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問天答
「심문·천답」은 삼봉 정도전(1342-1398)이 우왕(禑王) 원년(1375) 12월에 나주 회진현으로 유배갔을 때 저술한 글로, 마음[心]이 하늘[天]에게 묻는 「심문」(121字)과 하늘이 다시 마음에게 대답하는 「천답」(74字)의 두 편으로 구성되었으며, “4언의 운문체를 기본 형태로 하는 고시가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다. [1]
정도전의 「심문·천답」의 성격을 분석한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는데, 하나는 「심문·천답」을 배불(排佛)의 논의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功利說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보는 입장이다. 「심문·천답」을 불교의 인과응보론에 대한 정도전의 비판으로 해석한 기왕의 연구들을 소개하는 논문으로는 이정주의 「사상가로서 鄭道傳의 새로운 모습 -불교계 교류와 「心問天答」 속의 反功利思想」과 리기용의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 –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가 있다. 이들은 이종익의 「鄭道傳의 闢佛論 批判」을 시작으로 한영우, 윤사순 등이 「심문·천답」에 나타난 ‘선악보응(善惡報應)’에 대한 설명을 불교의 인과응보론에 대한 삼봉의 비판적 해석으로 이해했음을 밝힌다. 특히, 리기용은 정도전의 「심문·천답」, 「심기리편」, 「불씨잡변」 등의 저술이 불교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는 “양촌에 의해서 과대 포장되어 있”는 것이라 서술한다. 즉, 이러한 평가는 “양촌 권근의 서문에 근거한” 평가라는 것이다.[2]
반면에, 「심문·천답」을 반공리(反功利)적 성격의 글로 보는 연구자들은 「심문·천답」을 저술한 정도전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권근의 서문이나 주(註)에 의거하기보다, 정도전이 유배를 가게 된 당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심문·천답」을 이해해야 함을 역설한다. “「심문천답」은 실존적으로는 이인임 등을 비난하는 복선을 깔고 있는 글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으로는 공리설을 비판하는 저술이”라고 설명하거나[3], “유교의 대원칙인 천명과 의리를 저버리고 이해득실만 따지는 소인배들의 인욕적 인심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 담긴 글로 설명한다. [4]
이들이 이해한 당시(禑王 元年, 1375) 정도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공민왕의 시해 이후 고려 조정은 외교노선의 차이로 인하여, 親元派와 親明派로 갈라진다. 친명파인 정도전은 우왕 원년 5월 북원과의 통교를 반대하였음에도, 오히려 북원 사신을 접대하란 명을 받게 된다. 그러자 그는 ‘나는 元使의 목을 베어 오거나, 明에 묶어 보내겠다’며 侍中 慶復興에게 상당히 불손하게 반발하였으며, 이어 태후에게까지 원사 영접 불가의 견해를 아뢰었다. 이에 경복흥·이인임이 정사를 보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하였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나주 회진현에 유배된다. (...) 이렇듯 생사를 넘나들면서 시작된 정도전의 流配時 著述은 한 가지 큰 특징이 있다. 귀양시 저술을 모은 『錦南雜題』는 대부분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였음을 강조한 것들이다. (...) 「謝魑魅文」에서 자신을 ‘힘써 배우고 뜻을 두터이 하여 바르게 실천하였으나, 끝내 유배되는 禍를 입었고, 변명할 길조차 없게 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答田夫」에서도 당시 관료들을 ‘妻子의 양육이나 집·옷 때문에 불의를 행하고 아첨하는 무리’, 혹은 ‘국가의 안위와 생민의 休戚과 時政의 得失에는 신경쓰지 않고 서로 결탁하여 祿位만을 탐하는 무리’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역량과 시기를 모르고 직언을 올려 윗사람을 거스른’ 賈誼·屈原·韓愈·關龍逄 같은 忠諫之士에 비기고 있다. 이처럼 유배시 지은 몇 안 되는 詩文 가운데 대다수가 당시 세태를 비판하고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였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5]
心文
- 此篇, 述心問天之辭. 人心之理, 卽上帝之所命, 而其義理之公, 或爲物欲所勝, 而其善惡之報, 亦有顚倒, 善或得禍, 而惡乃得福. 福善禍淫之理, 有所不明, 故世之人, 不知從善而去惡, 唯務趨於功利而已. 此人之所以不能無惑於天者也, 故托於心之主宰, 以問上帝而質之也.
- 이 편은, 마음이 하늘에 질문하는 말을 서술한 것이다. 사람 마음의 이치[理]는 상제가 명한 것이나 그 의리의 공변됨이 간혹 물욕에 굴복되어 선악에 대한 보응에 또한 어긋남이 있게 되어서 선한 자가 어떤 때엔 재앙을 얻기도 하고, 악한 자는 도리어 복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선[을 행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을 행한 자]에게 재앙을 주는 이치가 분명치 못한 바가 있기에, 세상 사람들은 선을 좇고 악을 없앨 줄을 모른 채 오직 공리(功利)만을 힘써 취할 뿐이다. 이에 사람은 하늘에게 의혹이 없을 수가 없어서 마음의 주재함에 의탁하여 상제에게 따져 묻게 된 것이다.[6]
- 乙卯季冬, 幾望之夕, 天淨月明, 群動就息.
- 을묘년(우왕 원년, 1375) 늦겨울 14일 저녁에 하늘은 맑고 달은 밝으니 뭇 움직임이 그친다.
