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Sound-B:광주소리의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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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박유전에서 이어진 서편제 소리는 이날치, 정창업, 정재근에 의해서 담양, 나주, 보성 등지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중에서 이날치-김채만-박동실로 전해진 소리를 소위 서편제 ‘광주판’이라고 불렀다.[1]
- 광주소리는 이날치(담양)에 연원을 두고, 김채만(화순)-박동실(담양)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형성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담양-화순-곡성(옥과)의 세습무계 출신 명창들은 혼맥으로 얽히고 소리학습의 사승관계로 설키면서 광주소리의 특성을 발전시켰다.
- 현재 광주소리로 알려진 것은 김채만-박동실-한애순, 장월중선, 한승호로 이어지는 <심청가>와 김채만-박동실-한승호로 전승된 <적벽가> 두 바탕이 온전하게 전한다.
- 광주소리는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 해방 공간에서 광주를 중심으로 예술적 전승이 매우 활발했으나 한국전쟁 전후로 박동실, 공기남 등 광주소리 핵심인물들이 대거 월북하면서 보성소리나 동편제 소리에 비해 급격히 위축됐다. 특히 과거 독재정권시절에 국악계에선 박동실의 제자였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거나, 박동실제 소리를 토막내서 가르치는 등 광주소리가 시련을 겪었다.[2]
AI Storytelling
Story Network Graph
Episodes
- GJSound-A:광주권번의 예술가들
- GJSound-B:광주소리의 맥
- GJSound-C:박동실의 소리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