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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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중앙에 위치한 [[최무선|최무선(崔茂宣, 1325~1395)]]을 중심으로 [[화약]] 제조과정이 그려져 있다.<br/>
 
작품 중앙에 위치한 [[최무선|최무선(崔茂宣, 1325~1395)]]을 중심으로 [[화약]] 제조과정이 그려져 있다.<br/>
조선 후기 염초제조법 문서인  『[[신전자취염초방|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과  『[[신전자초방|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의 설명에 따르면,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흙을 모으고(취토:取土), 재를 받아서(취회: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데(교합:交合), '''⑧⑨''' 이는 작품 중앙 하단에서 원료를 빻고 있는 사람과 그 오른쪽에 그려진 원료 바구니에서 확인할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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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은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만한 것이 없다며 화약 제조에 관심을 가졌고,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화약 제조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화약과 화포(火砲) 제조에서 유황, 숯과 함께 꼭 필요한 염초는 화약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수입해 와야 했는데, 당시 원, 명 왕조에서는 화약의 제조 방법(재료의 배합 비율 등)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이 기술을 아는 인물이 없었다.  
그리고 혼합된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사수:篩水) 가마에 넣고 달여야 하는데(오수:熬水), 이는 '''③⑤⑥''' 작품 오른편 상단에 그려져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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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된 원료를 걸러내어 세 번 끓여 식히면(재련, 삼련, 합제:再煉, 三煉, 合製) 초석이 생기는데 이는 '''④''' [[최무선]] 왼편에 검정색 결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품 왼쪽 상단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화약]]사용하는 '''① [[화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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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EC%B5%9C%EB%8C%80%EC%84%AD-%ED%99%94%ED%8F%AC%EC%99%80_%ED%99%94%EC%95%BD%EC%9D%84_%EC%A0%9C%EC%A1%B0%ED%95%98%EB%8A%94_%EC%B5%9C%EB%AC%B4%EC%84%A0 (출처: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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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0일 (수) 16:56 판

최대섭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1979


작품

작품 중앙에 위치한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을 중심으로 화약 제조과정이 그려져 있다.
최무선은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만한 것이 없다며 화약 제조에 관심을 가졌고,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화약 제조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화약과 화포(火砲) 제조에서 유황, 숯과 함께 꼭 필요한 염초는 화약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수입해 와야 했는데, 당시 원, 명 왕조에서는 화약의 제조 방법(재료의 배합 비율 등)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이 기술을 아는 인물이 없었다.

작가

최대섭(崔大燮)은 1927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하여 195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50년 한국미술가협회 회원전 참여로 등단하여 다수의 국제전에 참여하였다. 1974년 한국미술협회원전 국회의장상, 75년 제7회 까뉴국제회화제 국가상을 수상하였다. 군산대학교 미술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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