- 季冬, 涸陰沍寒之極, 而春陽欲生之時. 幾望, 月光漸滿, 而其明復圓之日, 以譬人欲昏蔽之中, 而天理之復萌也. 天淨月明, 群動就息, 以譬人欲淨盡, 天理流行, 方寸之間, 瑩徹光明, 而外物不能以動其中.
- ‘늦겨울’은 혹독한 추위가 극심하나, 봄볕이 생하려는 때이다. ‘14일’은 달빛이 점점 차올라서 그 다음 날 다시 둥글게 되는 날이니, 인욕이 어둡게 가린 가운데 천리가 다시 싹트는 것을 비유하였다. ‘하늘은 맑고 달은 밝으니 뭇 움직임이 그친다’는 것은 인욕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마음속이 투명하고 밝으므로 외물이 그 마음을 동요할 수 없음을 비유하였다. [7]
- 若有一物, 朝于上淸, 立于玉帝之庭, 稱臣而告曰, 臣受帝命, 爲人之靈.
- 한 물건이 상청(上淸) ‘상청(上淸)’은 도교의 용어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도교 최고의 이상향인 삼청(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 중 하나이다. ‘삼청(三淸)’에 조회하고자 옥황상제의 뜰에 서서 [자신을] 신(臣)이라고 칭하며 고하기를, “신은 상제의 명을 받아서 사람에게 신령스러운 [물건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一物, 指心而言, 上淸, 上帝之所居也. 玉帝, 卽上帝, 貴而重之之稱也. 稱臣者, 心之自稱也. 臣受帝命, 爲人之靈者, 心自言其受上帝所命之理, 以爲人之主宰, 而最靈於萬物也. 此章, 設言吾心主宰之靈, 朝見上帝之庭, 稱臣而問之也. 然其曰朝者, 豈別有一物爲帝, 而又有一物朝之者哉? 方寸之間, 私欲淨盡, 則吾心之理, 卽在天之理, 在天之理, 卽吾心之理, 脗合而無間者也, 其曰朝者, 設言以明之也.
- ‘한 물건’이란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상청’이란 상제가 거처하는 곳이다. ‘옥제’란 곧 상제로서, 귀중하게 받드는 칭호이다. ‘신(臣)이라고 칭하’는 것은 마음이 스스로를 일컫는 것이다. ‘신은 상제의 명을 받아 사람에게 신령스러운 [물건이] 되었습니다’라는 것은 마음이 상제가 명한 리(理)를 받아 사람의 주재가 되어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함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이 장은 내 마음의 주재하는 신령함이 상제의 뜰에 조회하여 [자신을] 신(臣)이라 칭하면서 질문하는 것을 가설하였다. 그러나 ‘조회한다[朝]’고 말했다고 해서 어찌 별도의 한 물건이 있어 상제가 되고, 또 다른 한 물건이 있어 [상제에게] 조회를 한 것이겠는가? 마음속에 사욕이 깨끗하게 없어지면 내 마음의 이치가 곧 하늘에 있는 이치이고, 하늘에 있는 이치가 곧 내 마음의 이치로서 [이 두 가지는] 꼭 같아서 차이가 없으니 ‘조회한다’고 말한 것은 가설하여 [마음의 신령함을] 밝힌 것이다.[8]
- 人有耳目, 欲色欲聲, 動靜語默, 手執足行, 凡所以爲臣之病者, 日與臣爭.
- 사람은 이목(耳目)을 갖기에 빛을 보고자 하고 소리를 듣고자 하며, 움직이기도 고요하기도 하며 말하기도 침묵하기도 하고, 손으로 잡거나 발로 걷기도 하니, [이] 모든 것은 신(臣)의 병통이 되는 것들로서 날마다 신과 싸우는 것들입니다.
- 此章, 言物欲害吾心之天理也. 蓋凡有聲色貌相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日與人之身相接. 而人之有目, 莫不欲色, 有耳莫不欲聲, 至於四肢百骸, 莫不欲安佚. 故天理雖根於吾心固有之天, 而其端甚微, 人欲雖生於物我相形之後, 而其發難制, 是其日用云爲, 順理爲難而從欲爲易. 書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此之謂也. 且人之此身, 不能一日離物而獨立, 小有不謹則凡外物之害此心者, 投間抵隙, 攻之甚衆矣, 此天理之所以病也
- 이 장에선 물욕이 내 마음의 천리를 해치는 것을 말하였다. 대개 소리, 빛, 모양은 천지 사이를 가득채우니 모두 ‘외물’로서, 날마다 사람의 몸과 서로 맞닿는다. 사람은 눈이 있어, 빛을 보고자 하지 않음이 없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음이 없으며 사지(四肢)와 백해(百骸)에 이르러서도 안일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천리가 비록 내 마음의 고유한 천[성]에 뿌리내리고 있으나 그 실마리는 매우 은미하고, 인욕은 비록 외물과 내가 서로 접촉한 후에야 생기는 것이지만 [인욕의] 발함은 제어하기가 어려우니, 이 때문에 일상에서 말하고 행위함에 있어 천리를 따르기는 어려우나 인욕을 좇기는 쉬운 것이다. [그래서] )『서경』에서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다. 또 사람의 이 몸은 하루라도 외물을 떠나 홀로 살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외물이 이 마음을 해쳐 [마음의] 틈새를 타고서 매우 심하게 [마음을] 공격하므로 이 때문에 천리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 [9]
- 志吾之帥, 氣吾徒卒, 皆不堅守, 棄臣從敵, 以臣之微, 孤立單薄。
- 지(志)는 나의 장수[帥]요, 기(氣)는 나의 도졸(徒卒)인데도, 모두 굳게 지키지 못하여 신(臣)을 버리고 적(敵)을 좇으니, 신(臣)의 미약함으로 고립(孤立)ㆍ단박(單薄) 하였습니다.
