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
DH 교육용 위키
문맥항목
기존 존재
미존재
- 김제 벽골제: 문맥항목이 될 수 있을지?
- 광산읍지: 18세기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행정구역 변천 등을 살필 수 있는 광주목의 읍지
- 증심사오백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이므로 핵심항목으로도 가능
- 김방_영정(광주_증심사)
Definition
- 광주 출신 김방(金倣, 미상)은 1418년 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으면서 김제의 저수지인 벽골제를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김제평야를 곡창지대로 만든 인물이다. 이때 2만명의 인부를 20여일간 동원하여 수리를 마쳤고, 다른 일로 잠시 파직되었으나 이러한 유능함이 태종에게 알려져 다시 관직을 받게 되어 광주목사(光州牧使)로도 있었다.
- 김방은 광주목사로 있으면서 3년간 경양방죽(경양지)을 만들어 광주 일원의 농토를 비옥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광산읍지(光山邑誌)』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저수지 시설을 증축하고 관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
- 또한 그는 전라도관찰사 시절,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하고,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을 짓고 오백나한(五百羅漢)과 16제자상[1]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 광주 도심과 무등산 증심사를 이어주는 다리인 배고픈 다리는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유래가 있는데, 그 중 한 이야기가 김방과 관련된 것이다. (김방이 전라도 관찰사 시절, 역적모의를 오해받아 처형당할뻔 하였으나 금방 오해가 풀려 처형이 취소되었다. 이때 김방을 잡으러 온 금부도사 일행들이 처형을 취소하는 어명을 전달하는 군졸들이 올때까지, 배고픈 다리에서 며칠간 배고픔에 허덕였다고 한다.)
- 후에 김방은 좌찬성까지 올랐으며, 그의 영정은 광주 증심사 등에 봉안되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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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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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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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과경양지」 | http://aks.ai/GC60004863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증심사 오백전(證心寺 五百殿)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044 | |
해설 | 디지털김제문화대전 | 김방 | http://aks.ai/GC02600764 |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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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 10대 제자상이라고 표현한 곳도 있는데 무엇이 맞는지 확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