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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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인백(仁伯)이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의 아들로 태어났다. 통솔력이 있고 명석하였으며,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에 통달하였다.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수찬(修撰)이 되었다.1589년(선조 22) 황해도 관찰사 한준과 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등이 연명하여 정여립 일당이 한강이 얼 때를 틈타 한양으로 진격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고발하였다. 관련자들이 차례로 잡혀가자 정여립은 아들 옥남(玉男)과 함께 죽도로 도망하였다가 관군에 포위되자 자살하였고 그의 아들 정옥남(鄭玉男)은 체포되어 국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