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 삼국의 역사적 배경: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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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라의 역사적 배경
1.역사적 배경
1)인종학적 구성
2)정신문화
3)다른 나라와의 관계
1.역사적 배경
- 신라의 기원은 중국 진나라의 망인과 연관된 진한의 후예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 삼한 가운데 진한 12개 성읍국의 하나인 사로국을 모체로 진한의 여러 작은 나라들을 병합하여 지금의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발전해나갔다.
- 신라의 국호는 서벌 사라 사로 서나 계림국 등으로 표기 되었으며 시조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503년 신라로 확장 되었다.
1)인종학적 구성
- 둔황석굴에서 발굴된 신라송공사에 나온 신라인의 체격을 통해 볼 때 대체 백제 시대 미륵사지 연못터에서 백제에서 통일 신라에 이르는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뼈 2구가 발견 되었는데 이들은 25-30세로 키 168cm,162cm로 현대인과 다름이 없었다
- 《후한서》에 ‘동이는 거의 모두 토착민으로서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하고,
변을 쓰고 금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는 기록을 보아 고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위치했던 한민족이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아온 토착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신라 역시 한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예맥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맥 사람들은 북몽골로이드 특징인 샤머니즘을 믿었는데 신라에서 왕호로 한때 우두머리 샤먼이라는 의미의 차차웅 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신라에 미친 샤머니즘의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정신문화
신조 사상
- 새를 이승과 저승, 하늘과 땅을 연결 짓는 매개자 즉 영혼을 천계로 가지고 돌아가는 영조(영조)로 여겼기 때문일 것 이다. 서봉총 금관의 새와 천마총의 새 모양 금제관식 등은 샤먼의 기능을 지녔던
신라왕들의 새 토템으로 망자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
-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김알지의 탄생 등을 통해 새는 고대인의 삶과 생활 및 죽음과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수 사상
- 삼국 및 가야의 지배층이 나무와 화초의 형태를 관모에 사용 하는 것을 볼 때, 고대인들의 사유세계 속에 우주목 또는 세계수 사상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 신라 출토물 중 금관 장식을 통해 나무를 성스로운 존재로 여겨 상징화 했다. → 신라 금관의 기본형을 이루는 산자형 장식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나타낸 것으로 신라인들이
-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나무를 하늘로 통하는 통로로 인식하여 신성시 한 것의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