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답사보고서
나의 인문학 콘텐츠
박물관에서 찾은 나의 호기심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712∼770)의 시(詩)를 성종 때 홍문관의 유윤겸 등이 왕의 명을 받들어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두공부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두보가 공부원외랑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이며 ‘분류’는 중국 송나라의 분문집주두공보시(分門集注杜工甫詩)를 참고하여 따온 것이다.
초인본의 조위가 쓴 서문에 의하면 성종 12년(1481) 가을에 왕의 명을 받아 한글 번역을 착수하여 그 해 12월에 완성하였고, 본권 13의 인본을 보면 을해자, 중자 및 소자 그리고 한글 활자로 찍었는데 인쇄가 깨끗하지 못한 편이다. 성종 13년(1482)에 가뭄이 심하여 『두시』를 비롯한 『춘추』, 『이백시』, 『용학구결』 등의 발행을 멈추고 그 비용을 가뭄극복에 씀에 따라 그 인쇄발행은 다소 뒤에 이루어진 듯하다.
이 『분류두공부시언해』는 한글로 표현된 유창한 문체와, 풍부한 어휘 등으로 볼 때 국문학과 국어학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호기심의 확장
원균 선무공신교서에서 출발한 나의 호기심은 임진왜란때 활약한 원균과 그의 공을 치하하는 목적인 선무공신이라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선무공신을 좀 더 살펴보니 원균 외에도 이순신, 권율 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충청남도 아산시의 현충사에 있는 것을 확인 했고, 현충사에는 그가 쓴 난중일기가 소장되어 있었다.
한편 선무공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호성공신이 있다. 임진왜란인 끝나자 선조는 임진왜란 때 공적을 세운 장군 및 관리에게 그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공신교서를 내리고 상을 내렸는데 그때 크게 선무공신과 호성공신으로 나누었다. 선무공신은 무(武)로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을 치하하기 위한 것이고 호성공신은 임금인 선조 주변에서 선조를 보위하며 공을 세운 것이었다.
호성공신으로는 심대 라는 인물이 있었으며, 심대가 받은 심대 호성공신교서가 마침 경기도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심대의 묘는 용인시 처인구에 있었고, 원균의 묘는 평택시 도일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식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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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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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참고자료
- 원균은 어떻게 일등공신이 됐을까?(上), Youtube.
- 원균은 어떻게 일등공신이 됐을까?(下), Youtube.
- 영웅의 길 반역자의 길 이순신 vs 원균, 한국사 맞수열전, 다음백과.
- 심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백과.
- 노승석, 「선무공신교서(宣武功臣敎書)」, 『이순신연구논총』 8 , 2007, 363-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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