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익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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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내용
- 출생-사망 : 1534 ~ 1599
- 본관 : 여산(礪山)
- 자 : 운장(雲長)
- 호 :구봉(龜峰)·현승(玄繩)
- 시호 : 문경(文敬)
- 활동분야 : 사상, 철학, 문학
- 주요저서 : 《구봉집》
송익필(宋翼弼, 1534년 2월 10일∼1599년 8월 8일)은 조선 중기의 서얼 출신 유학자, 정치인이다. 자(字)는 운장, 호는 구봉(龜峰) 또는 현승(玄繩), 본관은 여산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안당의 진외종손으로, 아버지는 서얼 출신 문신 송사련이며, 진외증조모는 안당 가문의 노비였다. 그는 서인 예학의 태두인 김장생과 김집, 김반 부자 및 인조 반정의 공신 김유 등을 문하에서 길러냈다.
서얼 출신으로, 출생문제에 대한 시비 및 아버지가 안당 일족과 사림 인사들을 역모로 몬 것에 대해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관직을 단념하고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송강 정철 등의 절친한 벗으로, 서인의 이론가이자 예학, 성리학, 경학에 능하였다.
후일 안당의 증손부가 소송을 제기하여 환천의 위기에 처했으나, 제자 김장생의 숙부인 김은휘가 그의 일족을 배려하여 10년간 먹여 살렸다고 한다. 1591년(선조 24년) 평안북도 희천(熙川)으로 유배되었다가 1593년 9월 석방되었다. 사후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다가 1910년(융희 4년) 때 다시 홍문관제학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