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판 1개) |
|
(차이 없음)
|
2017년 3월 5일 (일) 08:32 기준 최신판
소수서원(紹修書院) | |
---|---|
지정 번호 | |
지정연월일 | |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
제향 인물 | 안향, 안축, 주세붕, 안보 |
제향일 | |
건립 연대 | 중종 36년(1541년) |
사액 연대 | 명종 5년(1550년) |
다른 이름 |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
건물 배치 | |
특기사항 |
소수서원(紹修書院)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다.
내용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에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를 설립하였다가 1543년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하였다.
1548년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오면서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명종은 신광한에게 명하여 서원의 이름을 정하게 하였다. 신광한은 무너진 교학(敎學)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으로 소수(紹修)라고 지었다. 명종은 친히 어필로 직접 써서 하사하고(사액), 국가에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지나친 건립과 부패로 1868년(고종 5)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그대로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이 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현재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명륜당(明倫堂)·일신재(日新齋)·직방재(直方齋)·영정각(影幀閣)·전사청(典祀廳)·지락재(至樂齋)·학구재(學求齋)·서장각(書藏閣)·경렴정(景濂亭)과 탁연지(濯硯池)·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국보 제111호인 회헌영정(晦軒影幀), 보물 제485호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717호인 주세붕 영정(周世鵬影幀)이 소장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1] [2] [3] [4] [5] [6] [7] [8] [9] [10] [11]
관련인물
참고문헌
『태학지(太學志)』
『서원등록(書院謄錄)』
『전고대방(典故大方)』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소수서원등록(紹修書院謄錄)』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
『한국건축미』(주남철, 일지사, 1983)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영주시·영풍군, 1988)
「백운동서원의 설립과 풍기사림」(윤희면, 『진단학보』 49, 진단학회, 1934)
「조선서원일고」(최완기, 『역사교육』 18, 역사교육연구회, 1975)
「조선전기서원과 향약」(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론』 8,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