- 志者, 心之所之也。吾亦心之自稱也。孟子曰, 夫志, 氣之帥也。氣, 體之充也。註曰, 志固心之所之, 而氣之將帥, 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 而爲志之卒徒也。心爲天君, 以志統氣而制物欲, 猶人君之命將帥。以率徒衆而禦敵人也。故曰志吾之帥, 氣吾徒卒。然志苟不定, 則物欲得以奪之, 而理不能以勝私矣。故其志之爲帥與其氣之爲徒卒者, 皆不能堅守其正, 反棄吾心而從物欲。故吾之此心, 雖曰一身之主, 卒至孤立單弱而薄劣也。
- 지(志)란 마음의 가는 바요, 나(吾)란 마음을 스스로 일컫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무릇 지(志)는 기(氣)의 장수요, 기(氣)는 몸의 충만된 것이다.” [10]하였다. 그 주(註)에 이르기를, “지(志)는 진실로 마음의 가는 바이며 기(氣)의 장수이고, 기(氣)는 또 사람의 몸에 충만(充滿)한 것이며 지(志)의 졸도(卒徒)가 되는 것이다.” [11] 하였으니, 마음이 하늘의 군주가 되어 지(志)로써 기(氣)를 통솔하여 물욕을 제어하는 것이, 사람의 군주가 장수에게 명하여 졸개들을 통솔하여 적을 막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志)는 나의 장수요 기(氣)는 나의 졸개(徒卒)[12]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뜻(志)이 진실로 정해지지 않으면 물욕에게 기를 빼앗기게 되어 이치가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지(志)의 장수됨과 기(氣)의 졸개됨이 모두 그 바른 것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도리어 내 마음을 버리고 물욕을 좇아간다. 따라서 나의 이 마음이 비록 한 몸의 주인이지만, 마침내 고립되는데 이르러 홀로서서 형세가 약하게되고 박렬(薄劣)하게 되는 것이다.
- 誠敬爲甲胄, 義勇爲矛戟, 奉辭執言, 且戰且服, 順我者善, 背我者惡, 賢智者從, 愚不肖逆, 因敗成功, 幾失後獲。
- 誠과 敬을 갑옷과 투구(甲胄)를 삼고 의로움과 용맹함(義勇)을 창(矛戟)으로 삼아 사명(辭命)을 받들어 저희 죄를 성토하여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복종하니, 나(나의 뜻)를 따르는 자는 선한 자이고 나(나의 뜻)를 배반하는 자는 악한 자이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는 따르고, 어리석고 불초한 자는 거스르며, 실패함을 계기로 삼아서 공적을 이루고 거의 잃은 뒤에 얻게 되었습니다.
- 甲胄, 所以衛身之具, 矛戟, 所以制敵之物。○此承上章之末而言。以我一心之微, 而當衆欲之攻, 雖甚微弱而薄劣, 苟能以誠敬爲甲胄而自守, 則所以操存者固, 而志不可奪矣。義勇爲矛戟而自衛, 則所以裁制者嚴, 而欲不得侵矣, 內外交相養之道也。奉帝之命, 使知理之不可違, 聲彼之罪, 使知欲之不可從。彊者戰而勝之, 弱者降而服之, 其順我命者。合乎理而爲善, 其背我命者, 悖乎義而爲惡, 知善而率從者爲賢智, 不知而背逆者爲愚不肖。彼雖不從, 我則益勉。此心幾爲物欲之敵所敗, 至於覆沒, 然以此心之理, 終不泯滅, 故更自策礪, 終有所獲。此勉強而行者, 及其成功一也。
- 갑주(甲胄)는 몸을 보호하는 도구요, 모극(矛戟)은 적을 제어하는 물건이다. 이는 윗장(章)의 끝을 이어 말한 것이다. 내 한 마음의 미묘(微妙)함을 가지고 온갖 물욕의 침공을 받아서, 비록 매우 미약하고 박렬(薄劣)하나, 진실로 誠과 敬을 갑주(甲胄)로 삼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면 그 잡고있는 것이 견고하여 뜻을 빼앗지 못할 것이요, 의로움과 용맹함을 모극(矛戟)으로 삼아 스스로 보호하면 그 제재(制裁)하는 바가 엄중하여 물욕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안팎으로 사귀어 서로를 기르는 방법이다. 상제(帝)의 명(命)을 받들어 이치에 어긋나서는 안 됨을 알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성토하여 욕심은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강한 자는 싸워서 이기고 약한 자는 항복하여 복종하니, 그 나의 명령을 따르는 자는 이치에 합하여 선하게 되고, 내 명령을 배반하는 자는 의리에 어긋나 악하게 되며, 선을 알아서 (선한 것을) 따르는 자는 어질고 지혜로운 자가 되고, (선을) 알지 못하여 (선한 것을) 거역하는 자는 어리석고 불초한 자가 되는 것이다. 저들이 비록 따르지 않더라도 나는 더욱 권면하였다. 이 마음이 거의 물욕이란 적에게 패한 것이 되어 전복되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이 마음의 이치로써 끝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다시 스스로 다듬어 마침내 얻은 바가 있었다. 이는 힘들게 애써서 행하는 자로 그 성공함에 미쳐서는 마찬가지인 것이다.[13]
- 及至其報, 事多反復。背者壽考, 順者夭折, 從者貧窮, 逆者富達。故世之人, 尤臣之爲。不從臣命, 惟敵之隨。
- 그 급기야 그 보답함에 이르러서는 (어그러지는) 일의 반복됨이 많았다. 배반한 자는 장수하고 따른 자는 요절(夭折)하며, 좇는 자는 빈궁하고, 거역하는 자는 부귀하였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신(臣)의 하는 일을 책망하고 신하가 (받은) 명령을 좇지 않고 오직 적을 따른다.
