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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내가면(內可面) 159. 산곶동(山串洞372)) 山串村開一樂窩산곶동 마을은 낙원을 열었으니, 春風最是此中多봄바람 여기에 가장 많이 불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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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면(內可面)
 
159. 산곶동(山串洞372))
 
山串村開一樂窩산곶동 마을은 낙원을 열었으니,
 
春風最是此中多봄바람 여기에 가장 많이 불어오네.
 
尹家文筆連鳴世윤씨 가문 문필로 명성이 높았고,
 
丹桂紅蓮種種科여러 가지 과거에 두루두루 합격했네.
 
○ 파평 윤씨 윤학수(尹學洙)는 일찍이 강화부의 분교관을 지냈는데 법도가 있었다. 그 아들 윤시영(尹時榮)373)은 황상 병인년(1866)
 
에 강화부의 도과(道科)에 합격하여 대간을 지냈다. 그 아들 윤훈(尹塤)374)은 어린 나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만년에는 본부의 분교관
 
을 지냈다. 능참봉과 능령을 거쳤으며 원외랑 벼슬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윤시영의 재종(再從) 윤유영(尹有榮)375)은 황상 신미년
 
(1871)에 본부의 유수 정기원(鄭岐源)376)이 백의종군했다고 해서 천거하였으며 계유년(187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372) 하점면 망월2리 산곶동으로, 산화(山花), 미꾸지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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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山串村開一樂'''窩''' (<small>산곶촌개일악'''와'''</small>)     산곶동 마을은 낙원을 열었으니, <br />春風最是此中'''多''' (<small>춘풍최시차중'''다'''</small>)     봄바람 여기에 가장 많이 불어오네.<br />尹家文筆連鳴世 (<small>윤가문필련명세</small>)    윤씨 가문 문필로 명성이 높았고,<br />丹桂紅蓮種種'''科''' (<small>단계홍련종종'''과'''</small>)    여러 가지 과거에 두루두루 합격했네.<br />
373) 윤시영(1818년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1866년 별시(別試) 병과(丙科) 1위로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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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윤훈(1831년 출생) 자는 치성(穉聲). 본관은 파평(坡平). 1858년 식년시 진사(進士) 2등 23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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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375) 윤유영(1821년 출생) 자는 선여(善汝). 본관은 파평(坡平). 1873년 식년시 진사(進士) 3등 195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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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정기원(1809년 출생)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봉수(鳳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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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평 윤씨 윤학수(尹學洙)는 일찍이 강화부의 분교관을 지냈는데 법도가 있었다. 그 아들 윤시영(尹時榮)은 황상 병인년(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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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강화부의 도과(道科)에 합격하여 대간을 지냈다. 그 아들 윤훈(尹塤)은 어린 나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만년에는 본부의 분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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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냈다. 능참봉과 능령을 거쳤으며 원외랑 벼슬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윤시영의 재종(再從) 윤유영(尹有榮)은 황상 신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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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에 본부의 유수 정기원(鄭岐源)이 백의종군했다고 해서 천거하였으며 계유년(187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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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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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시영(1818년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1866년 별시(別試) 병과(丙科) 1위로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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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훈(1831년 출생) 자는 치성(穉聲). 본관은 파평(坡平). 1858년 식년시 진사(進士) 2등 23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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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유영(1821년 출생) 자는 선여(善汝). 본관은 파평(坡平). 1873년 식년시 진사(進士) 3등 195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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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원(1809년 출생)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봉수(鳳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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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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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곶동(山串洞) : 하점면 망월2리 산곶동으로, 산화(山花), 미꾸지라고도 불린다.

2019년 5월 29일 (수) 00:28 기준 최신판

山串村開一樂 (산곶촌개일악)     산곶동 마을은 낙원을 열었으니, 
春風最是此中 (춘풍최시차중) 봄바람 여기에 가장 많이 불어오네.
尹家文筆連鳴世 (윤가문필련명세) 윤씨 가문 문필로 명성이 높았고,
丹桂紅蓮種種 (단계홍련종종) 여러 가지 과거에 두루두루 합격했네.


○ 파평 윤씨 윤학수(尹學洙)는 일찍이 강화부의 분교관을 지냈는데 법도가 있었다. 그 아들 윤시영(尹時榮)은 황상 병인년(1866) 에 강화부의 도과(道科)에 합격하여 대간을 지냈다. 그 아들 윤훈(尹塤)은 어린 나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만년에는 본부의 분교관 을 지냈다. 능참봉과 능령을 거쳤으며 원외랑 벼슬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윤시영의 재종(再從) 윤유영(尹有榮)은 황상 신미년 (1871)에 본부의 유수 정기원(鄭岐源)이 백의종군했다고 해서 천거하였으며 계유년(187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인물

  • 윤시영(1818년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1866년 별시(別試) 병과(丙科) 1위로 합격했다.
  • 윤훈(1831년 출생) 자는 치성(穉聲). 본관은 파평(坡平). 1858년 식년시 진사(進士) 2등 23위로 합격하였다.
  • 윤유영(1821년 출생) 자는 선여(善汝). 본관은 파평(坡平). 1873년 식년시 진사(進士) 3등 195위로 합격하였다.
  • 정기원(1809년 출생)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봉수(鳳叟).


참고

  • 산곶동(山串洞) : 하점면 망월2리 산곶동으로, 산화(山花), 미꾸지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