사상은 천•귀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있다고 할 수 있다.203 그러나 그 관계에 있어서는 당시의 사상가들과는 견해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만물을 절대 권위를 가진 상 제(上帝)가 주재하는 것으로 믿었던 바를 그대로 수용하였던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간은 단지 복을 구하는 입장으로서 종 속적인 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묵자는 만약 천과 인간의 관계가 종속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사람들 은 무조건 일방적으로 천의를 따라야만 한다. 여기에 대해 묵자는 사람이 천의에 따르게 되면 하늘 또한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한다. 반대로 하 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하늘 또한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한 다.204 이렇게 묵자에게 있어서 귀신과 인간은 상호 순응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 리하여 하늘과 귀신이 사람의 호악(好惡) 감정을 그대로 상벌을 시행한다고 보았다. 귀신이 현자(賢者)에게 상을 주고 폭자에게 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국가 에게 알리고 만민에게 알리는 것이 실제로 국가를 안정시키고 만민을 이롭게 하는 방법이 된다.205 그리고 오늘날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귀신이 현자에게 상을 주고 폭자에게 벌 을 준다는 사실을 믿게 할 수 있다면 천하가 어찌 혼란스럽겠는가.206


이상에서 보면,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은 국가와 만민을 이롭게 하고 정치 사회적 안정이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결국 귀신의 존재 증명 또한 그 상벌 작용의 권위와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상벌 시행은 엄격하여 추호의 예외를 두지 않는다.207 그리하여 ‘하늘에 죄를 지으면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208고 하면서 천자(天子)라 하더라도 천의 (天意)의 순응 여부에 따라 상벌의 대상이 된다’209고 하였다. 이것은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이 당시의 역사 조건 하에서 군권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음 을 의미한다.


이렇게 묵자는 상벌(賞罰)의 시행의 근거에 대해서는 ‘위로는 천을 높이고, 가운데로는 귀신을 섬겼으며, 아래로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 곧 존천(尊天)• 사귀(事鬼)•애인(愛人)이 상의 조건이며 벌은 그 반대다. 여기서 존천(尊天) 과 사귀(事鬼) 그리고 애인(愛人) 이 삼자가 통일된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으 로는 ‘위로 하늘을 이롭게 하며, 다음으로 귀신을 이롭게 하고, 아래로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하여 이해(利害)의 측면에서 통일되며, 이에 해당되면 성왕(聖 王)이라고 한다.210


이러한 점들이 묵가 천과 귀신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본다. 요약해 보면,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이 첫째 당시의 통치자들에게 일정한 비판과 견제의 의 미를 지니며, 둘째로는 이해의 측면에서 천과 귀신 그리고 인간 이 삼자가 통 일된다는 점에서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과는 구별된다. 물론 묵가가 신비적인 관념을 완전히 탈피했다고 평가할 수 없지만, 단순히 전통적인 관념처럼 신비 적인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실 묵가의 천과 귀신 관념은 그들의 주요 이 념을 반영한 하나의 법이었다.

내가 천지(天志)를 갖고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수레장이나 장인의 규(規)구(矩)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211 오늘날 크게는 천하(天下)를 다스리고, 다음으로 대국(大國)을 다스리면서 표준으로 삼을 만한 법이 없다면, 그것은 백공(百工)이 분별하는 것만 같지 못 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합법을 삼아야 좋을까? 가령 모두 그 부모를 본받는 것은 어떨까? 천하의 부모는 많으나 인자(仁者)는 적으니, 만일 모두 그 부모 를 본받는다면 이것은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이다.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을 법으로 삼을 수 없다. 가령 그 학자(學者)를 본받는다면 어떨까? 천하의 학자 는 많으나 인자(仁者)는 적으니 만일 그 학문을 본받는다면 이것은 불인(不 仁)을 본받는 것이다.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을 법으로 삼을 수 없다. 가령 모두 그 군주(君主)를 본받는 것은 어떨까? 천하의 군주는 많으나 인자(仁者) 는 적으니 만일 그 군주를 본받는다면 이것은 불인(不仁)을 본받는 것이다. 불 인(不仁)을 본받는 것을 법으로 삼을 수는 없다. 따라서 부모•학자•군주 세 가지는 치법(治法)으로 삼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치법(治法)을 삼아야 좋을까? 따라서 말하길, ‘하늘을 본받는 것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212


이처럼 묵자는 본래 신비적인 관념이었던 천과 귀신 관념을 재해석하고 나 름대로 자신의 이념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법칙이나 표준으로 설정한 것은 그 의 사상사적인 면에서 한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



출서:

203 앞에서 언급한 대로 묵자는 하늘과 귀신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앞의 163쪽 참 조.

204『墨子』「天志(上)」; 我爲天之所欲 , 天亦爲我所欲. 그리고「天志(中)」; 有所不爲天 之所欲 , ft爲天之所不欲 , 則夫天亦且不爲人之所欲 , ft爲人之所不欲矣. 참조.

205『墨子』「明鬼(下)」; 嘗若鬼神之能賞賢與罰暴也 , 蓋本施之國家 , 施之萬民 , 實所以 治 國家利萬民之道也.

206『墨子』; 今若使天下之人 , 偕若信鬼神之能尙賢ft罰暴也 , 則夫天下豈能亂哉

207『墨子』; 鬼神之罰, 不可爲富貴衆强勇力强武堅甲利兵. 鬼神之罰必勝之.

208『墨子』「天志(下)」; 今人皆處天下ftft事天. 得罪於天 , 將無所以避逃之者矣.

209『墨子』; 天子有善 , 天能賞之. 天子有過 天能罰之.

210 『墨子』「天志(上)」; 此必上利於天 , 中利於鬼 , 下利於人. 三利無所不利 , 故擧天下 美名加之 , 謂之聖王.

211『墨子』; 我有天志 , 譬若輪人志有規 , 匠人之有矩.

212 『墨子』「法儀」; 今大者治天下, 其次治大國 , ft無法所度 , 此不若百工辯也 , 然則奚 以爲治法ft可 , 當皆法其父母奚若. 天下之爲父母者衆 , ft仁者寡 , 若皆法其父母 , 此 法不仁也. 法不仁不可以爲法. 當皆法其學奚若. (…) 故父母學君三者, 莫可以爲治法. 然則奚以爲治法ft可 , 故曰莫若法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