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공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9번째 줄: | 9번째 줄: | ||
|시대 = [[삼국시대]] | |시대 = [[삼국시대]] | ||
}} | }} | ||
+ | |||
+ | |||
+ | |||
+ | |||
+ | |||
=='''개요'''== | =='''개요'''== |
2016년 6월 16일 (목) 11:25 판
평강공주 | |
---|---|
[[파일:|300px]] | |
한자 | 平岡公主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성별 | 여 |
분류 | 공주 |
시대 | 삼국시대 |
개요
-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평원왕平原王(?~590)의 딸이다. ≪삼국사기 三國史記≫ 『온달전 溫達傳』에 온달의 아내로 기록되어 있다.
- 내용
《삼국사기》 온달전에 의하면,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리곤 하였다. 그 뒤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명문귀족 집안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왕이 노하여 궁궐에서 쫓아내니,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쳤다.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온달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던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발탁되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하여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에, 온달이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수도로 돌아오던 중 죽었는데, 그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 하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 하였다고 한다.[1]
관련 항목
이 문서 A | 관련 문서 B | 관계 |
---|---|---|
평강공주 | 고구려 | A는 B의 사람이다. |
평강공주 | 온달 | A는 B의 아내이다. |
평강공주 | 평원왕 | A는 B의 딸이다. |
평강공주 | 영양왕 | A는 B의 동생이다. |
평강공주 | 온달전 | A는 B에 등장한다. |
평강공주 | 온달 설화 | A는 B에 등장한다. |
평강공주 | 온달 문학 | A는 B의 소재이다. |
평강공주 | 온달 콘텐츠 | A는 B의 소재이다. |
평강공주 | 광이 진이 | A는 B의 모티브이다. |
평강공주 | 평강회 | A는 B의 모티브이다. |
평강공주 | 평강공주 콤플렉스 | A는 B의 모티브이다. |
관련 링크
클래스
- 인물
기여
- 신은혜: 처음 작성
출처
- ↑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