- 報, 謂善惡之應效也, 人有所爲而天報之也。尤, 咎責也。人爲善則天報之以福, 爲惡則天報之以禍, 猶人臣有戰功則君賞之以爵祿, 敗績則君加之以刑戮, 此理之常也。今心奉上帝之命, 與物欲之敵相戰, 敵不能勝。惟心之命順從則是爲有功於天也, 宜富貴壽考, 以受爲善之福, 而反至貧窮夭折, 敵旣勝之, 背逆此心之命, 宜貧賤夭折, 以受爲惡之禍, 而反富貴壽考。天之報應, 反復乖戾如此, 故人之所爲, 寧從彼敵利害之誘, 不從其主義理之命, 人之所以不能無惑也。故下文呼天而問之也。
- 보(報)는 선악(善惡)에 응한 효과를 이른 것이니, 사람이 하는 바가 있으면 하늘이 그것을 보답하는 것이다. 우(尤)는 허물로 질책하는 것이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福)으로써 갚고 악한 일을 하면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 것이, 신하가 전쟁에서 공적을 세우면 임금이 관직과 녹봉으로써 그에게 상을 주고 전쟁에서 지면 임금이 형벌에 따라 죽임을 그에게 가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이치의 항상됨이다. 이제 마음이 상제(上帝)의 명을 받들어 물욕의 적과 더불어 싸워, 적이 이기지 못하여 오직 마음의 명을 순종하게 되었다면 이는 하늘에 공이 있는지라, 마땅히 부귀와 장수를 누려서 선한 복을 받아야 할 것인데도 도리어 빈곤하고 곤궁하여 요절(夭折)하는 데 이르며, 적이 이미 그를 이겨서 이 마음의 명령을 배반하고 거슬러서 마땅히 빈천하고 요절하여 악한 화를 받아야 할 것인데 도리어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있다. 하늘의 (뜻에) 응함을 보답함이, 어그러짐을 반복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사람의 하는 바가 차라리 저 적의 이익됨과 손해됨을 따지는 유혹을 따를지언정, 그 주인의 옳은 이치의 명을 좇지 않으니, 사람이 미혹됨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글에 하늘을 부르며 물은 것이다.
- 惟皇上帝, 實主下民, 始終何乖, 與奪何偏。臣雖鄙愚, 竊有惑焉。
- “위대한 상제(上帝)가 진실로 하민(下民)을 주재(主宰)하시는데 시(始)와 종(終)이 어찌하여 어긋나며, 주고 빼앗는 것이 어찌하여 편벽됩니까? 신(臣)이 비록 비루하고 어리석으나 삼가 의혹하는 바입니다.”
- 皇, 大也, 尊之之辭。○此呼上帝而告之曰。大哉上帝, 實位乎上, 以主下土之人, 福善禍淫, 是其理之常也。始者賦命之初, 必與人以仁義禮智之性, 是欲使人循是性而爲善也, 至其終而報應之著則善惡之效, 反復如此。是何始終所命之乖戾耶。彼背且逆而得壽考富達者, 天何所愛而厚之, 此順且從而得夭折貧窮者, 天何所憎而薄之歟。是其一與一奪, 又何偏而不公如是也歟。臣心雖甚鄙愚, 而竊有惑於斯也。
- 황(皇)은 위대하다는 것이니 존칭(尊稱)하는 말이다. 이는 상제(上帝)를 부르며 고하는 말이니, “위대하도다, 상제여! 진실로 위에 자리하여 나쁜 땅(下土)의 사람을 주재(主宰)하시니 선을 복주고 잘못된 것을 벌주니 이것이 이치[理]의 상도(常道)입니다. 처음에 명(命)을 부여할 때에 반드시 사람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주신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성품을 따라 선하게 하고자 한 것인데, 그 마지막에 보응(報應)함 드러나는데 이르러서는 선악의 효과가 (어그러짐이) 반복됨이 이와 같으니, 이 어찌 시종(始終)의 명(命)한 바가 어그러지는 것입니까? 저것은 배반하고 또 거역하고도 장수와 영달[14]을 얻는 자는 하늘이 무엇을 사랑하여 그를 후하게 한 것이며, 이것을 따르고 또 순종하도고 요절과 빈천을 얻은 자는 하늘이 무엇을 미워하여 박하게 한 것입니까? 그 한 번 주고 빼앗는 것도 또한 어찌 편벽되고 공변되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까? 신(臣)의 마음이 비록 매우 비천하고 우매하나 삼가 여기에 의혹 있는 바입니다.” 한 것이다.
