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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40 기준 최신판
퇴계이황(李滉, 1502년 1월 3일(1501년 음력 11월 25일) ~ 1571년 1월 3일(1570년 음력 12월 8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교육자, 화가, 시인이다. 조선 명종·선조 시대의 사상가, 교육자이자 화가, 대성리학자였다. 정치보다는 학자 지향형 인물이다. 과거 급제 후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사화(士禍)와 훈구파 내부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워지자 관직을 사퇴한다.
1528년(중종 23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다가 1534년 문과에 급제, 관직에 나갔으며 홍문관의 관직을 거쳐 풍기군수 등을 역임했다. 풍기군수 재직 시절 서원들을 지원하였으며, 임금 명종의 친필 사액(賜額)을 받아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으로 만듦으로써 사액 서원의 모범 선례가 되었고, 사림파의 세력이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1545년 형 온계 이해가 을사사화로 희생된 뒤, 여러 번 관작이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 뒤 공조참판, 이조판서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1569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의 사상은 그의 직제자 김효원(金孝元)이 동인의 당수가 된 이후 동인으로 전달되었으며, 남인으로 이어졌고, 북인 일부에게도 계승된다. 소고 박승임, 서애 류성룡 등의 문하생을 배출했는데, 후일 동인이 분당된 뒤 박승임의 제자는 남인 일부와 북인 일부로, 류성룡과 그의 후예들은 남인으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당시 그의 저서들이 일본군에게 약탈당했는데, 이때 약탈된 이황의 저서와 작품, 서한, 편지 등은 일본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거계상[退居溪上]의 줄임말)·퇴도(退陶)·퇴도만은·도수(陶叟), 본관은 진보(眞寶) 혹은 진성(眞城)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사후 이자(李子), 이부자(李夫子)로 존숭되었다. 진사(進士) 증 의정부좌찬성 이식(李埴)의 아들이다. 조선 정치사에서 특히 동인과 남인 계열의 종주이며 일부 북인도 그의 문인들이었다. 그는 안동부사를 지낸 송재 이우의 조카이자 문하생이다.
Meta Data
내용
- 이칭별칭: 자 경호(景浩), 호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 시호 문순(文純)
- 시대: 조선
- 출생 - 사망: 1501년(연산군 7) ~ 1570년(선조 3)
- 성격: 문신, 학자
-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
- 성별: 남
- 본관: 진보(眞寶)
- 저서(작품): 심경후론, 역학계몽전의, 성학십도, 주자서절요, 자성록, 송원이학통록
- 대표관직(경력): 단양군수, 풍기군수, 성균관대사성, 대제학, 지경연
1501(연산군 7)∼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성리학의 대가로 퇴계학파를 형성했다.
인물
혈연관계
아버지 : 이식(李埴), (1461년 - 1501년)
어머니 : 박씨(朴氏), ( ? - 1537년)
형 : 7명
형 : 이해(李瀣)(호는 온계(溫溪))
누이 : 이씨
부인 : 허씨(許氏)(1502년? - 1528년)
아들 : 이준(李寯)(1523년 - 1583년)
부인 : 권씨(權氏)(1502년? - 1547년)
첩 : 두향, 기생
숙부 : 이우
사회관계
스승 = 이우
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