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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40 기준 최신판
Meta Data
- 타입 : 개념
- 한글항목명 : 인심도심설
- 한자항목명 : 人心道心說
- 편자 : 김소희
내용
사람의 마음이란 매우 오묘한 것이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오랜 것으로 보이며 인심도심설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국 철학사에서 인심도심설에 대한 문제가 나타난 것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의 기록에 따르면 요순시대라고 본다. 그뒤 《논어》나 《순자》와 같은 책에서 인심도심에 관련된 구절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해석은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고, 11세기 송나라의 주자(朱子)에 이르러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중용》의 머릿글에서 인심도심의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고 그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주자에 의하면,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는 것이요, 도심이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볼 때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은 도심이요, 그 자체로서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나 신체적인 기운에 따라 부도덕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인심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는 한마음이지만 그것이 작용할 때 의리를 따라서 나타나면 도심이요, 신체상의 어떤 욕구를 따라서 나타나면 인심인 것이다.
따라서 도심에 대해서는 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인심에 대해서는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심이란 곧 도덕적인 마음이다. 이것이 순수하게 착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고 보는 것(性善說)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인간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이 있는 이상, 도심은 이러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심은 성질상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마음의 깊은 곳을 잘 살피지 않으면 도심을 깨달을 수가 없고, 그러한 점에서 욕심에 흐르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도심에 비하여 인심이란 그 자체를 가리켜 부도덕한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항상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즉, 인심의 성질은 위태로운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에게 감각적인 욕구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그런 만큼 맹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경》에서는 ‘도심은 희미하다(道心惟微)’라 하고 ‘인심은 위태하다(人心惟危)’라 하였다.
한국철학에서 인심도심설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이다. 이황은 ‘인심은 칠정(七情)이 되고 도심은 사단(四端)이 된다’라고 말함으로써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심을 인욕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인심을 나쁜 측면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이는 47세 되던 1582년 <인심도심도설>이라는 글과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리면서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논리적이고 명석하게 정리하였다. 이이는 사람의 기질이란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황과는 달리 이이는 사단이 도심인 것은 가능하지만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이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시작과 끝의 관계가 있다는 이른바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주장하고 있다.
즉 인심과 도심은 서로 쌍립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인심이던 것이 나중에 도심이 되고 처음에 도심이던 것이 나중에 인심이 된다는 것으로, 인심과 도심의 상호작용을 밝혀주는 의미가 된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인심은 감성적인 것이고 도심은 이성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