天答
- 此篇, 述天答心之辭. 天能以理賦予於人, 而不能使人必於爲善, 人之所爲, 多失其道, 以傷天地之和. 故災祥有不得其理之正者, 是豈天之常也哉. 天卽理也, 人動於氣者也, 理本無爲而氣用事. 無爲者靜, 故其道遲而常, 用事者動, 故其應速而變, 災祥之不正, 皆氣之使然也. 是其氣數之變, 雖能勝其理之常者, 然此特天之未定之時爾. 氣有消長, 而理則不變. 及其久而天定, 則理必得其常, 而氣亦隨之以正, 福善禍淫之理, 豈或泯哉.
- 이 篇은 하늘이 ‘마음’에게 답한 말을 기술한 것이다. 하늘은 理를 사람에게 부여 할 수 있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善을 행동하게 할 수는 없으니 사람이 하는 일은 대부분 그 正道를 잃고 天地의 조화로움을 훼손시킨다. 그러므로 재앙과 복이 그 이치의 바름을 얻지 못할 경우[者]가 있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일정한 법칙[常理]이겠는가. 하늘은 理이고 사람은 氣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理는 본래 無爲하고 氣는 用事한다. 無爲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기[靜] 때문에 그 道는 더디지만 일정하고[常] 用事라는 것은 움직이기[動] 때문에 그 대응이 빠르지만 변하니 재앙과 복의 바르지 못함은 모두 氣가 그러하도록 시킨 것이다. 이것은 그 기운[氣數]의 변화가 비록 능히 그 理의 일정함을 이기는 경우[者]가 있어도 이것은 단지[特] 하늘이 아직 定하지 못할 때일 뿐이다. 氣는 쇠락하고 왕성함이 있지만 理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오래 됨에 이르러서 하늘이 定해지면 理가 반드시 그 일정함을 얻게 되고 氣도 (理를) 따라서 바르게 되니 福善禍淫의 이치가 어찌 혹여 사라지겠는가.
- 帝曰. “噫嘻, 予命汝聽. 予賦汝德, 在物最靈, 與吾並立, 得三才名.”
- 上帝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나의 命을 너는 들을지어다. 내가 너에게 德을 부여하여 萬物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이 되었으니 나와 함께 나란히 서서 三才의 이름을 얻었도다.”
- 帝, 上帝也. 噫嘻, 歎息也. 予, 上帝之自予也. 汝, 指心而言. 德卽仁義禮智之性, 天之所令而人之所得者也. 三才, 天地人也. ○此章, 設爲上帝答心之辭. 歎息而言. “予有所命, 惟汝人心其聽之哉. 予旣賦汝以健順五常之理, 而汝得之以爲德, 方寸之間, 虛靈不昧, 具衆理應萬事, 而在萬物最爲靈矣. 故能與我與地並立而得稱三才之名也.”
- 帝는 上帝이다. 噫嘻는 탄식하는 것이다. 予는 上帝가 자신을 予라고 한 것이다. 汝는 마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德은 仁義禮智의 性이니 하늘이 명령한 것이며 사람이 얻은 것이다. 三才는 天· 地· 人이다. 이 章은 상제가 마음에게 대답한 말을 가정[設想]한 것이다. 탄식하여 말하였다. ‘내가 명령하였으니 오직 너는 人心의 그 (명령을) 들을지어다. 내가 이미 너에게 健順과 五常의 理를 부여하였으니 네가 [이것들을] 얻어 德으로 삼고 마음이[方寸之間] 虛靈하여 어둡지 않으니 모든 이치를 갖추어 만 가지 일에 응하여서 萬物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능히 나와 땅과 나란히 서서 三才라고 칭하는 이름을 얻었다.’
- 又當日用之間, 洋洋焉開道引迪, 使爾不昧其所適, 予所以德 [15] 汝者非一, 汝不是思, 或自棄絶.
- 또한 일상생활에서 드넓게 개도하고 이끌어서[引迪] 너로 하여금 그 가는 곳을 어둡지 않게 하였으니 내가 너를 德으로 교화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닌데, 너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간혹 스스로 저버리는 도다.
- 洋洋, 流動充滿之意. 爾, 亦指心而言. ○此承上言. ‘人倫日用之間, 莫非天命之流行發見, 汝在父子則當親, 在君臣則當敬, 以至一事一物之微, 一動一靜之際, 莫不各有當行之理, 流動充滿, 無小欠缺, 是孰使之然哉. 皆上帝所以開道啓迪於斯民, 使之趨善而避惡, 以不昧於其所適從也. 然則上帝之所以爲德于汝者, 非可以一二計也, 而爾曾不以是而致思 [16], 乃或背善從惡, 以自棄絶之也.’
- 洋洋은 流動하여 充滿한 뜻이다. 爾는 역시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것은 앞의 내용에 이어서 말하였다. ‘공동체 윤리[人倫]는 일상생활 가운데[日用之間] 天命의 流行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니, 네가 父子 관계에 있다면 당연히 親愛할 것이고 君臣 관계에 있다면 당연히 공경할 것이며 一事一物의 작고 一動一靜의 상황에[際] 이르기까지 각각 당연히 행동해야할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流動· 充滿하고 조금도 흠결이 없으니 이것은 누가 그렇게 하였는가. 모두 상제께서 이 백성들을 개도하고 이끌어서 그들로 하여금 善으로 나가고 惡을 피하여 그들이 좇아가야 할 곳을 어둡지 않게 하였다. 그렇다면 上帝께서 네게 德을 이루게 하는 방식이 한두 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데, 너는 이것을 가지고 생각을 지극히 한 적이 없으니 이에 혹시라도 善을 등지고 惡을 좇아 스스로 [命을] 저버리는가.’
