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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9일 (목) 14:46 판
목차
스토리
스토리의 제목
대한제국 군악대의 데뷔 무대.
스토리의 개요(요약/줄거리)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Franz Von Eckert)는 대한제국 군악대의 음악 지도자로 초빙되어 1901년 2월 서울에 오게 됨. 에케르트는 50인조 규모의 군악대의 악기를 구입하여 내한, 대한제국 군악대를 지휘함. 에케르트가 지휘한 군악대는 1901년 9월 7일 덕수궁에서 열린 고종황제 50세 탄신 경축 연회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함. 군악대가 조직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연주를 선보여 외국인들의 주목을 받음. 이후에도 에케르트의 군악대는 정부 공식 행사의 음악을 연주,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정기 공연을 개최함.
스토리를 위한 에피소드(소재)
- 민영환의 군악대 창설 제안 과정. 민영환은 1896년 샹트페테부르크에서 거행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 러시아 군악대에 깊은 인상을 받고 고종에게 군악대 창설을 제안.
- 대한제국에 초빙되기 이전의 에케르트의 이력. 프로이센 빌헬름스하펜 지역에서 해군 군악지휘자로 근무. 1879년부터 20년간의 일본 활동. 일본 해군 군악대 운영, 일본 황실의 오케스트라 제작, 일본 국가 기미가요 작곡 등.
- 1901년 1월 27일자 대한제국 관보에서 확인되는 고종의 국가(國歌) 제정 명령.
- 신축진연도병(辛丑進宴圖屛), 고종황제 50세 탄신(만수성절) 경축 연회를 묘사한 병풍. 신축진연의궤(辛丑進宴儀軌).
- <Korea Review>(1901년 9월호)에 묘사된 경축연 현장, 대한제국 군악대의 연주에 대한 헐버트의 평.
- 군악대의 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 견장이 달린 검은색 웃옷, 소매 끝에 계급 표시 줄, 상의 좌우에 금줄무늬로 된 악기 모양 표지, 붉은 융으로 된 옷의 소재, 바지의 검은 줄, 붉은 융의 뚜껑에 새털을 꽂은 모자.
- 에케르트의 대한제국 애국가 작곡. 고종의 명을 받아 작곡, 1902년 신년하례회에서 애국가 연주. 7월 에케르트의 건의에 따라 애국가 악보 500부를 제작 50개국 정부에 발송. 악보는 민영환의 서문, 한글과 독일어 번역 가사, 음보 수록. 8월 15일 애국가 공식 반포. 국가(國歌), 깃발, 문장(紋章) 등을 관장하는 기장조성소(旗章造成所)를 운영.
- 을사조약 이후 군악대의 해산. 황실음악대로 편입, 1919년 완전 해산. 에케르트의 제자 백우용(白禹鏞)의 경성양악대 결성.
참고자료
- "대한제국 애국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https://www.much.go.kr/L/Fliowl40MR.do
- 이현표, "최초의 애국가 악보, 태극기·무궁화로 장식 대한제국 정체성 담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 http://caira.co.kr/bbs/board.php?bo_table=page2_3&wr_id=65
- 김영일, "대한제국 황립 양악대 창설 당시 복식 그대로 118주년만에 탑골공원 팔각정서 재건", <더프리뷰> 2019년 10월 8일, http://www.thep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87.
시맨틱 데이터
노드 리스트
노드 | 클래스 |
---|---|
에케르트 묘비 | 건조물 |
신축진연도병 | 기록물 |
신축진연의궤 | 기록물 |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집 | 기록물 |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집 서문 | 기록물 |
대한제국 애국가 | 기록물 |
대한제국 군악대 | 단체 |
Franz Von Eckert | 인물 |
민영환 | 인물 |
백우용 | 인물 |
탑골공원 팔각정 | 장소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 장소 |
니콜라이 2세 대관식 | 행사 |
고종황제 50세 탄신 경축 연회 | 행사 |
네트워크 그래프