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오두동(鼇頭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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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村花樹列成庄 (일촌화수열성장) 꽃나무로 동산 이룬 오두리 마을에선,
於讀於耕日月長 (어독어경일월장) 글 읽기와 농사일로 세월을 보내네.
最愛此中丹桂籍 (최애차중단계적) 그중에서 소중한 일은 과거에 급제한 일이니,
永承雨露放餘光 (영승우로방여광) 나라 은혜 길이 이어 큰 빛을 발하리.
○ 오두동(鰲頭洞)에는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많이 살고 있는데, 나와 같이 영곡공(靈谷公)과 관란재공(觀瀾齋公)의 후손이다. 문중의 조카 고영중(高永中)이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정자(正字)가 되었으나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 영곡공은 이름이 고득종(高得宗)인데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문과에 합격하여 대종백·대제학까지 이르렀고, 효로써 정려문을 내려받았다.
○ 관란재공은 이름이 고회(高晦)인데 은일(隱逸)로 시직(侍直)했고, 학행으로 우암 송시열(宋時烈)·동춘당 송준길(宋浚吉) 선생의 문인이 되었다. 동춘당 선생의 무고함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
인물
- 영곡공(靈谷公) : 고득종(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1413년 효행으로 천거받아 관직에 나간 후 예조참의 동지중추원사·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관란재공(觀瀾齋公) 고회(高晦)[1][2][3]
- 고영중(高永中)[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