- 風雨寒暑, 吾氣也. 日月吾目也. 汝一有小失, 吾之氣乖戾, 吾之目掩食, 汝之病我者亦極矣, 何不自反, 而遽吾責歟.
- 풍우(風雨)와 한서(寒暑)는 나의 氣다. 해와 달은 나의 눈이다. 네가 한 가지 조그마한 실수가 있으면 나의 氣가 어그러지고 나의 눈이 가려지니 네가 나를 병들게 한 것이 역시 極에 달했는데,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갑자기[遽] 나를 책망하는가.
- 吾, 亦上帝之自吾也. ○風雨寒暑, 爲天之氣, 日月, 爲天之眼, 而人者, 天地之心也. 故人之所爲, 一有小失其正, 則天之風雨寒暑必至於乖戾, 日月必至於掩食, 是人之所以病乎天地者亦可謂極矣. 蓋天地萬物, 本同一體, 故人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 人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 是天地之有災祥, 良由人事之有得失也. 人事得則災祥順其常, 人事失則災祥反其正, 何不以是自反其身, 以修汝之所當爲者, 而乃遽然責望于天乎.
- 吾는 역시 상제가 자신을 吾라고 한 것이다. ○風雨· 寒暑는 天의 氣가 되고 日· 月은 天의 눈이 되며 사람은 天地의 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하는 일이 한 번 조금이라도 그 바름을 잃으면 天의 風雨· 寒暑가 반드시 어그러지고 日· 月이 반드시 가려지는 상황에 처하니, 이는 사람이 天地를 병들게 하는 방법 또한 極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天地· 萬物이 본래 같은 몸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天地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氣가 順하면 天地의 氣도 또한 順하니 이는 天地에 재앙과 복이 있음은 진실로 사람 의 행동[人事]에 좋고[得] 나쁨[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이 좋으면 재앙과 복이 그 일정함을 따르고 사람의 행동이 나쁘면 재앙과 복이 그 바른 것을 어기니[反] 어찌 이것으로 스스로 자기 몸을 반성하여[反] 네가 마땅히 할 바를 닦지 않고서 갑자기 하늘을 책망하는가.
- 且以吾之大, 能覆而不能載, 能生而不能成. 寒暑災祥, 猶有憾於人情, 吾如彼, 何哉. 汝守其正,以待吾定.
- 또한 나의 거대함으로 덮지만 지탱하지 못하고 낳기는 하나 성장하게 하지는 못한다. 寒· 暑, 災· 祥은 人情에게 섭섭할 여지가 남아있으니[猶有] 내가 그에 대해서 어찌하겠는가. 너는 그 바름을 지켜서 내가 정한 것을 기다릴지어다.
- 且夫天體至大, 能無所不覆而不能載, 能無所不生而不能成. 天職覆地職載, 天主生地主成, 天地固有所不能盡也. 當寒而暑, 當暑而寒, 降災降祥, 不得其正者, 此人情所以猶有憾於天地也. 蓋天地之於萬物, 無心而化成, 能施其理之自然, 而不能勝其氣之或然, 如彼人之所爲, 雖上天其如何哉. 言天非有所容心以爲之也, 汝但當固守其理之正, 以待其天之定而已, 所謂‘夭壽不貳, 修身以竢之’ [17] , 曰. “人衆勝天, 天定亦能勝人.” [18] 天人之際, 雖交相爲勝, 然人之勝天, 可暫而不可常, 天之勝人, 愈久而愈定也. 故淫者必不能保其終, 而善者必有慶於後矣. 蓋一時之榮辱禍福, 自外而至者, 皆不足恤, 惟當力於爲善, 以不獲罪於天, 可也.
- 또한 저 天體는 매우 커서 덮지 못한 것은 없으나 지탱하지는 못하고 낳지 않는 것은 없으나 성장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늘은 덮는 것을 맡고 땅은 지탱하는 것을 맡았으며 하늘은 낳는 것을 주로 하고 땅은 성장시키는 것을 주로 하였으니 天地도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추워야 하는데 덥고 당연히 더워야 하는데 추우며 재앙이나 복을 내리는 데에도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人情이 天地에게 섭섭할 여지가 남아 있는 이유이다. 대개 天地는 萬物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조화가 이루어져 그 理의 자연스러움을 베푼 것이고 그 氣의 일정하지 않음[或然]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니, 저렇게[如彼] 사람의 하는 바가 비록 하늘 일지라도 어떻다고 하겠는가!하늘이 달리 뜻한 바가 있어 한 것이 아니니 너는 다만 마땅히 그 理의 바름을 굳게 지켜 그 하늘이 定한 것을 기다릴 따름이니 이른바 ‘夭壽에 의심치 아니하여 몸을 닦아 기다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신포서가 말하였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定하면 또 능히 사람을 이긴다.” 하늘과 사람이 비록 서로 이길 수 있더라도 사람이 하늘을 이기는 것은 잠깐의 일이고 恒常한 일은 아니며 하늘이 사람을 이기는 것은 오래 될수록 더욱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한 자는 반드시 그 나중을 보존하지 못하고 착한 자는 반드시 후일에 경사가 있는 것이다. 대개 한때의 榮辱과 禍福이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은 모두 근심할 것이 없고 마땅히 착한 일 하는 데에 힘써 하늘에 죄를 얻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序[19]
- 道之不明, 異端害之也. 吾儒尙賴先哲之訓, 以知異端之蔽, 而往往有不能固守其道者, 亦怵於功利之私而已. 故高不溺於空虛, 則卑必流於汚賤. 此道之所以常不明不行, 而異端之徒亦指以爲卑近而斥之也. 且其善惡報應之效, 亦多參差不齊, 故善者以怠, 惡者以肆, 而擧世之貿貿然淪胥於利害之中, 而不知義理爲何物, 釋氏之徒又得售其因緣之說, 而人愈惑焉. 嗚呼! 道之不明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三峯先生嘗有言曰, 辨老佛邪遁之害, 以開百世聾瞽之學, 折時俗功利之說, 以歸夫道誼之正.
- [유학의] 도가 밝지 못한 것은 이단이 [도를] 해쳐서이다. 우리 유자는 그래도 선철(先哲)들의 가르침에 힘을 입었기에 이단의 폐해를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이따금씩 그 도를 굳게 지키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역시 공리(功利)의 사사로움에 이끌렸을 뿐이다. 그러므로 높게는 공허한 데 빠지지 않으면, 낮게는 반드시 더럽고 천한 데로 흘렀다. 이것이 [바로] 도가 항상 밝지 못하고 행해지지 못한 이유이니, 이단(異端)의 무리가 또한 비근하다고 여기며 배척하였다. 또한 그 선악에 대한 보응의 발효 역시 들쭉날쭉하여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선한 자는 게을러지고 악한 자는 [더욱] 방자해져 온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해(利害) 속에만 빠진 채 의리가 무엇인지 알지를 못 하게 됐는데, 석씨의 무리가 또한 인연(因緣)의 설을 펼쳤으니, 사람들이 더욱 미혹되었다. 아! 도가 밝지 않은 지가 오래되어, 사람들이 미혹되지 않기를 바라기가 어렵다. 삼봉 선생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노자와 불교의 사특하고 회피하는 말[邪遁][20]의 폐해를 변파(辨破)하여 백세 동안 깜깜했던 학문을 열어주고, 세상의 공리(功利)의 설을 꺾어서 도리의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 其心氣理三篇, 論吾道異端之偏正殆無餘蘊, 愚已訓釋其意矣. 先生又嘗作心問天答二篇, 發明天人善惡報應遲速之理, 而勉人以守正, 其言極爲精切, 使怵於功利者觀之, 可以祛其惑而藥其病矣, 故又加訓釋以附三篇之後. 夫闢異端然後可以明吾道, 去功利然後可以行吾道, 此先生之作所以關於世敎爲甚重, 而吾今日編次之意也. 觀者幸毋忽. 甲戌夏六月, 陽村權近序.
- 「심기리삼편」은 우리 [유학]의 도와 이단의 편벽됨과 바름을 남김없이 논하였는데, 내가 이미 그 뜻을 주해하였다. 선생께서는 또 「심문」과 「천답」 두 편을 지으셨으니, 하늘과 사람 사이의 선악의 보응(報應)이 더디고 빠른 이치를 밝힘으로써 사람들에게 바름을 지킬 것을 권면하셨는데, 그 말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절하여 공리(功利)에 이끌린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한다면, 그 미혹됨을 없애주고 그 병에 약을 줄 수 있기에 [내가] 또 주석을 보태어 「(심기리)삼편」 뒤에 붙여놓았다. 대저 이단을 물리친 뒤에야 우리의 도를 밝힐 수 있고, 공리심을 버린 뒤에야 우리의 도를 행할 수 있으니 이것이 선생의 저작이 세교(世敎)와 매우 중요하게 관련된 이유이고, 내가 오늘날 편찬하는 의도이다. [이 글을] 보는 자는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갑술(1394, 태조3) 6월에 양촌 권근은 서(序)한다.
주석
- ↑ (리기용,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 –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제34집, 2012, 21쪽)
- ↑ (리기용,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 –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 19쪽)
- ↑ (이정주, 「사상가로서 鄭道傳의 새로운 모습 -불교계 교류와 「心問天答」 속의 反功利思想」 『한국사학보』제2호, 1997, 164쪽)
- ↑ (리기용,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 –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 23)
- ↑ (이정주, 「사상가로서 鄭道傳의 새로운 모습 -불교계 교류와 「心問天答」 속의 反功利思想」, 153-154쪽)
- ↑ 「心問」편은 ‘선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는’ 원리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공리(功利)만 취하게 되자, 사람이 하늘에게 왜 선악보응(善惡報應)의 이치가 준행되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과 상제가 문답하는 상황에 의탁하여 표현한 글이다.
- ↑ 권근은 본 문단(1)에서, 봄볕이 들기 직전의 가장 추운 때와 가장 환한 빛을 발하는 보름달이 뜨기 직전의 날(14일)에 모든 움직임이 잦아든다는 표현을, 마치 인욕 가운데 천리가 싹트기 시작하여 마음속에서 유행하게 되면 외물에 의해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 ↑ 권근은 본 문단(2)의 ‘한 물건[一物]’과 ‘신(臣)’은 마음을 의인화한 것이라 풀이하였고, ‘신이 상제의 명을 받아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臣]이 하늘[上帝]로부터 리(理)-곧 하늘의 이치[天理]와 동일한 리-를 품부받았기에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하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 ↑ 권근은 인간의 마음[臣]이 비록 하늘[上帝]로부터 [천]리를 부여받았기에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육체를 지닌 한, 인간의 신령한 마음은 이목(耳目)에 따른 감각적 욕구 및 신체적 행동[語默動靜]과 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으므로 현실적으로 천리를 발현하기가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본 문단(3)을 해석한다.
- ↑ 孟子, 「公孫丑上」, “曰:敢問夫子之不動心,與告子之不動心,可得聞與? 告子曰: 不得於言,勿求於心;不得於心,勿求於氣。不得於心,勿求於氣,可;不得於言,勿求於心,不可。夫志,氣之帥也;氣,體之充也。夫志至焉,氣次焉。故曰:持其志,無暴其氣。
- ↑ 【注】 “… 若論其極,則志固心之所之,而為氣之將帥;然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而為志之卒徒者也。故志固為至極,而氣即次之。人固當敬守其志,然亦不可不致養其氣。蓋其內外本末,交相培養。此則孟子之心所以未嘗必其不動,而自然不動之大略也。”
- ↑ 漢語大詞典 徒卒 : 步兵
- ↑ 中庸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그것(達道)을 알고, 어떤 자는 배워서 그것을 알며 어떤 자는 괴로워서 그것을 아나 그 아는 것에 이르러서는 동일하다. 어떤 사람은 편안히 여겨 그것을 행하고 어떤 자는 이익으로 여겨서 행하고 어떤 자는 힘들게 애써서 행하나, 그것을 행함에 이르러서는 동일하다 (或生而知之,或學而知之,或困而知之,及其知之一也;或安而行之,或利而行之,或勉強而行之,及其成功一也。)”
- ↑ (榮達) 漢語大詞典, 榮達 : 位高顯達
- ↑ 【德】12.德敎;敎化. (以德敎化) 《禮記·月令》:“<孟春之月>命相布德和令, 行慶施惠, 下及兆民.” 鄭玄注:“德, 謂善敎也.”
- ↑ 【致思】謂集中心思於某一方面. 《孔子家語·致思》:“孔子北遊於農山, 子路、子貢、顔淵侍側. 孔子四望, 喟然而歎曰:‘於斯致思, 無所不至矣! 二三子各言爾志, 吉將擇焉.’”『論語』「先進」, 子路, 曾點, 冉有, 公西華 네 사람이 공자를 모시고 있을 때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하였는데, 이때 증점이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공자가 자로, 子贡, 颜淵을 데리고 농산에 올라가 사방을 돌아보며 “여기서 생각을 지극히 하면[致思]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제자들에게도 각자의 뜻을 말하도록 한 일이 있다.
- ↑ 『孟子』, 「盡心」上.
- ↑ 『史記』, 권66, 「伍子胥列傳」.
- ↑ 양촌 권근(1352-1409)이 쓴 序의 제목은 「심기리삼편후부집서(心氣理三篇後附集序)」로, 『양촌집』 권1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권근이 “「心氣理篇」과 「心問天答」을 太祖 3年(1394)에 같이 編次하면서, 權近이 쓴 序文이다.” (이정주, 「사상가로서 鄭道傳의 새로운 모습 -불교계 교류와 「心問天答」 속의 反功利思想」, 162-163쪽) 이 서문의 배열 순서는 현존하는 두 개의 『삼봉집』판본, 곧 성종본(8권)과 정조본(14권)간에 출입의 차이가 있다. “성종본은 「심기리편」 다음에 권근이 쓴 「심기리삼편후부집서」가 있고 「심문천답」이 있으며 권근이 쓴 「심기리서」가 있는데, 정조본에는 「심기리편」 다음에 권근이 쓴 「심기리서」가 있고, 그 다음에 「심문천답」 맨 뒤에 권근이 쓴 「심기리삼편후부집서」가 수록되어 있다.” (도현철, 조선전기 정치 사상사: 『삼봉집』과 『경제문감』의 실증적 분석을 중심으로(파주 : 태학사), 2013, 35쪽) 권근은 「심기리삼편후부집서」뿐 아니라 “『삼봉집』 권1의 부(賦)와 시(詩)에 ‘비(批)’, 『경제문감』에 ‘정(訂)’, 「심기리편」과 「심문천답」에 ‘주(註)’를 한 인물이다. 이 밖에 권근은『삼봉집』의 서문뿐만 아니라 「심기리삼편」·「심문천답」·「감사요약」·「불씨잡변」·『경제문감별집』의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도현철, 「조선전기 정치 사상사: 『삼봉집』과 『경제문감』의 실증적 분석을 중심으로」, 15-16쪽).
- ↑ ‘사둔(邪遁)’은 『맹자』 「공손추 상」의 2장에서 맹자가 말의 병통으로 지적한 ‘피(詖)·음(淫)·사(邪)·둔(遁)’에서 따온 것이다. (『孟子』,「公孫丑 上」 2章. “何謂知言? 曰詖辭, 知其所蔽, 淫辭, 知其所陷, 邪辭, 知其所離, 遁辭, 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